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kimkisuk

마침내 경(敬)에 이를 수 있다면May 19, 2020 10:31 AM KST

"따지고 보면 넘어짐과 절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넘어져봐야 자기의 약함을 알고, 절망에 빠져 봐야 희망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으니 말이다. 불교가 강조하는 무(無) 자를 '없다'는 의미의 명사가 아니라 '지운다'는 의미의 동사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어느 분의 글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넘어짐과 절망은 거짓된 '나'를 지우고 참된 '나'를 발견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안내인일 수 있다. 지우고 또 지운 끝에 남는 것은 경(敬)이다. 이스라엘의 지혜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뜻이었다. 자기를 지우지 않고는 경외할 수 없고, 경외하지 않으면 삶의 궁극을 통찰할 수 없다."

corona

유동하는 공포 시대의 교회Mar 13, 2020 09:03 AM KST

"코로나19가 우리 삶의 풍경을 철저하게 바꿔놓았다. 거리를 걷는 이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가급적이면 타인들과의 접촉을 삼가려 노력한다. 유동하는 공포가 스멀스멀 우리 사이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 낯선 이들을 잠재적 감염원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악수도 포옹도 다 꺼린다. 세상에서 가장 미세한 것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부하는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mose

산드로 보티첼리의 '모세의 시험과 부르심'Mar 09, 2020 10:46 AM KST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하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립니다. 조가비 위에 서 있는 10등신 미녀의 모습은 매우 고혹적으로 보입니다. 비너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즐겨 사용되던 베누스 푸디카(Venus Pudica), 즉 '정숙한 비너스'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비너스는 풍성한 머리카락과 손으로 여체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너스가 취하고 있는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자세, 즉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다른 쪽 다리를 슬쩍 구부리고 있는 자세는 몸매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kimkisuk

비난을 멈추는 순간Feb 05, 2020 07:53 PM KST

오래 전에 들었던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장학사가 어느 학교 교실에 들어가서 교탁에 놓여 있는 지구의를 보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 지구의가 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요?" 그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아마도 '지구의 자전축은 원래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였을 것이다. 그러나 앞자리에 앉은 학생은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안 그랬는데요." 책임을 추궁당할 위기에 처한 선생님은 목소리를 높이며 "너희같은 악동들이 아니면 누가 그랬겠어"라고 책망했다고 한다.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우리 현실이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bridge

담이 아니라 다리를Jan 17, 2020 01:36 AM KST

"연약한 이들보다 더 큰 위험은 자기 확신에 찬 종교인들로부터 비롯된다. 거짓 목자들은 경건의 의상을 입고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영'을 심어줌으로 그들을 지배한다. 두려움은 함께 살아야 할 이웃들을 경계해야 할 '타자'로 간주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증오의 뿌리이고 폭력의 아버지이다.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은 담을 쌓는 일에 익숙하다."

piero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례>Jan 08, 2020 06:09 AM KST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o, 1416-1492)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작품 생활 초기에는 피렌체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활동을 했다기보다는 화가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제혁업자로 구두 공장을 운영했기에 집안은 무척 부유했고, 아버지의 교육열 또한 높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교양인으로 키우기 위해 당대의 교양언어인 라틴어 수업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kudo

[김기석 칼럼] 시대와의 불화를 넘어 은총의 세계에 이르다Dec 09, 2019 10:37 AM KST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바랐던 것은 당신의 창조물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었다. ‘경탄의 능력‘을 잃어버림이 인간의 가장 큰 소외이다. 고단한 현실을 모르기에 경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눈물의 세계를 직시하면서도 생에 대해 경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다. 구상의 삶은 바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의 한 사례로 우리 가운데 있다."

henry

[김기석 칼럼] 헨리 태너의 '수태고지'Dec 03, 2019 05:39 AM KST

"많은 화가들이 '수태고지'(Annunciation)라는 이 결정적 순간을 그림 속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종교적 주제를 다루는 화가들이 이 매혹적인 순간을 놓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 가운데 얼핏 떠오르는 이들이 프라 안젤리코, 시모네 마르티니, 산드로 보티첼리, 카라바지오, 엘 그레코 등입니다. 한 점 한 점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매혹적입니다. 그런데 화가마다 그 사건을 표현한 양식과 도상학적 배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그림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날개 달린 천사 가브리엘과 놀라 주저하면서도 경외심에 사로잡힌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활동을 시작한 헨리 오사와 태너(Henry Ossawa Tanner,1859-1937)의 그림은 조금 다릅니다."

kimkisuk

[김기석 칼럼] 저기 생명이 자란다Nov 28, 2019 11:21 AM KST

"1968년에 세상을 떠난 시인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라는 시에서 남루하고 너절한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도 현실로부터 달아나기는커녕, 그 남루한 현실 속에 깊이 뿌리를 박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내가 내 땅에/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이라고 노래했다. 현실의 언저리를 깨작거리며 사는 이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이다."

ms

[김기석 칼럼] 종교도 우상이 될 수 있다Nov 15, 2019 05:33 AM KST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주님이 걸었던 고난의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길은 예루살렘 성 동쪽에 있는 스데반 문 안쪽에서 시작되어 좁고 지저분하고 번잡스러운 시장통을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는 순례자들은 가방을 앞쪽으로 메고 가이드를 따라 종종걸음을 한다.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들은 그 길이 그렇게 시장통을 통과한다는 사실 자체를 속상해한다. 고요한 묵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이야말로 예수가 걸었던 길이 맞다."

rodang

[김기석 칼럼] 로댕의 '대성당'Nov 07, 2019 03:48 PM KST

"마주보고 있는,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 두 개의 오른손이 빚어낸 공간이 참 아늑해 보입니다. 손처럼 표정이 풍부한 게 또 있을까요? 노동하는 손, 기도하는 손, 어루만지는 손, 마주잡아 친근함을 드러내는 손, 손사래를 쳐 거부감을 드러내는 손, 손은 이처럼 많은 말을 합니다. 로댕은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다가서는 손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임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누군가를 향해 내민 손은 더 이상 자신의 출신지인 육체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몸짓이라는 것이지요."

kimkisuk

[김기석 칼럼]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Oct 25, 2019 06:20 PM KST

1226년 10월 3일, 기독교 2천 년 역사상 가장 그리스도를 많이 닮았다고 상찬받는 성 프란체스코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세속적인 권력까지 손에 쥔 교권주의자들이 주님의 교회를 망가뜨려 놓고 있을 때, 그는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가난의 영성'을 주창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성자 프란체스코'에서 프란체스코가 아직 세속적인 생활에 몰두하던 어느 날 꿈에 다미아노 성자를 만났던 일화를 들려준다.

culture

[김기석 칼럼] 문학과 종교의 창조적 긴장Oct 20, 2019 06:20 AM KST

"문학은 교권적 질서에 담기지 않는 인간 경험이나 욕구를 드러낸다. 문학은 기존 질서를 뒤흔든다.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계에 의문 부호를 붙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우상 파괴적이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답을 제시하려 하지만 문학은 거듭되는 질문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려 한다. 종교는 단순화함으로 삶의 지향을 제시하려 하지만 문학은 복잡화함으로 현실의 다층성을 드러내려 한다. 문학은 정답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kimkisuk

[김기석 칼럼] 길들여진 기러기Oct 16, 2019 05:36 AM KST

"쇠렌은 이 이야기 끝에 탄식하듯 말한다. "이미 길들여진 기러기는 야생 기러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야생 기러기가 길든 기러기가 되기 쉽다. 그러니 경계하라!" 어쩌면 이것이 쇠렌 키에르케고어의 영적 유훈일 수도 있겠다. 하늘을 잃어버린 기러기, 가을이 되어도 떠날 줄 모르는 기러기의 존재는 슬프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길들여진 기러기 우화는 본향을 잃어버린 채 땅의 현실에만 탐닉하는 신앙인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상이 아닌가."

kimkisuk

진리 편에 서는 용기Oct 09, 2019 07:24 AM KST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제기한 함정 질문을 교묘하게 빠져나가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씨름으로 이야기하자면 되치기라 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답하는 대신 '황제의 것'과 '하나님의 것'은 구별된다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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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방언(7)

"사도 바울이 특히 고린도전서 14장을 쓰면서 "방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어떤 문장에서는 단수형(glossa)으로, 어떤 문장에서는 복수형(glossai)으로 썼습니다.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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