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자전거에 관한 명상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자전거에 관한 명상 

                                                                                                                                                     이동순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네

길은 어제 내린 비로 온통 흙탕이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피할 도리가 없네

되돌아갈 수야 없지 않은가

나는 힘껏 페달을 밟아

흙탕으로 들어서네

흙물이 튀어 옷을 적시고 등에까지 튀어 오르네

까짓 흙탕쯤이야 털고 씻으면 되지 않나

겨우 진창길 빠져 나오니

울퉁불퉁 돌길이네

강가에 서 있는 힘찬 갈대들이

그제야 눈에 뜨이네

마른 풀 서 있는 저 강둑길에는

눈부신 아침 햇살에 내 모습 길게 비치네

기우뚱한 내 그림자

바로 세우고

나는 더욱 힘껏 페달을 밟아가네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네

시인(1950- )은 인생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고 있다. 자전거는 균형을 잡으면서 페달을 밟아야 굴러가는 운송체이므로 균형과 이동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균형과 이동이라는 모순적 조건이 공존하는 순간의 연속이 인생이다. 물론, 자전거에서처럼 인생에서도 균형을 유지하고 이동하게 하는 동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 동력 혹은 의지가 인생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들을 고려하면 시인이 인생을 본질적인 관점으로 성찰한 셈인데, 그가 시의 서두와 말미에 동일하게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네"라고 읊은 것이 그러한 판단을 지지한다. 마치 앞뒤가 막힌 봉투 속에 들어 있는 양 그는 두 구절로 인생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는]" 것이다.

그는 밤이 지나고 아침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네." 인생길에 나선 나그네의 모습이 여실하다. 외로이 들길을 지나가는 모습은 인생의 실존적 조건을 대변하는 듯이 보인다. 그가 내심 목적지를 정하기는 했겠지만, 명시적으로 그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마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나선 나그네와 같다고 해도 별 무리는 없다. 그런데 그 "길은 어제 내린 비로 온통 흙탕이네." 앞길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길을 나서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피할 도리가 없네." 흙탕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운명이다. 누가 그렇게 운명지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되돌아갈 수야 없지 않은가"? 이는 내가 주체적으로 방향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졌으나 그 상황을 살아내야 하는 조건을 반영한다. 그 조건이란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나 그 뒤에 다시 밤이 오는 자연의 비인격적인 원리처럼 새로이 길을 나선 나그네 앞에 난관이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환기한다. 마치 무심하게 반복되는 것 같은 그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 삶이다.

그래서 "나는 힘껏 페달을 밟아/ 흙탕으로 들어서네." 흙탕 같은 인생사를 지날 때는 오로지 지나가기 위해서인 양 그 흙탕 속에서 힘껏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가야 한다. 그 길 앞에 어떤 깊이의 흙탕이 또 도사리고 있을지, 어떤 돌부리가 웅크리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일단 들어선 이상 그 흙탕을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는 허우적대다 기진맥진하고 누구는 아예 주저앉기도 하고 누구는 자전거를 내려서 걸으려고 하는데, 그 와중에 "흙물이 튀어 옷을 적시고 등에까지 튀어 오르네." 흙탕을 지나며 흙물에 젖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의지에 달렸다. 흙탕을 온전히 지나게 할 관건은 마음가짐이다. "까짓 흙탕쯤이야 털고 씻으면 되지 않나." 이런 마음이 인생의 캔버스에 덧칠된 현실적 허물들을 여상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치명적이지 않게 된다.

치명적이지 않다는 것은 주저앉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으면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인 반면에, 다른 종류의 "흙탕"이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우 진창길 빠져 나오니/ 울퉁불퉁 돌길이네." 난관을 겨우 벗어났는데 "울퉁불퉁 돌길"이 이어지니까 마치 인생이 진창길만의 연속인 양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난관이 전개된다는 것은 앞서의 진창길이 끝났다는 증거이다. 난관 속에서는 이런 통찰이 필요하다. 그 통찰이 새로운 난관에 대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어제 내린 비"가 오늘을 흙탕으로 만들 수 있으나 그 흙탕을 지나면 돌길이 기다릴 수 있고 그런 길을 내가 걸어가고 있다는 깨달음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이유를 없앤다. 따라서 난관 속에서는 통찰하고자 하는 의지가 요구될 따름이다.

그 의지가 난관 너머를 보도록 시야를 넓혀준다. "강가에 서 있는 힘찬 갈대들이/ 그제야 눈에 뜨이네." 돌길 너머에서 갈대들이 힘을 북돋우고 있고, "마른 풀 서 있는 저 강둑길에는/ 눈부신 아침 햇살에 내 모습 길게 비치네." 돌길을 건너온 자신의 모습이 대견스럽다. 자기 모습이 길게 비치니까 그는 이미 돌길 너머에 서 있다. 그렇게 흙탕과 돌길과 또 다른 종류의 난관을 이어서 겪다 보면 인생은 "마른 풀 서 있는 저 강둑길"처럼 가을의 뒤안길에 와 있게 된다. 마른 풀이 겨울을 예감하게는 해도 겨울은 겨울이 염려하게 할 일이다. 지금은 가을의 강둑길을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걷고 있는 자신을 바라볼 때이기 때문이다. 또 다시 그는 행로를 이어가기 위해 균형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우뚱한 내 그림자/ 바로 세우고/ 나는 더욱 힘껏 페달을 밟아가네." 균형과 이동의 모순을 의지로 돌파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런 인생 행로에서 균형과 이동과 의지의 복합적 체계가 조성하는 긴장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구도 예외 없이 그 긴장 아래서 살아야 하는 사실이 저주스럽다. 그러나 한편, 누군가는 혼자서 균형을 잡고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서 인생의 비장감(悲壯感)을 고무하기도 한다. 어쩌면, 긴장을 회피하고 싶은 욕구를 그렇게 합리화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긴장이 조성되었는지를 본질적으로 성찰해보자. 바울 사도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게]"(로마서 3:16-18) 되었다고 보았다. 흙탕과 진창과 돌길이 연속되는 이유가 죄 때문이므로 그 성찰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평강을 얻을 길이기 때문이다. 그 평강은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는]" 행로가 혼자만의 고독한 여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하는 과정이라는 믿음 때문에 생긴다. 실제로 하나님은 흙물을 털어서 씻게 하고 진창길을 빠져나오도록 인도하고 "기우뚱한 내 그림자/ 바로 세우고/ ... 더욱 힘껏 페달을 밟아가[도록]" 도우신다.

※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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