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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은 생산을 위한 충전이 아니다"

박일준 박사, 「기독교사상」 최신호서 '충만과 성취로서 쉼과 안식'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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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박일준 박사(원광대학교 한중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현대사회에서 '쉼'은 흔히 더 나은 생산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일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는 이유도, 다시 일할 힘을 얻기 위한 것으로 설명되는 식이다. 그러나 쉼 자체를 하나의 충만한 시간과 성취의 시간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박일준 박사(원광대학교 한중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기독교사상> 8월호에 기고한 글 「충만과 성취로서 쉼과 안식: 에너지의 관점으로부터」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박 박사는 현대사회가 생산과 생명을 중심으로 모든 존재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쉼과 안식, 죽음과 부패와 같은 비생산적인 과정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로 취급해왔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쉼은 독립적인 의미를 갖기보다는 '다음 생산을 위한 충전'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 역시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편입되면서, 쉼마저 생산 체제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쉼은 생산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 아니다"

박 박사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내재된 '생명중심주의'다. 현대 문명은 생명과 생산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하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삶의 중심에 놓는다. 반면 생산하지 않는 시간이나 활동, 죽음과 분해의 과정은 극복하거나 최소화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 같은 관점에서는 노동과 생산은 의미와 목적을 가진 활동으로 이해되지만,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쉼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시간'이 되기 쉽다.

박 박사는 그러나 존재를 생산과 생명의 관점만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생산과 생명뿐 아니라 쉼과 죽음, 분해와 부패까지도 존재의 과정 안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에너지의 흐름'이다. 에너지를 무엇인가를 생산하기 위해 소비하는 자원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관통하며 흐르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인간이 일을 하고 있을 때뿐 아니라 쉬고 있을 때에도 에너지는 흐른다. 생산의 시간만 에너지가 충만한 시간이 아니라 쉼의 시간 역시 그 자체로 충만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생산과 생명만을 중심에 놓은 문명에 대한 질문

이러한 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 생산과 성장'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현대사회는 끊임없는 생산과 성장을 요구하고, 생산이 중단되면 체제 자체가 위기를 맞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쉼마저도 다음 생산을 위한 정비와 충전의 과정으로 기능하게 된다.

박 박사는 이 같은 구조가 자연과 인간을 모두 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바라보는 추출주의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기후·생태 위기가 심화되는 오늘날에는 인간과 유기체적 생명만을 중심에 놓는 관점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연을 단순히 인간과 생명을 위해 활용되는 자원으로 바라보는 대신, 비인간적 존재와 물질, 기후 시스템 역시 나름의 작용과 관계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생산하지 않는 시간은 결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인간의 생산활동이 멈춘 순간에도 자연과 물질, 다양한 비인간적 존재들의 작용은 계속된다.

죽음과 부패도 존재의 과정이다

박 박사의 논의에서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죽음과 부패'에 대한 재해석이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생명의 반대편에 놓인다. 살아 있음은 긍정적인 것으로, 죽음은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죽음과 부패 역시 존재의 과정에서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 된다.

생명은 죽음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 분해와 재구성의 과정 속에서 이어진다. 기존의 존재가 해체되고 분해되는 과정은 새로운 존재와 질서가 형성되는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쉼에 대한 이해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쉼 역시 생산이 멈춘 '비생산적 시간'이 아니라 기존의 생산 방식과 삶의 리듬을 내려놓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파괴적 가소성'과 쉼의 의미

박 박사는 철학자 카트린느 말라부(Catherine Malabou)의 '파괴적 가소성(destructive plasticity)' 개념을 통해 쉼의 의미를 설명한다.

가소성이 단순히 기존 구조를 유연하게 변화시키고 적응하는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기존 구조 자체가 파괴되고 새로운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를 쉼의 관점에서 보면 쉼은 단순히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삶과 생산의 회로를 멈추고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존재가 가능해지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즉 쉼은 '다시 일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삶의 방식 자체를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그것을 내려놓는 시간이라는 의미다.

성토요일, 죽음과 부활 사이의 '안식'

이러한 논의가 신학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성토요일(Holy Saturday)'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성토요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이에 놓인 시간이다.

교회는 오랫동안 십자가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구원의 드라마를 중심으로 이 시간을 이해해왔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의 승리를 위한 과정으로, 성토요일 역시 부활을 기다리는 중간 단계로 이해되기 쉬웠다.

그러나 박 박사는 성토요일을 단순히 부활을 준비하기 위한 '대기시간'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성토요일은 죽음 이후 아직 부활이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다. 승리가 보장된 것처럼 뒤에서 거꾸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죽음과 생명 사이의 공백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동시에 그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역을 모두 마치고 무덤에서 안식한 시간이기도 하다.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는 사실과 연결하면, 무덤에서의 안식은 다음 사역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역에 대한 완결의 표지가 된다.

창조 이후의 안식도 '충전'이 아닌 완성

이러한 시각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그동안 우리는 창조의 '생산'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창조했는지가 중심이 되고, 일곱째 날의 안식은 창조 이후의 부수적인 시간처럼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박 박사는 창조와 안식을 동일하게 충만한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안식은 다음 창조를 위한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 아니라, 창조가 완결된 이후 그 자체로 충만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교회와 신앙인들이 안식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쉬어야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넘어

오늘날 교회에서도 쉼은 종종 생산성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명된다. "지쳤다면 잠시 쉬어라. 그래야 다시 힘을 내서 일할 수 있다"는 식의 조언이다.

물론 육체적·정신적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휴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박 박사의 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쉼은 반드시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가

더 많이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 자체가 이미 충만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하지 않아도 존재하며, 성취하지 않아도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성과와 효율, 성장과 생산성을 신앙의 언어에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오늘의 교회에 적지 않은 성찰을 요구한다.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결국 박일준 박사의 논의가 던지는 질문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쉬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왜 쉬는 것조차 생산을 위해서만 정당화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쉼은 생산을 위한 빈 시간이 아니다. 죽음 역시 생명의 실패로만 볼 수 없으며, 분해와 부패 역시 존재가 끝나는 순간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

존재는 생성과 소멸, 생산과 쉼, 생명과 죽음의 차이 속에서 계속해서 흐른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은 생산의 반대편에 있는 공백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충만하게 머무는 시간이다.

특히 '성토요일'에 대한 성찰은 한국교회가 쉼과 실패, 죽음과 기다림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부활의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는 성토요일을 쉽게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현실 속에는 아직 부활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존재한다.

기도해도 답이 없고, 노력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며, 무엇인가를 내려놓은 뒤 아무런 새로운 것이 시작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 어쩌면 그 시간이야말로 신앙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안식'의 시간일 수 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생산성과 성취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박일준 박사의 글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생산과 성취를 중심으로 구축된 현대사회의 시간관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기독교 신앙 안에서 안식이 지니는 의미를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지수 기자 libertas@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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