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나무 크면 그늘 밑에 아무것도 못자라…젊은 리더십 길러야”

박상증 목사의 렌즈로 본 에큐메니컬 운동의 오늘과 내일

“나무가 너무 크면 그늘 아래서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죠. 젊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어요. 나 같은 늙은이들은 뒤로 물러나 있어야죠.”

▲지난 15일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실에서 에큐메니컬 원로 박상증 목사를 만났다. “늙은이는 물러나고, 젊은이들이 앞에 서야지..”라고 첫 마디를 던진 박 목사는 인터뷰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솔직했고, 정직했다. ⓒ김진한 기자   

1960년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간사로 활동하며 당시로서는 불모지였던 에큐메니컬 운동의 국제 교류 부문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박상증 목사(80, 아름다운재단 이사장)가 말했다. 얼마 전 출판된 『박상증과 에큐메니컬 운동』(삼인)의 주인공이기도 한 박 목사를 찾은 기자는 그의 렌즈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내다봤다.

그러나 많은 질문 목록들을 적은 수첩을 들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기자에게 난처하게도 박 목사는 시작부터 말을 아꼈다. 에큐메니컬 운동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논쟁하고, 그로부터 발전적인 견해가 모아지는 것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자기 같이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들의 말은 ‘옛 이야기’로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에큐메니컬 운동의 발전을 저해하는 교회·교단 이기주의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박 목사는 이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박 목사의 소속 교단인 성결교는 1961년 NCCK를 탈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NCCK 총무 길진경 목사로부터 업무 처리 능력을 인정 받은 박 목사는 NCCK 비가맹교단으로서는 유일하게 간사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NCCK 간사를) 안할 수도 있었죠. 그렇지만 내가 꼭 해야할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었고, 또 소속을 따지기 보다 정신을 따지는 (길 총무와 같은) 어른들이 있었기에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한거죠.” 그러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맹점이라고 할만한 교파주의에 관한 냉철한 분석을 덧붙였다.

“교파주의라고 하는게 에큐메니컬을 하면서 이면에는 교파주의적인 어젠다가 점점더 팽창해 가는거라고 설명할 수 있어요.  꼭 내가 독자로 할 수 밖에 없는 일은 하더라도 다른 것들은 같이 하자는 조인트 액션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점점 없어지는 거죠.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이에게 미루고, 그런 자세를 말하죠. 결국엔 연합을 하더라도 이권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을 묵인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할 것이 아니라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에큐메니컬 운동이 에큐메니컬답지 않다며 ‘소통의 부재’ 를 지적했다. 에큐메니컬 운동 인사들이 도통 보수 교회 인사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이런 얘기는 어디서도 공개된 적이 없다고 전제한 박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를 만든 결정적 인물 한철하 박사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일러줬다.

“한철하 박사. 내가 그 양반을 WCC 모임에 여러 번 초대를 했어요. 이런 사람이라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여러 번 모셨죠. 그런데 어느날 한 박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가 박 선생은 좋은데 말이야. 박 선생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은 안되겠어. 그 사람들은 크리스천이 아닌 것 같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모임에 초대를 못했어요. 그런 경험을 가졌기에 나 역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한다는 것이 보통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봐요.”

박 목사는 특히 "에큐메니컬 한다는 사람들이 선언적 입장에서 주장만했지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안했다"고 지적하며 말을 이었다.

“국내 모 유명 목사는 대화에 있어서는 자기가 일인자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친한 몇 사람 하고만 나누는 대화는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없죠. WCC 초기에 러시아 정교회가 WCC에 들어오게 하는 데 얼마나 큰 노력이 있었는지 몰라요. 당시 개신교를 가리켜 자기네 양들을 훔쳐 간다고 하는 그 정교회를 가입하게 한 것은 보통일이 아니거든요. 대단한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도자들이 그런 노력의 면모를 살펴봐야해요. 저마다 입장이 다른 사람들끼리 어떻게 대화를 전개해야 할까? 날마다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박 목사는 ‘대화’에 관한 뚜렷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 역시 이 문제에 만큼은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도자였던 박 목사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가 있었으니 보수 교회 지도자들과의 ‘대화’였다. 그는 기자에게 "이런 얘기는 어디서도 공개된 적이 없다"며 보수 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ACTS의 한철하 박사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해줬다. ⓒ김진한 기자   

하지만 이내 혀를 차고 있던 박 목사는 ‘대화’에 있어 꼭 필요한 지침 하나를 말해줬다. 상대방의 입장에 반응(Reaction)하는데 목매지 말고, 자신의 포지션(Position)을 말하라는 거였다.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박 목사는 "한국교회에서 조차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시아 나아가 세계 교회와 무슨 대화를 해나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2013년 WCC 한국 총회를 겨냥한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 목사는 곧 한국교회의 WCC 총회 준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우선 주제 선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WCC 총회 준비측에 “보다 넓은 안목을 가지라”고 제언했다. 주제 선정에 영향을 끼치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에큐메니컬 세계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큐메니컬 세계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각 지역에 중요한 신학적인 프라이오리티(Priority) 이슈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이 프라이오리티 이슈가 세계적인 공동 과제로 수용이 되고 추진해 나가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세계 교회들 간 충돌이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아시아의 프라이오리티와 아프리카의 프라이오리티가 반드시 같다고 할 수 없죠. 이렇듯 충돌이 있을 때 어떻게 세계 교회에 우리의 프라이오리티를 설정하게 만들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능력에 달린 것입니다. 단 원칙이 하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이슈를 수용하고 이해를 하면서 우리 프라이오리티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는 거죠. 다른 이들을 무시하며 우리것만 주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울러 박 목사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는 젊은 리더십에 있기에 젊은이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저는 NCCK 간사(1960년대) 시절 젊은이들이 미래라는 인식을 갖고, 몇몇 실행위원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청년위원회부터 쇄신시키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어 비교적 교단 이기주의에서 자유로운 젊은이들이 힘있게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할 때 비로소 ‘교회의 연합과 일치 운동’ 그리고 ‘사회 운동’ 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박상증 목사의 학력 및 경력

▲ 학력

1946-1948  서울대학교 / 의예
1948-  서울대학교 / 사학 / 재학중 도미
1950-1952 미국 에즈베리대학 / 문학 / 학사
1952-1957  미국 에즈베리신학교 / 신학 / 학사
1956-1957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대학원 / 신학 / 석사
1976-1978 미국 에모리대학교대학원 / 철학 / 박사과정수료

▲ 경력

1959-1961 서울신학대 전임강사
1961-1967 이화여대, 숭실대, 한국신학대 강사
1961-196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 청년국 간사
1967-1970  세계 교회협의회 (WCC) 청년국 간사
1970-1976 세계 선교위원회 간사
1976-1978 에모리대학신학교 객원교수
1978-1981 미국 디사이플교회 에큐메니컬 협동간사
1981-1985  아시아 기독교협의회 (CCA) 부총무
1985-1990 아시아 기독교협의회 (CCA) 총무
1990  아시아 기독교협의회 정년 퇴임
1990-1995  한국 기독교사회 문제연구원 원장
1991  갈현교회 담임목사
1996  KSCF 이사장
1997  서울신학대 겸임교수
1997-2007  참여연대 공동대표
1998  바른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2000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이사장
2000-현재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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