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인의 몸은 떠났지만…김대중 前대통령 영결식

박영숙 이사장 “대통령의 서거는 슬픔만 남기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의 곁을 떠났다. 23일 오후 2시 국회 의사당 앞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이 시작됐고, 그로부터 3시간 남짓한 오후 5시경 국립서울현충원에 고인의 시신이 안치됨으로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고인의 삶. 고인의 운구 차량이 국회로 입장해 제단 뒤쪽으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서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맞이한 추모객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운구차량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장의위원장 한승수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우리는 오늘 나라의 큰 정치지도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쾌차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우리들은 참으로 애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고 말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또 “대통령은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높이 평가하는 우리 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었다”며 “지금 세계 각국이 대통령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우리 국민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그가 살아온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납치, 투옥, 연금, 사형 선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생전에 당신 스스로를 추운 겨울에도 온갖 풍상을 참고 이겨내는 '인동초'에 비유했던 것처럼 투옥과 연금, 사형선고와 망명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험난했던 삶이었다”며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번도 감내하기 어려웠을 수많은 시련을 대통령께서는 불굴의 의지와 집념으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한승수 총리는 이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그는 “우리나라도 숱한 어려움을 딛고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며 “특히 민주화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강인한 신념과 불굴의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러한 희생과 헌신 덕분에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할 수 있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승수 총리는 이밖에도 △ IMF 국제금융위기 극복 △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 등 정치발전의 기틀 마련 △ 분단 이후 최초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물꼬를 튼 것 △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일 등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끝으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조사도 읆었다. 한승수 총리는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에 크나큰 역할을 했다.”며 “대통령은 생전에도 늘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라지고 계층간에 대립하고 세대간에 갈등해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한 총리는  “우리는 이러한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특히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해온 해묵은 앙금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참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지인 미래포럼 박영숙 이사장의 추도사가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박영숙 이사장은 “대통령님의 서거는 우리에게 슬픔만을 남기지 않았다”며 “우리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게 하고 있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교도소 수감 생활 시절 이희호 여사와 함께 고인의 구명 운동을 벌였던 박영숙 이사장은 “독재정권 아래에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희망이었다”며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총과 칼이 가슴을 겨누어도 님께서는 의연하게 일어나셨으며 숱한 투옥, 망명, 연금을 당하시고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뜻을 꺾지 않으셨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박영숙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을 ‘용서와 화해’란 단어로 집약했다. 그는 “대통령님께서는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셨다”며 “자신을 그토록 핍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들을 모두 용서하셨다”고 말했다. 또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며 “대통령님은 버마, 동티모르 등 세계의 인권을 신장시키고 남과 북의 화해를 이뤄내 노벨 평화상을 받으셨다”고 말했다.

이날 고인의 영결식을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은 분향 및 헌화 순서로 영결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군사독재시절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사재판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한 장본인이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인의 정치 일생에 숙명의 라이벌 같은 존재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투병 중일 적 병원을 찾은 이들은 각각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절 가장 행복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라이벌 관계였다. 이제는 화해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한 고인의 삶을 투명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이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로 이어지는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천주교에선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을 하나님의 품으로 돌려 보내니 평안히 영접하게 하소서”라고 했으며 기독교에선 김삼환 목사(NCCK 회장), 엄신형 목사(한기총 대표회장), 권오성 총무(NCCK 총무) 등이 나서 고인을 위한 추모및 축복 기도를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묵상했던 성경 구절(이사야41장 8∼16절)을 봉독했다.

영결식이 막바지에 이르자 분향 및 헌화 순서가 시작됐고, 이희호 여사는 유가족들의 부축에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 앞으로 나와 분향하고, 헌화했다. 곧 이어 이명박 대통령 내외의 헌화, 한승수 국무총리, 김형오 국회의장 및 각당 대표들, 12개국 해외 사절단의 헌화 순서가 있었다. 이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구차량은 국회의사당을 떠나 국회 빈소에 안치됐다. 

영결식이 끝난 자리. 미쳐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한 추모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고인의 영정을 찾은 추모객들 중에는 김 전 대통령과의 이별이 믿기지 않는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통곡을 하기까지 했다.

억눌린 자를 위해 헌신하라는 예수의 교훈을 붙들고 살았다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그의 죽음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북한 동포들을 비롯해 해외 각국에서도 애도의 물결은 계속되고 있다. 고인의 몸은 떠났지만 ‘자유’와 ‘인권’을 위해 목숨 조차 타협하지 않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은 국민들의 마음 속에 깊이 깊이 뿌리를 내린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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