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근본주의 ㅣ 이찬수 이길용 최대광 외 7인 ㅣ 모시는사람들 ㅣ 287쪽 ㅣ 1만 5천원
종교 근본주의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신간 『종교 근본주의』가 나왔다. 10명의 국내 학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종교 근본주의 문제를 다뤘다.
이찬수 교수(강남대)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과거와 영원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이 역사적 변화에 종속되지 않는 ‘너머’를 추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역사적 변화의 산물인 ‘과거’의 특정 사건이나 사물에 집착하고, 영원한 진리와 진리의 일시적 표현을 혼동한다. 자신의 입장 역시 역사적 변화에 영향 받으며 성립됐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또 근본주의자들의 심리 기저에는 ‘불안’이 있다고 꼬집는다. 불변의 진리에 집착하고, 거짓으로 규정된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고자 하며, 금욕적 생활을 강조하는 이유를 급변하는 시대적 전환과 사상적 혼돈에 대한 ‘불안’으로 본다. 뿐만 아니다. 불안의 이면에는 억제된 과격주의와 그것을 포장하기 위한 권위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사정이 좀더 심각하다. 미국에서는 근본주의가 유럽의 근대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태동했지만, 한국은 근대주의를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한 채 미국의 근본주의를 일방적으로 이식받은 데다, 이것이 근대화의 과정 중에 이루어져 “마치 근본주의가 대단히 근대적인 것인 양”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학적 이성에 대한 경계와 정죄가 정통의 이름으로 쉽사리 포장되는 경향마저 있어왔고, 근본주의에 입각해 한국인 자신의 역사를 세속적이고 무의미한 일반 역사로 내치기도 했다.
속 깊은 병처럼 되어버린 근본주의로부터의 탈출 해법을 이찬수는 ‘범재신론’에 입각한 사고로의 전환에서 찾는다.
범재신론(panentheism)은 신을 ‘인간 안에’ 계신 분으로 만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 기독교가 ‘초인간적’ 혹은 ‘초자연적’ 신관을 강조하는 것과 대조된다. 또 근본주의자들이 신을 어딘가 특별한 공간에 있는 존재로 상상하는 경향이 큰 데 비해, 범재신론에서는 신을 “내 옆에 계신 분, 네 안에 계신 분, 나무 한 그루에도 계신 분, 기쁨과 슬픔 안에도 계신 분”으로 인식한다. 즉 무소부재의 영(the spirit)이다.
그는 이 같은 사고가 “근본주의적 자세의 근거가 되는 심리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 안에서 신적 주체성을 보도록 함으로써 변해가는 사회적 불확실성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불안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 신을 타자 안에서도 봄으로써 타자억압적 자세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서적으로도 ‘하느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해 계시고, 만물 안에 계신다’(에베소서 4장 6절)라는 신약성서의 구절과 상통한다고 본다.
기독교 신론적인 함축성도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이 신 안에 있으니, 신은 모든 것보다 더 큰 이가 된다. 그는 “단순히 공간적으로 크다기보다는, 인식하기는 하되, 언제나 인식된 것 이상이라는 뜻”이라며 “신은 경험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경험의 주체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의 경험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나, 유대인 신학자 마틴 부버가 ‘하느님은 이름으로 불려질 수 없고, 오직 탄성이 있을 뿐이다’고 한 것과 비슷하다.
이 밖에 최대광(정동제일교회 부목사)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극복 방법으로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안정으로의 퇴행이 아닌 신뢰를 통하여 자신을 창조해나가는 창조적 영성”을, 이은선(세종대 교수)은 자유토론의 활성화를 제시한다. 이은선은 “보통 신앙의 영역에서 ‘경험’을 많이 강조하지만 해석되지 않은 경험이란 독단에 빠질 수 있다”며 “경험이 해석되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토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