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성한]조선의 말로 조선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공동체를 위한 한국교회사 읽기(1)

처음 자생적 신앙공동체 이야기


성서의 이야기가 다 우리 이야기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누가복음 9장 16~17절)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선시대 말 1880년대 초에 처음으로 우리말로 된 성경을 접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때 처음 성경을 읽은 이 땅 백성들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구절이 어디였을까? 아마 그것은 위에 인용한 ‘오병이어 사건’이 아니었을까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씩이나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겼으니,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했겠느냐는 의심과는 별도로, 분명 이 ‘예수’에 대한 인상은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사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적행위를 못 믿겠다며 드는 실례 중에 이 ‘오병이어 사건’은 대표적인 것이지요. 이걸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만큼 그 사건이 깊이 인상에 박혔다는 말도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책이 처음에 우리나라 말로 번역될 때는 신약이든 구약이든 일부분씩 번역되었습니다. 맨 먼저 신약 누가복음서(<예수성교 누가복음 전셔>)가 번역되어 1882년 3월에 만주 땅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인쇄되었습니다. 이렇게 번역, 인쇄되어 보급된 성경책을 ‘쪽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이 쪽복음서들은, 이 땅의 백성들에게 엽전 몇 개에 팔리기도 하고, 계란 한 두릅(계란을 다섯 개나 열 개씩 짚으로 엮은 것)과 바꿔지기도 했으며, 그마저도 없는 가난한 이들은 정성스럽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책’이었습니다. 이 쪽복음서들은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두께가 얇고 크기도 작아서 비교적 싸게 구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한복의 소매나 허리춤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꺼내 읽기도 좋고, 유사시에 감추기도 쉬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몸의 일부분이 된 쪽복음서의 말씀은 우리 민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에 그대로 하나하나 적용되어 뿌리내렸던 것입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이 쪽복음서들을 1980년대 말까지 집이나 교회나 군부대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는데, 거의 1세기 이상을 한국교회와 함께 하며 우리 민족을 성서의 세계로 이끌고 들어 간 셈입니다.

우리 민족은 우리 손으로?!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사도행전 8장 35~36절)

에디오피아 여왕의 고위 관리 중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다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진리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처음 보는 사람의 말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 자신의 나라 밖에서 낯선 사람에게 세례까지 받고 고향땅으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그는 에디오피아의 첫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 한번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디오피아 고위 관리와 같은 이야기는 세계선교의 역사에서 그리 흔한 것은 아닙니다.

앞서 보았듯이, 성경이 우리말로 처음 번역되어 인쇄된 해는 1882년입니다. 단순히 인쇄만 된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인쇄되었으니 우리말을 사용하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골고루 읽혀졌습니다. 그런데 1882년은 이 땅 한반도에 서양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와 살기 이전입니다. 결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와 복음을 전해 주기 이전에 이미 이 땅에는 이 땅의 백성들로 이루어진 개신교 신앙공동체가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나라에 개신교 신앙공동체가 생겨난 것은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생겨난 이후 거의 100년 뒤의 일입니다. 사실 19세기가 되기까지 서양의 개신교 나라들은 동양에 있는 나라들에게 선교를 할 만큼 힘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들에 선교하는 일만큼은 천주교가 개신교를 훨씬 앞서 있었지요. 19세기가 많이 지나면서 우리나라에도 개신교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하려 시도합니다. 1832년에 귀츨라프(K. F. Guezlaff)라는 독일인 선교사가 우리나라 서해안인 황해도 백령도 부근과 충청도 앞 고대도에 상륙했습니다. 그리고 30여년 후인 1865년에 이번에는 토마스(R. J. Thomas)라는 영국인 선교사가 왔습니다. 귀츨라프나 토마스는 중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조선인들을 만나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조선인들은 조선 초기 가톨릭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조선에 선교하기 위해 왔다가 귀츨라프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되돌아갔고, 토마스는 평양에서 가까운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것입니다. 그들이 조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조선에서는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매우 심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토마스가 우리나라 당에 들어와 순교하자 서양의 개신교 나라들과 선교사들이 한국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선교하고 있던 스코틀랜드 출신 로스(John Ross) 목사와 맥킨타이어(John MacIntyre) 목사는 이제 한국인들만을 위해 일하는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조선의 정세가 그들이 조선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빌립이 에디오피아 관리를 찾아 나섰던 것처럼, 로스와 맥킨타이어 목사도 1874년 10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만주 지역의 한국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국경지역에는 ‘고려문’(高麗門)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서 중국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서로 합법적으로 교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로스 목사는 한국 상인들을 만나 한문성경을 팔며 전도하려 했지만,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의 첫 일꾼들이 될 사람들을 서서히 한명씩 로스 목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로스 목사에게 한문성경책이나 작은 책들을 처음 받아 읽은 사람이 그것을 갖고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면, 소개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는 식의 릴레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홍준, 이응찬, 서상륜, 서경조 같은 사람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람들이 로스 목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상인들이었습니다. 이제 1879년 한 해 동안에 백홍준과 이응찬, 그리고 이름 알 수 없는 2명의 조선인들이 한명씩 맥킨타이어 목사에게 세례를 받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들이 드디어 한국의 첫 개신교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우선 로스 목사를 찾아와 첫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이 주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한문에 능통하고 학식이 풍부했습니다. 또한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의식을 소유하였고, 새로운 문화와 사회질서에 대한 욕구가 강했습니다.

로스 목사는 한국인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직 하나님을 믿지도 않은 그 한국인들과 함께 시작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로스 목사는 이미 1877년에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 교재를 만들어, 한국말을 배우려는 선교사들이 사용할 수 잇게 되었습니다. 1878년에는 역시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을 우리말로 번역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세례를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선교사와 조선인이 함께 번역한 쪽복음 성경책은, 1882년 3월에 우선 누가복음 부분만 <예수성교누가복음젼서>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판됩니다. 이렇게 부분만 번역되어 출판된 복음서 성경을 ‘쪽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출판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 한국인 기독교인들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처음 신앙공동체의 첫 번째 선교과제였습니다.

첫 신앙공동체의 두 번째 선교과제는 선교사와 함께 번역한 우리말 쪽복음서를 널리 보급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이 성경을 보따리에 싸서 짊어지고 다니며 쪽복음서를 구입하도록 권했다고 해서 ‘권서인’(券書人)이라 하기도 하고, 팔고 다녔다고 해서 ‘매서인’(賣書人)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첫 신앙공동체는 이 땅 구석구석에 쪽복음서를 짊어지고 들어가 팔며 복음의 씨를 뿌린 민족 복음화 운동의 선구자들이었습니다.

만주에서 로스와 맥킨타이어 목사, 그리고 한국인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신앙공동체처럼,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한국인을 중심으로 신앙공동체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수정이라는 개화파 양반학자가 선진문물을 시찰하러 가는 신사유람단에 끼어 1882년에 일본에 가게 됩니다. 본래 농학과 법률 등 개화된 문명을 공부하려던 이수정은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농학자였던 츠다 센을 통해 기독교를 알게 되었고, 1883년 4월 29일에 미국선교사인 녹스(G. W. Knox) 목사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이후 이수정은 일본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공동체를 이룹니다. 일본에서 첫 신앙인이 되고 신앙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던 이수정의 첫 번째 선교과제 역시 성경번역이었습니다. 이수정은 한문성경에 한글로 토를 달아 한국 지식인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현토성경’이라고 합니다. 이수정의 이런 성경번역작업을 통해 일본에서 한국인들로 구성된 신앙공동체가 더욱 활발히 형성될 수 있었고, 그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성경을 보급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형성된 한국인 신앙공동체는 1885년 이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서양 선교사들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호주에서 오는 선교사들이 당시 뱃길 때문에 일본을 들렀다 우리나라에 오게 되는데, 그들은 일본에서 한국인 신앙공동체를 만나 우리나라 사람과 언어를 미리 경험하고, 이수정이 번역해 놓은 쪽복음서와 만주에서 번역된 쪽복음서를 일본에서 받아 가지고 우리나라에 온 것입니다.

이 땅에 형성된 ‘자생적 신앙공동체’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로마서 1장 7절)

앞에서 기록한 대로, 만주와 일본에서 생겨난 신앙공동체는 서양 선교사들과 함께 우리말 쪽복음 성경책을 펴내었고, 또 권서가 되어 그 성경책을 직접 우리나라에 가지고 들어와 널리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이런 일에 있어서 만주에 있는 신앙공동체의 역할을 참 컸습니다. 1882년 첫 한글 ‘쪽복음서’가 인쇄되자 권서들은 우선 만주에 있는 한인촌에, 그리고 곧바로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 와 쪽복음을 팔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1883년에는 평양과 심지어는 서울에도 쪽복음서가 전해졌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한 지역에서 조금씩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신앙공동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권서들의 발걸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기 때문에 신앙공동체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겠지만, 권서들이 기록을 남긴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여러 기록들로 미루어 보건데, 압록강에서 가까운 의주에는 1885년에 이미 18명의 신자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신앙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서울에도 신앙공동체가 있었는데, 1885년에 20여명이 세례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만주에서 처음 생겨난 신앙공동체에 속한 사람 중에 서상륜이 있습니다. 서상륜 역시 권사가 되어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던 중, 1885년 초에 만주 봉천의 로스 선교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나라 안에 세례 받아야 할 사람이 70여명이나 된다고 보고합니다.

황해도 소래에 있는 신앙공동체에서는 1886년 어간에 예배 처소를 마련해 매주일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1888년에 평안남도 내륙 깊숙이까지 여행을 다녀온 언더우드 목사는, 안주에는 100명도 더 되는 신자가 있고, 평양에는 세례희망자가 22명 있으며, 송도에도 세례희망자가 10여명이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일본 쪽에서 들어온 권서들을 통해서도 비슷하게 이루어졌을 것입니다만, 만주 쪽과는 달리, 그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어느 곳에 얼마만큼의 신앙공동체가 세워졌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신앙공동체가 이 땅 여러 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해도, 만주나 일본에 있던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우리나라를 드나들면서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신앙공동체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1884년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 온 선교사들이라 해도 서울의 사대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고, 이들 신앙공동체에 대한 정보도 없었습니다. 또한 천주교에 대한 큰 박해가 끝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일반 백성들이 쪽복음을 사서 읽거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처음에 쪽복음을 자기 돈으로 사서 읽고, 하나님을 믿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따랐습니다. 아직 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고 교회를 세워주거나 예배를 인도해 줄 선교사도 교역자도 없었습니다. 물론 어려움을 겪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처음 신앙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쪽복음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신앙공동체는 철저히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성경을 읽다가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성경을 읽다가 함께 모여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 신앙공동체 사람들은 이처럼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고, 여러 사람이 모이면 공동체를 이루어 교회를 세우고, 예배당을 짓는 일들을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해냈습니다. 바깥사람들이 도와주지 못해도 스스로 자립해 간 것이지요. 그래서 처음 신앙공동체를 일컬어 ‘자생적 신앙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뿌리요 큰 자랑입니다.




글쓴이 : 정성한(영남신학대 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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