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연세대 신학관에 있는 교수 연구실에서 백영민 목사(연세대 신과대 및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를 만났다. ⓒ베리타스 |
“하나님은 쓰레기 봉투와 같으신 분입니다. 오갈 때 없는 쓰레기 같은 저에게도 거할 곳을 마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골치덩이 성도의 충격적인 신앙고백?!에 그를 에워싼 목회자와 성도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한 손에는 준비한 쓰레기 봉투를, 다른 한 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이 성도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목회자는 나지막히 말했다. “다음 분 나와주세요!” 백영민 목사(연합감리교회 세계교육재단 아시아지역 사무총장)가 시무했던 글렌브룩교회(미국 시카고 소재 한인교회)의 야외예배 풍경이다.
백영민 목사는 야외예배를 통해 성도들 개개인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성도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함이었고, 또 목회자인 자신에게는 정형화된 틀에 가둬놓은 하나님을 놓아주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딱딱하고, 무거운 예전 형식을 갖춘 교회 예배당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성도들이 그런 분위기 속에 자신의 신앙을 진솔하게 털어놓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간간히 진행된 야외예배 탓에 성도들은 어느새 서로 간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자신이 믿고 신앙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깊은 유대를 형성해 갔다.
백 목사는 야외예배의 일환으로 지난 2008년부터 매년 한 번씩은 이웃과 함께 하는 예배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 내 연중 가장 성대하게 예배를 치르기로 유명한 성탄 이브 예배를 교회가 아닌, 바깥에서 그리고 소외된 이웃, 특별히 노숙자들과 함께 드리고 음식을 나눴다. 백 목사의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노숙자들을 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방한복을 포함한 다양한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성탄 이브 예배를 노숙자들과 함께 갖기로 결정하기까지 어려움도 있었다. 예수님 탄생을 기념해 "교회 안에서 믿는 이들끼리 두손 모아 기도하고 경배하는 것을 좋아하실까" 아니면 "교회 밖 버려진 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복돋우며 (하나님 앞에)그들이 바로 서게 하는 것이 좋을까"란 물음 앞에 목회자와 당회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고, 결국 후자를 택했다.
백영민 목사는 교회의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성을 중요시 하는 포스트모던시대 한복판에 존재하는 한국교회가 빗장을 걸어 잠그고, 다양성을 거부한 채 동일성 신화에만 빠져 있다면 필연코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2010년 글렌브룩 교회 성도들이 훔볼트팍 노숙자들과 함께 성탄 이브 예배를 드리고 있다, ⓒ베리타스 DB |
이어 동일성 신화의 근거가 되는 일원론적 이원론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특히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구분하는 성속 이원론에 대해 백 목사는 "이원론이라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만을 인정하지 ‘속’을 인정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교회는 ‘중심’으로서의 교회는 인정하나 ‘주변’으로서의 세상은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이렇듯 따지고 보면 한국교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이원론의 근저에는 사실 일원론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포스트모던시대에 접어든 한국교회가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원론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장선 상에서 초월과 내재의 하나님에 대한 균형적 이해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힘에의 숭배’라는 원초적 종교성에 기울어져 초월의 하나님만을 모셔야 한다는 착각 때문에 속된 세상 속 한 낱 미물마저 보살피시는 내재의 하나님을 등한시 한다는 지적이다.
백 목사는 "하나님은 초월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내재의 하나님이시다"라며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하면 남성적 이미지, 파워의 이미지가 강해 초월의 하나님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실상 예수의 성육신 사건에서도 보여지듯 내재의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갖는 의미는 초월의 하나님 못지않다. 균형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연합감리교회의 파송으로 연세대 신과대 및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로 있는 백영민 목사는 이 같은 목회 철학을 바탕으로 지난 가을학기 실천신학 분야에 속한 ‘현대교회론’ 과목을 가르쳤다.
백 목사는 "‘같음’을 지상 과제로 여기듯 한국교회는 그간 전체성이란 미명 아래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빨려 들지 않는 것은 ‘주변’으로 취급하여 분리하고 배제하는 데 익숙했다"면서 "이러한 전체성의 폭력 아래 포스트모던시대 담론의 주된 요소인 ‘주변’ ‘다름’ ‘다양성’ 등은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백 목사는 끝으로 평신도의 신학화도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특히 한국에서 유수한 신학자들을 길러내 제3세계에 신학교육 기관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연합감리교회 방향성에 공감하며 이를 돕고 있는 그는 "신학의 부재가 잘못된 신앙을 야기한다"며 "평신도라 할지라도 기초적인 신학교육을 하게 되면 여러 오해들이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같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구 시대적 패러다임인 ‘동일성’의 신화에 함몰되어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 같지 않으면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다. 때문에 ‘나’와 다른 ‘너’를 분리하고 배제시켜야 할 대상으로만 파악한다.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교회 다운 교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형태로든 고정화 된지 오래다. 이러한 교회관, 목회관 아래서 저마다 개성이 독특한 성도들은 숨쉴 틈을 찾지 못한다. 이렇듯 정형화된 기존 교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차원에서 본지는 앞으로 개개인의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저마다의 ‘다름’의 가치를 교회 내에 어떻게든 새기려는 ‘다른’ 교회를 말하고자 한다. 성도 개개인의 ‘다름’이 숨쉴 수 있는 터전 찾기에 다름 아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