'정교분리' 원칙이 오남용되고 있는 시대다. 종교인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치인들의 종교 관련 발언이 심상치 않다. 기성 종교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 신천지, 통일교의 정교유착 관련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될 즈음에 "사이비·이단은 척결해야 할 사회악"이라며 엄정 수사를 주문한 국무총리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도 선 넘는 종교 관련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정교분리' 프레임을 앞세워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범죄에 한해 혐의가 입증되면 문제의 종교 법인은 물론이고 이들과 유착한 정당까지도 해산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단 사이비 척결이라는 신성한? 과제를 정부가 일임해주겠다고 하니 보수적 신앙을 가진 이들은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혼돈에 빠진 상태다. 다만 의심이 많은 일부 종교인들만 "정부가 환장했다"며 '정교분리' 프레임을 이용해 종교인을 길들이려 하는 정부에 대해 반감을 드러낼 뿐이다. 이들에게는 정부가 정치적 탄압을 위해 이단 사이비에 휘두르는 칼을 필요에 따라 기성 종교에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개신교 극우포퓰리즘 스피커 손현보 목사, 전광훈 목사의 구속 수감은 이러한 의심에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개신교 보수 진영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신교 진보 진영도 정부의 '정교분리' 프레임 오남용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정교유착을 통해 사회 질서를 교란시키는 이단 사이비 집단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정교분리'를 '종교는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정부 측 입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국가 권력을 신성 불가침 영역으로 만들어 종교의 저항권을 근본적으로 배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에서 '정교분리' 원칙을 뒷받침 하는 성서적 근거로 압도적으로 많이 인용된 본문은 권력자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할 것을 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마22:17)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권위에 대한 복종을 명하는 로마서 13장 말씀이 있다. 유신 독재 하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개신교 진보 진영의 인사들에게는 뼈 아픈 성경 구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정권에 의해서 탄압을 받았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구절 때문에 같은 개신교 보수 진영 인사들의 힐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종교가 왜 정치에 개입해서 사회 질서를 혼란케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진보 정권이 들어선 작금의 현실에서는 입장이 뒤바뀐 모습이다. 보수 개신교 진영에서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정치적 결집을 시도하고 있고 진보 개신교 진영은 이를 관망하거나 위의 성경구절을 인용해 이들의 조직적인 정치 개입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이헌령비헌령인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국가 권력이 '정교분리' 프레임에 편승해 종교인보다 더 종교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이를 소수 집단 탄압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 오판이며 '정교분리' 원칙의 본질을 외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교분리' 조항의 뿌리인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따르면 이 법은 '종교의 자유'를 목적으로 한 조항으로 국교의 수립 거부를 잠재하고 있는 법이다. 다시 말해 국가의 종교화 거부를 뜻한다. 국가가 종교적이 될수록 민주 시민의 자유는 제약되고 규율과 통제가 일상화 되며 종국에는 신성한 독재자에 의해 지배되는 거대한 사이비 집단으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렇다.
때문에 지금은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기며 종교인은 종교인의 자리에서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리에서 자기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그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로마서 13장 말씀을 오남용해 이 말씀에서 통치 권력의 특별한 존엄성을 도출하거나 모든 형태의 정치적 저항의 배제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도 위험하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배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지금은 배타적인 자기 긍정, 자기 정당화를 목적으로 한 해석의 절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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