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90주년을 맞은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 아래 종교와 종파를 넘어 종교인들이 뜻을 모았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등 한국 종교계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13일 오전 7시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월례발표회에 참석해 ‘3.1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란 주제 아래 의견을 나눈 것.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발표회에는 개신교, 천도교, 불교, 천주교의 입장에서 각각 이만열 교수(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임형진 교수(천도교 동학민족 통일회 사무총장), 법 륜 스님(평화재단 이사장 정토회 지도법사)과 김홍진 신부(문정동 성당 주임)가 발표했다.
이에 응답에는 원불교, 개신교를 대표해 김대선 교무(원불교 문화 사회부장)와 손봉호 교수(전 서울대 교수, 전 동덕여대 총장, 현 고신대 석좌교수)가 나섰다.
▲ 13일 오전 7시 경동교회(박종화 목사)에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3월 월례발표회가 열렸다 ⓒ베리타스 |
개신교 이만열 교수 “3.1 운동 정신 폐쇄적 민족주의 극복케할 것”
첫 발표자인 개신교 이만열 교수는 “90년 전 3.1 운동의 핵심이 됐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이었다”며 당시 한국의 인구와 비교해 볼 때 숫자적 열세(약 20만명 인구의 1.3∼1.5%)였음에도 기독교인이 3.1 운동에 높은 참여율을 보였던 것에 고무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만열 교수는 이어 3.1 운동의 정신을 개신교 입장에서 어떻게 계승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첫째로 지역과 종교, 신분, 남녀, 연령, 이념을 초월한 3.1 운동의 일치 정신은 오늘날 한국의 민족 통일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만열 교수는 그밖에도 ▲ 3.1 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자면, 민족적 개성과 문화로 세계에 진출하고, 동시에 세계의 장점을 수용하는 자세 필요 ▲ 민족 앞에서 고민하며 신앙과 민족의식을 일치시켜 대의에 참여한 선배 기독교인들의 정신 배울 것 ▲ 협동과 화합의 정신을 사회에 보여줘야 할 것 ▲ 폐쇄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보편적 인류애로 접근하는 길이 될 것 ▲ 3.1 운동에서 기독교 신앙과 민족적 양심이 결합돼 나타난 ‘민족주의적 신앙’은 결코 닫힌 민족주의로 머물지 않고 민족적 개성과 보편적 가치를 연결시켜주는 열린 민족주의가 될 수 있을 것 등을 전했다.
천도교 임형진 교수 “3.1 운동의 비폭력 무저항 종교간의 연합 때문”
천도교 임형진 교수는 3.1 운동이 거족적인 독립운동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종교간의 연합’에서 찾았다. 3.1 운동이 성직자들의 주도로 이뤄졌기에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무릇 종교란 가름침(敎)의 으뜸(宗)을 의미하는데 당시 우리 민족의 최고 현안은 독립의 쟁취였고 이민족의 압제를 벗어난 자주독립국가의 실현이었다”며 “이 절대절명의 민족적 과제에 교리와 교설이 판이한 종교간의 연합이 실천되어 거대한 민족운동의 사명을 완수했다는 점은 오늘까지도 많은 교훈을 주고있다”고 했다.
그는 또 “특별히 3.1운동의 비폭력 무저항의 운동은 종교간의 연합을 이룬 성직자들이 앞장을 선 운동이었기에 가능했다”면서 “비록 비폭력 무저항에 일제는 가장 악랄한 방법을 동원해 탄압하고 억압했지만 숭고한 우리 민족운동의 비폭력 정신을 꺾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비폭력 무저항의 3.1 운동 정신은 간디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운동으로 이어졌고, 간디는 영국정부의 통치에 비협력, 불복종, 무저항함으로써 영국을 스스로 굴복하게 만들었다고도 덧붙였다. 3·1운동이 없었다면 20세기의 성인 간디도 없었고, 인도의 자랑스런 독립도 불가능 했다는 것.
임 교수는 그러나 한국사회의 현실은 이 같은 3.1 운동 당시의 민족적 대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작금은 민족대통합의 정신이란 말을 꺼내기도 부끄러울 정도이다. 시급한 사회통합은 3·1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비폭력 정신은 건조하게 황폐해진 우리의 마음에 여유를 줄 것이다. 또한 오늘 모든 운동에 무저항 보다 더한 무기는 없다. 3·1정신이 바로 그 시작이다”
▲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회장의 사회로 월례발표회가 진행됐다. 김명혁 목사가 각 종단의 대표들이 참여해 작성한 남북 평화와 화해를 촉구하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베리타스 |
불교 법륜 스님 “민족통일이란 시대적 과제 앞에 종교인들 뭉쳐야”
불교 법륜 스님은 3.1 운동 정신을 계승하려면 첫째로 “지금 남북분단시대의 시대적 과제는 민족통일이기에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사상·이념·종교·남녀·계급·계층을 망라해서 이 시대 최대의 민족적 과제가 민족통일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통일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라고 했고, 둘째로는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는, 우리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면서 “이제 우리는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종전선언을 하고 남북평화협정을 맺어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
법륜 스님은 또 셋째로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공존을 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면, 그것이 세계 곳곳의 갈등해소에 선구자적인 사례가 되어 동아시아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고, 넷째로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3ㆍ1운동을 함께한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을 이어받아 이 땅의 종교인들이 그 종파적 견해를 뛰어넘어 시대적 과제인 통일을 평화적 방법으로 달성하는 데 선구자적 자세로 함께 앞장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법륜 스님은 그밖에도 현재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대북 인도적 지원, 한반도 평화 정착, 민족통일운동은 이 시대에 우리가 짊어진 역사적 사명이다”라고 했다.
천주교 김홍진 신부 “일제와 타협했던 조선천주교회 참회해야”
천주교 김홍진 신부는 일제 식민지 시절 일제에 협조했던 조선천주교회의 참회를 촉구하고, 당시 민족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고 했다.
김홍진 신부는 “조선천주교회의 일제 강점기의 역사는 교회 보존이라는 자기합리화의 틀에 갇혀 있었기에 민족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며 “또한 비폭력이건 무장항쟁이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신하였던 수많은 애국열사들의 피와 땀의 역사를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응답에 나선 김대선 교무는 “3.1 운동은 갈등의 현장에서 종교간 소통이라는 명제를 찾아냄으로써 시대와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면서 “오늘에 있어서도 종교인들이 우리사회의 도덕적 기반속에 낮은곳에서 실천하며 비폭력 저항으로 대중들과 진정으로 소통해야하며 종교인들간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모범을 보여야할 것”이라고 했다.
손봉호 교수 “종교 갈등의 씨앗은 개신교 탓”
또 손봉호 교수는 응답에서 우리나라의 종교 갈등의 씨앗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그것은 대부분 개신교 측에서 일어난 것이라며 개신교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사과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손 교수는 “이것은 개신교 대부분이 아니고 일부 못난 광신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좀 이해를 해 주시고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 그렇게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아울러 손 교수는 “3.1운동 선열들이 보여주신 애국애족사상과 보편적 가치의 존중, 이것을 계승함으로써 우리 사회에도 공헌하고 종교의 화합에도 공헌하고 또 나아가서 우리나라가 좋은 통일된 나라가 되면 세계평화에도 종교들이 힘을 합쳐서 공헌할 수 있는 그런 좋은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8.15 광복절 맞아 남북 종교인들 평양에서 모이자’
발표회 말미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남북 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편지를 낭독하는 순서도 있었다.
편지를 낭독한 김명혁 목사는 “아직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 남한과 북한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8·15 광복절을 맞아 남북의 종교인들이 금강산 또는 평양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함께 모이자”고 했다.
이 편지에는 또 ““이 같은 모임이 비 정치적인 순수한 종교인들의 모임이 되기를 바라고, 평화 통일의 열기가 한반도에 널리 확산되기를 바란다”면서 “남쪽에서 개신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대표 1백여 명이 북한을 방문하여 전체적인 모임과 종교별 모임도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 편지는 김명혁 목사, 김홍진 신부(서울대교구 문정동성당 주임신부),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법륜 스님(평화재단 이사장)이 남한 종교인을 대표해 작성한 것으로 변진흥 평화문화재단 상임이사를 통해 북에 전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