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21:3-4)
『심청전』의 묘미는 효녀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이다.
눈먼 아버지가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딸 청이를 뱃사람들에게 팔았다.
황해도 장산곶 앞바다인가 아니면 백령도 부근인가,
그 어디쯤 된다는데, 인당수의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인당수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닐지도.
인당(印塘)은 양쪽 눈썹 사이를 일컫는다.
두 눈 사이에 있는 제3의 눈, 다른 말로 '혜안'이다.
그렇다면 청이가 뛰어든 인당수는 지혜의 바다가 아닐는지.
눈을 뜬다는 건 눈에 덮인 비늘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편견과 독선과 이념의 노예에서 해방된다는 뜻이다.
그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
황석영의 소설 『바라데기』(창비, 2007)는 또 다른 인당수로
우리를 안내한다.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어찌어찌 북한을 탈출해 런던까지 간 바리는
그곳도 지상낙원이 아님을 깨닫고 좌절한다.
그때 지혜로운 압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말,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타자를 위해 자기를 비워두는 자리
타자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는 자리
그 자리가 인당수다, 예수님의 십자가다.
실로암 연못 이야기(요한복음 9:1-12)는 성경 속에만 있지 않다.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났던 옛날이야기로 흘려
버려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에게도 실로암 연못이 필요하다.
세속에 찌든 두 눈을 말갛게 씻어야 한다.
주님,
돕는다는 건 누군가 비를 맞을 때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랍니다. 십자가는 주님만 지고 나는 영광만
누리려는 못된 버릇을 고쳐주십시오. 아멘.
※ 본 글은 기독교환경교육센터_살림의 2023 창조절 열두 째 주 묵상레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