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믿음을 유교의 핵심 사상과 비교하여 설명한 글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양명수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최근 「기독교사상」에 기고한 글에서 기독교의 믿음 그리고 죄에 대한 이해를 '미발의 중' '경(敬)' 등의 유교의 사상과 잇대어 분석했다.
먼저 중세 기독교에서 종교개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사제에게만 부과되었던 높은 도덕적 의무가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선포된 것으로 이해했다.
양 박사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요구된 높은 도덕성은 도덕주의나 율법주의의 결과물이 아니고 믿음의 열매였다"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은 복음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초대교회 때부터 믿음이란 인간의 내면과 공동체에서 자유와 사랑의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통로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유교의 이성 종교나 칸트의 도덕 종교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를 "인간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믿음의 종교"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유교에서 말하는 '미발의 중'의 위치에 있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믿음'이다"라고 했다.
양 박사에 따르면 유교으 중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수동적 상태에서 진리가 마음을 지배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의지를 성에 가두라"(防意如城)는 주희와 퇴계의 말은 이런 수동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진리가 일어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과 진리의 움직임을 합한 개념이 중이라는 게 양 박사의 설명이다.
양 박사는 그러나 "믿음과 중은 의지의 수동성과 진리의 주재에서 비슷한 면을 보이지만 그 내용이 매우 다르다"며 "비슷한 점 때문에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는 이름의 보편 가치와 무관하지 않음이 드러나고 다른 점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인문주의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자유를 인류에 선물했다"고 전했다.
특히 "기독교의 믿음은 유교의 중처럼 세상과 거리를 두고 모든 판단을 정지한 상태에서 형성된다"며 "유교의 경(敬)처럼 경외심이라는 초월 감정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위엄을 알아보고 인정하며 복종하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칼뱅이 신앙을 "'인정'(assensus, assentiment)이라는 인식론적 활동으로 보는데 그 인정은 지성의 작업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기독교강요』, Ⅲ, 2, 3)"이라며 "정서적 인식이란 온몸으로 느껴서 아는 직관을 의미하고, 그 점에서 유교의 체인(體認)과 비슷하다"고 양 박사는 부연했다.
"모든 선행 가운데에서 첫 번째이자 최고의 선행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한 루터의 주장에 대해 양 박사는 "이 말은 사람이 착한 일이나 정의로운 일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이 선과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속에도 악이 들어 있다는 의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주재를 확보할 수 있으며, 따라서 믿음이 없으면 사람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모든 선행은 믿음에서 비롯된다"며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선행의 시작이요, 최고로 중요한 선행이다. 유교는 중(中)에서 모든 선의 시작을 보고 또한 최고의 선 곧 지선(至善)의 활동을 본다. 그 점에서 기독교의 믿음은 유교의 중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양 박사는 덧붙였다.
하지만 유교의 중과 기독교의 믿음이 질적인 차이를 보이는 점도 분명히 했다. 양 박사는 "무엇보다도, 믿음에서 인식되는 하나님의 권위는 마땅한 도리 곧 유교적 진리의 권위이기 이전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용납하고 죄인을 받아주는 은혜의 형태로 다가온다"며 "은혜가 진리에 앞선다. 은혜의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보다 앞선다. 진리의 중심에 은혜가 있다. 그 점에서 기독교의 믿음은 유교의 중이나 체인과 다르다"고 했다.
이어 "인문주의자들에게 진리는 하늘의 명령(天命)이고, 하늘의 명령은 결국 양심의 명령이며 이념적 당위이다"라며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인 하나님은 명령하기 전에 위로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기 이전에 복음이다. 복음이 율법에 앞선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을 "은혜와 진리"(삼하 2:6, 15:20)로 표시하고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와 진리"(요 1:14, 1:17)로 표시할 때에도 은혜가 진리에 앞선다"고 양 박사는 역설했다.
기독교의 구원관이 성공을 향한 세상의 풍조와도 인문주의자들과의 구원관과 다르다는 점도 확인했다. 그는 "세상에서는 성공으로 의롭게 된다. 성공하면 모든 게 정당화되고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을 좋아하고 부러워하며 그가 가진 힘과 생산력을 숭배하면서 그의 성공을 정당화한다"며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의 구원관은 '성공으로 의롭게 되는' 물질적 업적주의와 다름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대 및 중세의 인문주의자들은 성공으로 의롭게 되는 세상 풍조를 벗어나 인간의 선한 본성을 키우는 마음의 수양을 통해 의롭게 되고자 했다"며 "그들은 물욕을 버린 정직하고 의로운 행위와 삶을 통해 의롭게 되고자 노력한다. 기독교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인문주의자들의 도덕주의와도 길이 다르다"고 그는 전했다.
양 박사는 이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기독교 신앙은 모든 업적주의를 반대한다. 믿음도 업적이 될 수 없다"며 "물론 믿음에는 판단 정지를 위해 세상 풍조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는 결단의 측면이 들어 있지만, 만일 사람이 믿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독교는 강조해왔다"고 했다.
끝으로 "논란이 많은 예정설의 교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과정 중에 생겨난 것이다"라며 "이처럼 모든 업적주의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움으로써, 진리의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가 되고 사람은 절대 수동성에 처하는 구도가 이루어졌다. 그것이 자유와 사랑과 평화의 내용과 실천력에서 기독교와 인문주의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양 바사는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