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마지막 주 월요일의 키워드는 단연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였다. 이날 이른 아침 ‘전병욱’과 ‘홍대새교회’는 짝으로 검색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 2위에 오르더니 하루가 저물도록 검색어 상위권에 머물렀다. 통상 네티즌들의 관심사가 시시각각 부침이 심하다는 사실, 그리고 주로 연예인들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점한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전 목사의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이다.
관련 기사도 쏟아졌다. <한국일보>의 보도를 신호탄으로 <헤럴드 경제>, <아시아 경제>, <일간스포츠>, <스포츠 경향>, <전자신문>, <스포츠 동아>, <서울신문> 등 수많은 매체에서 그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검색 포털 ‘다음’에서 검색창에 ‘전병욱 홍대새교회’를 입력하면 총 382건의 기사가 검색되는데, 이 가운데 29일 발행된 기사만 172건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48%에 이르는 분량이다. 아마도 기독교 목회자, 아니 모든 종교를 망라해 이토록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종교인은 전 목사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뜨거운 관심의 이면엔 씁쓸한 언론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일보> 보도를 제외한 전 목사 관련 기사 대부분은 선정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헤드라인부터 자극적이었다. “홍대새교회 전병욱 목사 사건 또 다시 논란 .... 여신도 불러 바지 벗고 엉덩이 마사지 요구”(서울신문), “전병욱 목사, 여성 신도 앞에서 바지 벗고 엉덩이 마사지 요구 ‘충격’”(파이낸셜 뉴스), “홍대새교회 전병욱 목사 사건, 과거 성추행 전력 알고 보니 … ‘경악’”(헤럴드 경제), “전병욱 목사 사건 공개 … 바지 내리고 엉덩이 마사지 요구”(세계일보) 등등 약속이나 한 듯 선정적인 문구로 가득했다.
기사 내용도 천편일률 그 자체였다. 특히 전 목사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여성도의 신체 부위를 만졌다든지,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마사지 해달라는 내용은 거의 모든 기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했다. 사실 목회자, 특히 전 목사 같이 대외적으로도 이름값이 높았던 목회자가 입에 담기조차 힘든 성추행 행각을 벌였음은 분명 충격적인 일이다. 그러나 언론의 선정경쟁은 전 목사의 성추행 행각만큼이나 심각한 수위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 전 목사의 회개에도 악영향
먼저 언론의 보도행태는 『숨바꼭질』의 편집의도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행위다. 사실 이 책에서 새로이 드러난 사실은 거의 없다. 그동안 기독교계 언론이나 일반 언론, 그리고 전 목사의 회개 없는 성추행 행각을 저지하기 위해 개설한 온라인 카페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에서 이미 공개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언론이 앞 다퉈 보도한 성추행 행각은 지금보다 훨씬 이전에 벌어진 일에 불과하다.
이 책의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전 목사가 저지른 수많은 성추행 행각을 고발하는 한편, 이토록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그에 대한 치리는 고사하고 그를 감싸며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한국교회의 일그러진 행태를 꼬집기 위한 목적으로 나왔다. 다시 한 번 풀이하면, 전 목사의 성범죄보다 그가 그토록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목사 행세를 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이유에 대한 규명이 주된 포인트라는 말이다.
일간신문의 기사 작성자들이 전 목사의 성추행 행각을 정말 몰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책에 적힌 고발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아 기사를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전 목사의 과거 행각은 검색 포털에 ‘전병욱’만 입력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평범한 게으름은 절대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두 번째, 언론이 진정으로 전 목사의 성범죄를 공론화시키려 했다면, 4년 전에 이 문제에 매달려야 했다. 전 목사의 성추행 행각이 처음 불거진 시점은 2010년 7월이었다. 당시 삼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던 전 목사는 공중파 TV 탐사보도 프로그램 PD로부터 성추행 관련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어 9월엔 기독교 인터넷 신문이 ‘ㅅ교회 ㅈ목사’라는 헤드라인으로 그의 성범죄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만약 이때 소위 ‘주류’ 언론이 그의 과거 성추행 행각을 면밀히 주시했다면 그의 감추어진 행각은 진즉에 드러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처음 전 목사와 접촉했던 공중파 보도 프로그램 취재진은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우려되고, 삼일교회 내부의 자정 움직임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워 보도를 하지 않았다. 한편 다른 매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민감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취재를 꺼렸다. 여기서 ‘민감하다’는 말의 의미는 잘못 건드렸다가 후폭풍을 감당하기 싫다는 것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보듯 한국 언론은 권력집단의 치부를 건드리기 꺼려한다. 이런 경향은 전 목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언론은 그해 11월 전 목사가 삼일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사임의사를 밝히자 대형사고(?)를 쳤다. 그의 사임 이유가 안마라는 기사를 버젓이 내보낸 것이다. 가뜩이나 전 목사를 옹호하는 세력으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하던 피해 여성도들은 잘못된 보도로 인해 다시 한 번 비난의 화살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 언론들이 4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약속이나 한 듯 전 목사의 행각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은 독자의 알권리 충족과 권력에 대한 감시다. 그러나 전 목사 사례로만 국한해 볼 때, 언론은 스스로의 역할을 방기했다. 우리나라 언론 시장의 60% 가까이를 차지하는 3대 일간지가 종교만 전담하는 기자를 두고 있음에도 전 목사의 범죄 행각은 줄곧 관심 밖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언론은 전 목사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모든 현안에 대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언론이 유능함을 드러내는 분야를 꼽으라면 대통령 동정 보도나 정권 홍보 정도일 것이다.
더 이상의 선정적 보도는 없어야 한다. 언론의 선정보도는 독자를 우롱하는 행위이며, 『숨바꼭질』의 기획의도마저 왜곡시키는 행위다. 또 이런 보도는 전 목사의 회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자신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홍대새교회 개척 직후인 2012년 6월22일(금) 새벽예배 설교에서 “여러분, 조롱과 치욕과 모욕을 당해보았나? (중략) 아마도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 가운데 나보다 더 많이 당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의 성추행 행각이 불거지고 삼일교회를 떠나면서 그에게 쏟아진 비난의 화살을 다분히 의식한 설교였다.
그보다 정말 언론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그가 왜 그토록 목회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치리권을 가진 교단은 그를 왜 수수방관하다시피 하는지, 그리고 그의 설교가 계속해서 유통되는 한국 교회에 혹시 문제점은 없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성추행 행각으로 여전히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