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이 말하는 방언(12)

김승진 침신대 명예교수(역사신학·교회사)

사도 바울과 누가는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

VI. 고린도교회의 방언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배경설명

3. 사도 바울과 누가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쓴 사도 바울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각별한 우정을 나눈 복음의 동역자요 친구였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하는 말로 표현하면 서로 "베프"(Best Friend, 절친)였습니다. 신약성서의 "다윗과 조나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가 유일한 이방인 성서기자였음을 고려하면, 바울과 누가는 유대인/이방인의 민족적인 경계를 초월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품어준 사이였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단순히 인간적인 취향이나 비슷한 성격 때문에 맺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공통분모가 되었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며 잃어버려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강렬한 사명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이러한 믿음의 동질성과 복음적인 열정으로 말미암은 우정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임형근, "누가와 바울의 성령론," [온라인자료] http://blog.daum. net/matsy/7164281, 2019년 4월 21일 접속.].

의사였던 누가는 로마에서 감옥생활을 하던 사도 바울을 곁에서 돌보면서 그의 건강을 보살피며 끝까지 그를 지켜 주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의 임종(臨終)을 지켰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순교의 죽음을 앞둔 바울 사도가 제자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쓴 서신인데, 여기서 그는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골 4: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몬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딤후 4:9-11)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사도행전을 꼼꼼히 읽어보면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 기사(記事)에서 "우리"(We)라는 표현을 곳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사도 바울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는 것은, 그 기간과 그 지역에서 누가가 바울의 일행과 함께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최초로 "우리"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곳은 사도 바울 일행이 제2차 선교여행 중에 소아시아 지역(오늘날의 터어키)의 서해안 항구도시인 드로아(Troas)에서 마게도냐 지역의 동해안 항구도시인 네압볼리(Neapolis, 오늘날 카발라 Kavala)로 이동할 때와 빌립보(Philippi)에서 전도활동을 할 때였습니다(행 16:10-40):

(행 16:10-17)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우리가-필자 주) 빌립보에 이르니......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우리가-필자 주)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그('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필자 주)와 그 집이 다 뱁티즘을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질러 이르되......"

그 후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행 17:1-9), 베뢰아(행

17:10-14), 아덴(행 17:15-34)을 거쳐 고린도(행 18:1-17)에 와서 약 18개월 동안 고린도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교회를 개척했습니다(행 18:11). 그런데 이러한 여정에 누가가 사도 바울을 동행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절에서 갑자기 "그들이"(They)라는 대명사가 사용된 것을 보면, 아마도 빌립보에서 누가는 사도 바울 일행과 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행 17:1-2) "그들(They)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제3차 선교여행을 하던 중에 마게도냐 지방을 거쳐 "헬라 지역"(마게도냐의 남부 그리이스 지역)에 3개월을 머물며(행 20:1-3)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이 때 사도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하여 교인들과 교제하며 신앙생활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 체류하던 중에 서신서들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고 일컬어지는 로마서를 썼습니다[침례교신학연구소 편, 「성서입문」, 441. 로마서의 저술연대를 넓게 잡으면 55-58년 사이로 볼 수 있고, 대략 57년경으로 보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Warren Dowd, "Timeline of Paul's Ministry," Christianity in Vew, [온라인자료] http://christianityinview.com/paulstimeline.html, 2019년 6월 20일 접속.]. 그 후 배를 타고 수리아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유대인들로부터의 위해(危害)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후에는,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바닷길을 이용하지 않고 육로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마게도냐 지방을 거쳐서 빌립보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배를 타고 드로아(Troas)로 갔는데, 그 때 다시 "우리"라는 대명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행 20:5-6)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us)를 기다리더라. 우리(We)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이 때부터 누가는 계속해서 사도 바울과 동행하며 예루살렘까지 함께 갔습니다(행 20:8-38, 21:1-16). 또한 거기서 바울이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가이사랴 감옥에 구금되었을 때에도 함께 있었습니다(행 21:17-26:32). 그리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바닷길 여정에 누가가 함께 했습니다(행 27:1-28:15).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끝까지 누가는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행 28:16-31).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누가가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들과 로마로의 압송여정에 동행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고린도교회의 문제점들 중의 하나인 은사문제, 특히 방언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의견교환을 나누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제3차 선교여행 중에 사도 바울이 약 2년 동안 에베소에서 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복음사역을 했을 때(행 19:1-20)인 54년(AD) 경에 고린도전서를 써서 고린도교회에 보냈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후서를 쓰고 있을 때, 함께 동행 중에 있던 누가와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에 관해서 자주 상의를 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쓴 서신들을 읽어 보았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역자 바울이 기본적으로 고린도교회를 향해 가지고 있던 애정과 그 교회의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안타까와 하고 분노했던 심정에 대해, 누가는 누구보다도 깊이 공감을 하며 아픔을 함께 나누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함께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쓰기 얼마 전에 에베소에서 침례 요한으로부터 회개의 뱁티즘을 받았던 그의 제자들에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고, 또 그들에게 안수를 하니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고, 그 결과 12명쯤 되었던 그들(유대인 그리스도인들-필자 주)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행 19:1-7).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물론 이 때 그들이 말했던 방언도 사도행전 2장에서처럼 언어로서의 LT방언(복수형, elaloun te glossais, 행 19:6, "방언들을 하고," they spake with tongues-KJV, they spoke in tongues-NIV)이었습니다.

누가는 에베소에서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LT방언을 말했던 사건을 추후에 사도행전을 써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에서 경험했던 성령강림과 방언(LT방언)에 대해서 그리고 고린도교회에서 "중얼거리는 UT방언"과 "통역되지 않은 LT방언"으로 인해 야기된 교회의 혼란에 대해서, 바울은 누가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의견교환을 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추정(推定)합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추정이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했고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성령충만을 받아 외국어방언(LT방언)을 말했던 사건이 발생한 것은 기원 후 30년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냈던 것은 54년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를 대체로 63-67년경으로 잡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1차 투옥과 2차 투옥 사이에 출옥을 하여 그 당시 땅끝으로 간주되었던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고대교부들 중의 한 사람인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c. 30-100)는 사도 바울의 최후 행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1차 로마감옥 투옥의 시기에 디모데전서를 썼고 출옥 후 2차 투옥의 시기에 디모데후서를 썼다고 하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그(사도 바울-필자 주)는 동쪽과 서쪽에서 설교했고,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고상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전 세계에 (하나님의-필자 주) 의를 가르쳤고 지구의 서쪽 한계선(끝-필자 주)까지 갔다"(he preached in the East and the West, and won noble renown for his faith. He taught righteousness to the whole world and went to the western limit of the earth......).[Earle E. Cairns, 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6), 75-6.].

만약 사도 바울이 일시 출옥을 하여 서바나(스페인)까지 다녀왔다면,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여 완성했던 것은 사도 바울이 두 번째 투옥이 되었을 때이거나 순교를 당한 이후였을 것입니다. 그 시기를 여유있게 잡는다면 대략 67-70년경이 될 것입니다.[침례교신학연구소 편, 「성서입문」, 412-3, 467-9, 428-9, 490-1. Warren Dowd, "Timeline of Paul's Ministry," Christianity in Vew, [온라인자료] http://christianityinview.com /paulstimeline.html, 2019년 6월 20일 접속.].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3번에 걸친 방언사건(사도행전 2장, 10장, 19장)을 기록하면서 UT방언이 아니라 LT방언만을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방언은 바로 LT방언, 즉

뜻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언어(외국어)라는 것을 반증(反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에 의해 고린도전서가 씌어진 지 15여년 후에 쓴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UT방언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방언이란 LT방언이 참 방언이며 성경적인 방언이라는 점을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에서 썼습니다. 그런데 UT방언으로 말미암아 고린도교회가 영적인 혼란에 빠졌는데, 사도 바울은 UT방언으로 기도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을 견책(譴責)하고 교정(敎正)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UT방언은 거짓방언이며 가짜방언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 14장을 썼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unintelligible) UT방언을 인정하거나 권장하거나 UT방언의 유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 편지를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보다 LT방언을 더 많이 더 잘 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고(고전 14:18), 아무리 많은 UT방언을 말하기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몇 마디 예언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고전 14:19). 그리고 14장의 결론으로서 그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예언 말하기를 권장했으며 LT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고전 14:39):

(고전 14:18-19)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LT방언(복수형, glossais, 언어들 혹은 외국어들로서의 방언들, languages-필자 주)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UT방언(단수형, glosse, 중얼거리는 소리로서의 방언, gibberish-필자 주)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 14:39-40)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LT방언(복수형, glossais, 언어 혹은 외국어로서의 방언-필자 주)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위의 성경구절들에서 바울은 LT방언과 UT방언을 의식적으로 구별하여 사용하였는데, 그는 방언보다는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LT방언을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했지 결코 UT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권장"의 의미로 결론을 지었고, LT방언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허용"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의 정경들(Canons)이 완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LT방언도 제대로 통역만 된다면 예언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LT방언을 하려면 반듯이 통역이 되어야 한다고 고린도전서 14장 5절, 13절, 27-28절에서 반복적으로 주장을 했습니다. UT방언 기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UT방언을 성경적인 "성령의 은사"(the gift of the Holy Spirit)로조차 간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던 비성서적인 거짓방언인 UT방언은 당연히 퇴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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