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고 이장식 박사(우)와 김균진 박사(좌)의 모습.
한국 교회사와 신학사 연구에 큰 족적을 남긴 혜암 이장식 교수의 서거 5주년을 맞아 고인의 삶과 신학적 유산을 기리는 추모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김균진 한국신학아카데미 원장은 15일 발표한 '혜암 이장식 교수님 서거 5주년 기념사'를 통해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 고 이장식 교수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5년이 지났다"며 고인의 삶과 학문적 유산을 회고했다.
김 원장은 이장식 교수를 "파란만장했던 한국 근대사를 몸으로 사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1921년 4월 17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이장식 교수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좌우 이념 대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격변기를 직접 경험했다.
김 원장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교수가 신학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신학대학 제1회 졸업생...한국 교회사 연구에 헌신
이장식 교수는 한국전쟁 당시 지금의 한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한국신학대학 제1회 졸업생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캐나다 퀸즈신학대학원과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을 거쳐 아퀴나스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신대학교와 계명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했다.
특히 한신대학교 재직 당시 출간한 『기독교사상사』 Ⅰ·Ⅱ·Ⅲ권은 한국 신학계에서 중요한 교과서로 자리매김했다.
김 원장은 "당시 신학의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신학계에서 기념비적인 교과서가 됐다"며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장식 교수는 서양 교회사뿐 아니라 아시아 교회사 연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다수의 저술을 통해 한국교회의 역사 이해와 신학 발전에 기여했다. 한시에 대해서도 깊은 조예를 보이는 등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학자로 평가받았다.
"휴강하는 일이 없었던 교수"...학문과 인격으로 후학들에게 모범
김균진 원장은 학자로서 이장식 교수의 성실성과 인격적 면모도 회고했다. 그는 학부 시절 수유리 한신대학교에서 이장식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들었다며 "교수님께서는 휴강하는 일이 없었고, 강의 시간 시작 전에 먼저 강의실로 들어와 학생들을 기다렸다"고 전했다.
이어 "잔잔한 물결처럼 늘 온화와 중용을 지키시며 강의를 이끌어 가신 교수님의 인격적 성숙함과 학문적 성실은 후학들에게 귀중한 모범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는 이장식 교수의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학문을 대하는 태도와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었다는 평가로 풀이된다.
정년퇴임 후 70세에 케냐로...14년간 신학교육과 선교
이장식 교수의 삶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정년퇴임 이후의 행보다. 김 원장에 따르면 이 교수는 한신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한 이후 70세의 나이에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다.
그곳에서 선교와 교육에 헌신하며 14년 동안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에 힘을 쏟았다. 일반적인 학자의 삶이 정년퇴임과 함께 마무리되는 것과 달리, 이 교수는 자신의 학문과 경험을 후학 양성과 선교 현장에 다시 내어놓았다.
이는 신학을 단순한 학문적 연구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교육과 선교의 현장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그의 삶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혜암신학연구소 설립...보수와 진보의 대화 시도
이장식 교수의 또 다른 중요한 유산은 혜암신학연구소다. 93세가 되던 2014년 이 교수는 혜암신학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교회 보수계열과 진보계열 신학자들이 서로 만나 연구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김 원장은 이를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에큐메니칼 신학운동으로 평가했다. 연구소가 발간하기 시작한 논문집 『신학과 교회』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신학자들이 공동의 주제를 놓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학술지로 자리 잡았다.
김 원장은 "보수계열 신학자들과 진보계열 신학자들이 공동의 주제 아래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한국 신학계 유일의 에큐메니칼 연구지로 자리를 잡게 됐다"고 밝혔다.
이장식 교수가 세운 혜암신학연구소는 이후 한국신학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꾸어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신학아카데미는 기독교 신학과 교회의 주요 문제를 연구하고, 학술 세미나와 논찬·토론을 통해 신학적 사고를 심화하는 한편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연구 결과를 『신학포럼』을 통해 발표하고 한국교회와 신학계, 사회적 현안에 대한 시평을 내놓으면서 오늘의 한국교회와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몰트만 교수 유품 보존...신학 유산 계승에도 힘써
한국신학아카데미가 최근 진행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사업은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교수의 유품 보존이다.
이장식 교수와 학문적·신학적 지평을 공유했던 몰트만 교수가 평생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타자기, 박사학위 가운 등의 유품을 한국신학아카데미가 확보해 연구원 내 전시 공간에 보관하고 있다.
김 원장은 이를 두고 "한평생 사용했던 몰트만 교수님의 유품들이 본 연구원에 보관·전시되고 있다는 것은 큰 영광"이라고 밝혔다.
신학대학들이 학생들을 위한 유품 관람을 요청하는 등 신학 교육과 역사 보존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올해 5월에는 몰트만 교수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가 열렸으며, 몰트만 교수의 넷째 딸 프리드리케 몰트만(Friedrike Moltmann) 박사가 참석해 '몰트만 교수의 삶과 학문 활동'을 주제로 강연했다.
"5년이 지나도 한국 기독교 역사의 별로 남을 것"
김균진 원장은 이장식 교수의 서거 5주년을 맞아 고인이 남긴 신학적 유산에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본 연구원을 세우신 이장식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서거하신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교수님은 한국 기독교 역사의 별과 같았던 분으로 남아 계실 것"이라고 추모했다.
이장식 교수의 삶은 한국교회의 격변기를 지나온 한 신학자의 생애이면서 동시에 학문과 교육, 선교와 교회, 그리고 신학적 대화를 연결해 온 삶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정년퇴임 이후에도 케냐에서 신학교육에 헌신하고, 고령의 나이에 연구소를 설립해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을 가진 학자들의 대화를 이끌었다는 점은 그의 신학적 유산을 평가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김 원장은 기념사를 마무리하며 고인이 하나님의 영원한 품 안에서 안식하기를 기원하고, 남은 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축복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기도했다.
한편 한국신학아카데미는 이장식 교수가 남긴 학문적 성실성과 신학적 대화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한국교회와 신학계가 직면한 주요 문제를 연구하고 보수와 진보를 넘어선 신학적 소통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