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천당이 따로 있나, 하나님 사랑에 젖어야”

정양모 신부, 죽음과 부활에 관한 견해 밝혀

"부활은 하나님을 만나서 임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與空配享)" 
 
"사랑에 젖어야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사랑의 화신이신 예수께로 반갑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나. 이게 천당이지 천당이 따로 있겠나. 세상에서 늘 비정을 일삼았다면 자기 스스로 하나님․예수님에게서 물러설 것이다. 이게 지옥이지, 지옥이 따로 있겠나."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는 연중 '부활'을 주제로 콜로키움을 하고 있다. 그동안 가톨릭 인사 가운데는 서공석 신부가 발표한 바 있으며, 조만간 심상태 신부가 발표자로 예정되어 있다.

원로 성서학자인 정양모 신부(안동교구, 77세)가 지난 3월 18일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주최한 '삶의 신학 콜로키움'에서 죽음과 부활에 대한 소회와 생각을 밝혔다. 마침 이날은 정진석 추기경 사제수품 50주년을 맞이해 명동성당에서 금경축 행사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정양모 신부는 정 추기경의 동기 동창으로 다른 17명의 동창 신부들과 그 자리에 참석했다. 정 신부는 50여 명의 동창 가운데 지난 50년 사이에 19명이 죽었고 5명은 몸 져 누워 있는데, 이날 동창 자격으로 축사한 최창무 주교가 10년 후엔 모두 회경축을 맞이해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면서, "그때 모두 만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라며 삶과 죽음은 하나님 소관이라고 말했다.

"아무렴 어떤가, 세상만사 은총인 것을!"

정양모 신부는 발제를 시작하면서, "생자필멸이라, 나는 분명히 죽겠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나이는 77세, "아버님이 88세로 어머님이 91세로 선종하셨으니 나는 앞으로 10여 년은 더 살 것 같다면서도 천식과 당뇨를 고질로 앓고 있으니 호흡이 곤란하거나 신장이 망가져서 죽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좋은 주치의들을 만나서 아직은 잘 버티고 있고, 아울러 예수와 다석에 푹 빠져 지내니 나는 행복하다"고 전했다. 

요즘은 세배 드릴 어른이 없는 고령에 접어들었다고 고백하는 정양모 신부는 "이 아름다운 세기 아름다운 고장을 떠나야 한다니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나. 아, 나는 늙었구나"하면서도, 이게 원조 아담의 허물일 리 없고 '조화옹(造化翁)'의 섭리라고 말한다. 이어 심원 안병무(1922-1996) 박사가 심장판막증으로 늘 병마와 싸우면서도, "죽음이 두렵지 않으냐"는 정양모 신부의 질문에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라고 해서 "나는 그러지 않았기에 내심 전율했다"고 고백했다. "나는 예수님보다는 배도 더 살았고 공자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인생은 찰나처럼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정양모 신부는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쓴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의 주인공 신부가 숨을 거두면서 "아무렴 어떤가, 세상만사 은총인 것을!"이라 말한 걸 닮고 싶어했다.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든지 간에 아버님 어머님처럼 선종(善終)하기를 간구한다. 선하게 살다가 복된 죽음을 맞고 싶다(善生 福終)는 것이다. 그렇게 하느님께로 돌아가고 싶다(歸天)"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노래가 그렇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던 안병무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는 정양모 신부.

천당이며 지옥이 따로 있겠나?

한편 부활에 대하여, "나의 삶은 내가 직접 경험하는 영역이니 제법 알 수 있지만, 나의 죽음은 타인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사후 내세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는 고백이다. 이와 관련해 정 신부는 프랑스 가톨릭 작가 샤를 폐기가 제1차 세계대전에 육군 중위로 참전해 치명상을 입고 전사하는 와중에 연락병이 내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진솔하게 답했다고 전한다. "매우 궁금하다!" 정 신부는 생전 처음 가보는 천로역정이 더 아름다울지를 생각했다.

예수와 부활과 관련해 정양모 신부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빠 뿐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와도 인연을 맺고 산다"며,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하여 직제자들이 예수 발현을 보고 처음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오히려 예수 유령이 나타난 줄로 여겼다는 것이다. 

"예수는 평생 독신이셨으니 몽달귀신이 되기 십상이요, 이스라엘 왕권을 탐낸 국사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되셨으니 원귀가 되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처음에는 예수 원귀를 보는 줄로 여겼지만, 발현하신 예수의 설득에 힘입어 마침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부활신앙 전통이 이었다(마카베오 후서 7,14; 다니엘 12,1-3). 이제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부활을 확신하고 온 지중해에 예수 부활 복음을 전파하는데 투신하여, 한 세기 안에 지중해 곳곳에 예수 부활을 신봉하는 교회가 생겨났다." 

정 신부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닮는 사람"이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팔자소관이 같은 운명 공동체라고 말한다. 그러니 "예수처럼 경천애인에 헌신하다 보면 밑지는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고통스럽게 종생하기도 하겠지만, 약간은 바보스러운 그 삶이 실은 부활에 이르는 길"이라 믿고 평생을 살아간다.

바울은 종말에 몸(육신)이 부활한다고 보았지만, 이는 유대인 바울이 유대교 묵시문학에서 따온 사상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유대교 묵시문학계에선 종말 내세를 현세의 연장처럼 여긴 데 비해서, 바울은 종말 내세를 현세와는 질적으로 아주 달리 보았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전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바칠 때도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우리의 몸은 유한한 물질이라 쓸 만큼 쓰면 폐품으로 변하고 결국 소멸한다는 게 정양모 신부의 소신이다. 몸이 부활하는 게 아니라 "이승을 살아가면서 이룩한 우리의 사람됨, 인간성, 인격, 인품을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신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시범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니만큼 "사랑에 젖어야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사랑의 화신이신 예수께로 반갑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나" 물으면서 이게 천당이라 한다. 세상에서 늘 비정(非情)을 일삼았다면 자기 스스로 하느님과 예수에게서 물러설 것인데, 이게 곧 지옥이지, 지옥이 따로 있겠나 물었다.

▲정 신부는 숨이 다하면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이 정겹게 맞아주실 것이라고 상상하며 안심한다.

정양모 신부는 요즘 아미타 삼존 내영도(14세기, 국보 218, 비단에 채색, 호암미술관 소장)를 눈여겨보면서 삼존의 자애로운 모습에 미소 짓곤 한다며, "내 목에 숨이 다하면 하나님, 예수님, 성모님 삼존이 나를 맞으실 정겨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삼존은 그 이름만 다를 뿐 그 내세관은 다르지 않다"고 확신한다.

구상 시인이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쓴 신앙시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한다. "병실 창문으로/오직 보이는 저 하늘,//무한히 높고 넓고 깊은/그 속이나 아니면 그것도 넘어서/그 어딘가에 있을/영원의 동산엘//털벌레처럼 육신의 허물을 벗어놓고/영혼의 나비가 되어 찾아들 양이면/내가 그렇듯 믿고 바라고 기리던/그 님을 뵈옵게 됨은 물론이려니와/내가 그렇듯 그리고 보고지고 하던/어머니, 아버지, 형, 먼저 간 두 아들과 아내/또한 다정했던 벗과 이웃들을 만나서/반기고 기쁨을 나눌 것을 떠올리니//이승을 하직한다는 게/그닥 섭섭하지만은 않구나…"

마지막으로 정양모 신부는 최근에 심취해 있는 다석 유영모의 <다석일지>를 인용하며 "부활은 하나님을 만나서 임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與空配享)"이라고 소개한다. 

묵시묵학에서 벗어나야 허구적 내세관 극복할 수 있어

발제를 마치고 나눈 토론에서, 박태식 신부(성공회 신부, 신약학)는 "정양모 신부의 말씀이 부활이란 어휘 자체에 함몰되지 않고, '부활'이란 어휘 이전의 '영원'에 대한 지평을 열어주셨다"고 평하면서, 부활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사람됨이 알곡처럼 영글어야 하나님께서 추수하신다는 말을 보충설명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정양모 신부는 "영글다는 말은 사랑에 젖는다는 말일 텐데, 요즘은 '연민'이란 말을 더 쓰고 싶다. 정의구현사제단도 불쌍하고, 정의구현사제단을 싫어하는 정진석 추기경도 불쌍하다. 가난한 이들도 불쌍하고, 사생활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대기업 직원들도 불쌍하다. 이러다 도사의 반열에 드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찬수 교수는 하느님은 자비하시니 누구든 결국엔 받아주시리라 믿는다.

이찬수 교수(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는 정양모 신부가 <살아도 님과 함께 죽어도 님과 함께>라는 책에서 이미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인에게도 비를 내려주시고 악인에게도 비를 내려주시는 것처럼 "자비하신 하나님은 경계를 두지 않고 살아서 비정을 일삼아도, 정을 행해도 다 부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정 신부는 "예전에 대전신학교에서 강의했던 한 신부가 지옥은 없다고 가르치고 책도 쓴 적이 있었다. 약하디약한 인간이 좀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대자대비하신 하나님이 지옥을 보내시겠는가? 지옥은 없다. 있더라도 한시적으로 있지 않겠는가, 주장해서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한 적이 있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 그 의미가 아니겠는가" 확인하고, 반주(飯酒)를 즐기던 황금찬 시인이 금주령이 내려진 리비아에 초청받아 가서는 "지옥이 따로 있나, 이게 지옥이지"했던 말을 빌려서, 지옥과 극락이 우리 삶 가운데 이미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유춘자 총무(한국여신학자협의회)는 부활을 역사 안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 민주화 과정에서 죽은 열사들의 사람과 죽음을 부활을 떠올렸다. 유 총무는 "오늘날 현재 교회에서 기적처럼 다가오는 허구적인 부활 말고 다른 부활에 관한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양모 신부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준해서 우리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짝 맞출 수밖에 없다"면서, 신약성서 자체가 말세가 곧 오리라는 묵시문학이 아주 성행할 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늘에 사는 사람들은 묵시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바울 역시 역사가 이천 년 넘게 지속할지 몰랐다. 묵시묵학은 지독한 난세문학이다. 난세를 어떻게 극복하겠는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극복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오시든지 해야 극복될 수 있다. 묵시문학은 창조에서 오늘에 이르는 모든 역사에 관한 얘기를 하느님에게서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묵시문학작가들이 이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았겠는가. 가까운 미래는 그들도 어느 정도 알았겠지만, 먼 미래 다른 세상의 이야기는 그들 역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 묵시문학작가들의 이야기는 공상, 환상, 망상의 이야기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교수)는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부활을 믿느냐는 질문에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양모 신부님의 말씀대로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가 부활에 대한 대답이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정양모 신부는 안동교구 사제로서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수료하고,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신학사)와 리옹가톨릭대학교(신학석사; 교부학)를 수학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신학박사; 신약성서학)을 나와 광주 가톨릭대학교와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001년 정년퇴임 후에 현재 다석학회 회장으로 일한다. 저서로는 <마르코복음서>, <루가복음서>, <이스라엘 성지-어제와 오늘>, <교회탄생이야기>, <위대한여행-사도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 등이 있다
 

(2011년 3월 22일자 글·사진 한상봉 기자 isu@nahnews.net)


(기사제휴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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