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1)

로마제국의 쇠퇴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서론

예수 그리스도의 때

1. 로마제국의 쇠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던 때는 로마제국의 전성기가 지나서 쇠퇴해가기 시작한 때였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행동할 때가 찼었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가 40년 동안(B.C 27 ~ A.D 14) 장기 집권하여 로마제국을 유사 이래 최강 최대의 제국을 만들었다. 그는 사후 신으로 격상되어 숭배를 받기도 했다. 그의 아들 티베리우스(Tiberius)를 이어 그의 손자 칼리굴라(Caligula)와 칼리굴라의 삼촌 클라우디우스(Claudius)가 황제가 되었는데 그의 넷째 처인 아그립피나(Agrippina)는 자기의 소생 네로(Nero)를 황제로 세우기 위하여 남편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했다.

16세의 어린 황제 네로는 정서적으로 허약했는데 폭정을 시작하면서 자기의 생모를 사람들을 시켜 죽였고, 자기 아내까지 죽였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참혹하게 박해했던 것으로 유명한 네로는 내란이 일어나자 궁에서 떠나 피신해 있다가 결국 자결했다.

이렇게 되자 군대 세력이 일어나서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총독 베스파시안(Vespasian)을 황제로 옹립해 세움으로서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권세는 끝이 났고, 그 이후로 로마제국은 군인 출신 황제들의 통치 아래 들어가게 된다. 로마제국의 공화체제를 유지해오던 원로원의 세력이 황제의 세력 아래 들어가자 원로원의 정치적 도덕과 정의는 상실되어 갔고, 산업의 발달은 부진해져만 갔다. 로마 귀족주의 사회의 사치와 부패는 나라를 병약하게 만들었고, 게다가 광대한 국경지대, 특히 아시아와 북구 지방의 외세들이 국경을 침범해 국방 상황이 점점 불안해져 갔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영토 확장을 위한 침략전쟁을 끝내고 평화정책(Pax Romana)을 시행하기 시작했을 때, 로마제국의 국민들은 이제 새 시대가 왔다고 환호하면서 희망이 넘치기 시작했으나 그 새 시대의 희망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 대신 그의 평화정책으로 성취된 몇 가지 것들만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확장으로 전개될 새 시대 개척에 활용됐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평화정책으로 국내에는 전쟁이 없어져서 평안하게 되었고, 광대한 영토 안에서 치안을 보장하기 위해 로마시의 한복판을 기점으로 하여 사통팔달의 큰 신작로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에 변방에까지 신속하게 통행할 수 있게 되어 군대 출동은 물론 여행과 상업과 통신이 편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의 여행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되었고, 이 신작로들을 따라가면 로마제국 안의 어디든지 편리하게 갈 수 있었다. 물론 곳에 따라서는 구석진 데가 있어서 강도가 있고, 해적도 있었지만 옛날보다는 훨씬 안전해 진 것이다.

그리고 유럽대륙과 북아프리카와 아시아에까지 뻗어진 넓은 국토 어느 지역, 어느 부족과 민족사회에든지 여권이나 통행권 없이 단일 화폐를 지니고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이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갈 수 있었다.

로마제국의 공용어는 라틴어여서 정부의 공문서는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나 헬라 현대어 코이네(Koine)라고 불리는 말이 희랍제국 시대에 이미 이 모든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만 알면 어디든지 가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그 말로 서신을 써서 통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헬라 말이 민족과 부족 사이의 언어 장벽을 허물어 주었으므로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이 이 말만 알면 복음을 전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고, 사도들의 서신들도 이 헬라어로 쓰여져 로마제국 어디에서든지 읽힐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평화정책의 다른 한 가지는 수많은 식민지의 재래종교들이 로마 정부에 등록만 하면 자유롭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시에는 많은 종교들의 본부가 설치되었고, 로마시는 각종 종교가 뒤끓는 용광로처럼 되어 종교들이 저마다 서로 비교거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종교들은 서로 비슷해서 혼합된 것이 생기기도 하였고, 어떤 종교는 퇴락의 길로 간 것도 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민족종교는 자연숭배나 정령숭배였고, 동일한 우상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대교만은 유일신 신앙을 고집하여 타종교와 융합될 수 없었고, 다른 종교를 멸시하였으므로 미움을 받아 로마 정부는 유대교를 언제나 주시하고 있었으나 예외적으로 취급해주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한 지파로 알려져 선교는 자유로웠으나 그 대신 언제든지 정부의 박해를 받을 각오를 해야 했던 까닭은 미등록 종교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재래 종교들이 자유로웠으나 로마의 국가종교를 부인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엄금되어 있었고 황제들의 신전에 제물을 바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엄벌에 처하였다. 유대인 외의 다른 민족들은 다신종교를 믿던 사람들이어서 황제 신전에 제물을 바치는 것이 거리낌이 되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을 거부하였다. 로마 정부는 유대인들의 종교를 이해하여 유대인들과의 충돌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로 박해를 받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여 큰 제국을 만들고 평화와 번영을 도모할 여러가지 정책을 실시하면서 그 모든 백성들을 로마시민과 함께 공평하게 다스리기 위하여 「만민의 법」이라고 일컫는 「로마법」을 제정했다. 이 로마법은 민족이나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자연법」을 토대로 하여 만든 법률인데 그것은 양심의 법 또는 이성의 법이라고도 해석된다.

이 로마법은 참으로 훌륭한 법이어서 오늘날에도 참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광대한 로마제국의 영토에는 역사와 종교와 문화와 전통이 서로 다른 곳이 많아서 로마정부가 파송한 지사나 총독들은 각자의 지방 사정에 맞는 「지방법」을 만들어 다스렸기 때문에 지방법에 따른 통치가 각각 다를 수 있었고, 따라서 어떤 지방의 통치는 로마법 정신에 어긋나기도 했고, 지역적인 분쟁과 민란이 생기기도 했다. 사도 바울처럼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로마에 가서 로마법정 곧 황제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기도 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룩한 제국의 번영과 평화의 그늘에는 수많은 식민지 백성들이 고통과 절망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첫째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자기 나라와 백성을 수호한다고 믿었던 신들에 대하여 실망하고, 아예 버리기도 하였는데 자기들의 수호신이 로마의 신에게 패배를 당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나라들 사이의 전쟁은 나라의 수호신들 사이의 대결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때 로마제국 안에는 버려지고 죽어간 신들이 수없이 많았고 옛 신화들도 죽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된 옛 종교들의 신들이 죽어가던 때 유대인의 야훼신은 건재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야훼신도 오래된 옛 신의 하나로 생각하였고, 또 유대인들의 독선과 교만 때문에 유대교를 믿을 생각이 없었고, 유대인들은 로마제국 안에서 점차 소외된 민족이 되어갔다. 그러나 유대교의 한 지파로 인식되어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하나님은 유대인이 믿는 신과는 달라 보였고, 그들이 전하는 영생과 내세에 대한 메시지는 참신했다. 이 뿐 아니라 재래종교의 신자들에게서 볼 수 없는 희열과 사랑과 소망과 생명력이 넘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회가 감동적이었다.

로마제국에서 특권과 번영을 누린 부류는 고급행정들과 정치인들과 군장교급과 귀족들과 그 밖에 어떤 업적이나 돈으로 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밖의 대다수의 국민들은 첫째 과중한 세금 때문에 가난을 면할 수 없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 통치자들의 첫째 가는 책임은 되도록 많은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에 송금하는 것이었고, 그 돈으로 정부를 운영하며, 막대한 군비를 충당해 귀족들과 특권 계급 사람들의 사치와 향락의 자금을 대주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식민지의 젊은 사람들은 로마군대에 한번 징집되어 가면 고향의 부모와는 영구한 이별이 되었고, 그리고 자기들의 유산과 형제들과 고향산천을 영영 버리고 가서 다시 돌아올 소망이 없었다. 로마제국은 그 방대한 국경선을 지키고 외침을 막기 위해 막대한 수의 병사가 필요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현세에도 사후에도 희망이 없었다.

로마제국의 귀족제도는 노예제도를 필요로 했는데 이 역시 속국과 식민지 백성의 비애였다.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의 포로로 끌려가서 귀족들과 특권층의 가정에서 노예 생활을 했고, 학식 있는 노예는 로마의 관공소에서 복무할 때도 있었지만 군인으로 징집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노예들은 개인적으로 노예가 된 사람도 있었고, 더러는 가족이 몽땅 노예가 되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기한이 있는 노예도 있었고 또 종신노예도 있었다. 한번 노예가 된 사람은 사유재산도 가질 수 없었고 또 생명도 자기들 것이 아니었다. 노예들 중에는 다른 주인에게로 팔려가기도 했고, 가족인 경우 일부 가족이 팔려가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어떤 사람은 빚진 돈을 갚지 못하여 노예가 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 로마제국 국민의 절반이 노예들이었다고 하니 수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부자유와 억압과 멸시 가운데서 절망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이뤄서 살고 있던 곳에 예수 그리스도인들이 전한 메시지는 그들에게 꼭 맞는 복음이어서 마치 메마른 땅에 단비처럼 반가운 것이었다. 이때 그 복음을 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기뻐서 받아들이고 믿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단순한 복음을 들은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을 영위해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비량 전도자들이며, 복음에 대한 신학이나 교리 교육을 받은 바도 없는 평신도들이었고, 유대인들이 모이던 회당과 같은 집회 장소도 없이 가정들의 집을 집회장소 곧 예배당으로 정하여 모여서 사귀고 믿고 전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방종교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또 유대인들의 질투로 인하여 곤욕도 치르는가 하면, 때로는 로마의 관원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거주지를 옮겨 가면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기원 후 49년에 로마의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에서 살던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을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쫓겨 나왔는데 아굴라가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고린도에 와서 그곳 교인들과 합류하였고 바울과도 만났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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