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우리 몸의 원리를 '기(氣)의 흐름'으로 생각한다. 기(氣)가 막히지 않고 전신에 잘 흐를 때 우리 몸은 최상의 건강 상태가 된다. 기가 온몸에 고르게 퍼져 흐르면 기분(氣分)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기분이 나쁜 것이다. 기는 우리 몸을 살리는 생체 에너지이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란 말은 매우 재미있고 정확한 표현이다. "기의 흐름이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라는 뜻인데, 아픈 부위는 보통 기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거나 담음, 어혈이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곳에 침이나 뜸, 한약으로 치료를 해서 '기의 흐름'을 정상화하면 통증이 가라앉게 된다.
한의학은 이 '흐름'을 매우 중요시 하는데, 오장과 육부 사이의 흐름이 어떠한가를 병의 기준과 치료의 원리로 삼는다. 현대의학이 개별 장기의 형태학적 이상을 중요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예를 들어 신장에 이상이 있다고 할 때 한의학은 그 신(腎)의 이상이 신과 간, 신과 심, 신과 비, 신과 폐의 관계들 가운데 어떤 '관계'로 인해 생긴 것인지를 중요시 여긴다. 따라서 치료에서도 신 자체의 회복보다는 신을 고장 나게 한 병적 관계의 '기 흐름'을 바로 잡아 자연스럽게 신이 정상화되도록 유도한다.
기의 흐름이 가장 조화로운 상태를 말할 때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는 말을 쓴다. "시원한 물은 위로 올라가고 따뜻한 불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대우주인 자연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물 기운이 위로 올라가 구름에 담기고, 태양빛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자연스런 대류 현상이 일어난다. 식물 역시 뿌리를 통해 물이 위로 올라가고, 태양빛은 광합성을 통해 위에서 뿌리까지 내려온다. 소우주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바로 수승화강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상반신에 열이 나고 하반신이 차가워지는 일상생활의 연속이다. 즉 머리는 매우 많이 사용해서 열이 나는 반면, 걷기나 달리기 등의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아 차갑다. 화를 내면 얼굴이 빨개지고 열이 위로 몰리니 더욱 좋지 않다.
머리를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돕는 대표적인 활동이 바로 수면인데,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것은 수승화강에 제일 안 좋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래 현대인들은 밤 9시에도 환한 상태라 시차적응이 늘 어려운 상태이다. 게다가 SNS나 유튜브 몇 개 보다 보면 금방 12시가 넘어간다. 수승화강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일찍 자기이다. 적절한 반신욕이나 족욕,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잠들기를 적극 권장한다.
한의학에서는 '병명'이란 말을 쓰지 않고 대신에 '증'이라고 한다. 증(證)은 '증명, 증거'라는 뜻으로 '몸 속에 어떤 병이 있다는 증거'라는 의미이다. 증을 알아내는 과정을 '변증(辨證)'이라고 한다. 의사가 진단하는 '병명'이 몸 전체의 부조화보다는 국소적인 병소를 세밀히 관찰하는 개념이라면, 한의학의 '증'은 온몸의 상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50세 남자가 BUN, Cr(Creatinine, 크레아티닌), 사구체여과율(GFR)을 검사했다고 하자. 이 수치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서는 사구체 기능 저하라고 '병명'을 내리지만, 이 수치가 모두 정상이면 건강 검진 결과에서는 '정상'이라고 판정한다.
그런데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수치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해도 허리가 아프거나, 다리가 약해지고, 소변을 자주 보고 하는 현상들이 있으면, 이러한 핵심적 현상들을 합쳐서 '신허증(腎虛證, 신이 허해진 증거들)'이라는 '변증'을 내린다. 필자는 이들에게 수승화강에 도움이 되는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이나 팔미지황탕(八味地黃湯) 등의 복용을 권하는데,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것을 경험한다.
기가 흐르는 통로를 경락(經絡, meridian system)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비행기의 항로와도 같다. 하늘을 운행하는 비행기가 자신만의 항로로 날아가듯, 경락도 우리 몸에 그 자신만의 길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러한 항로가 없다면 비행기는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안전하게 가기 힘들 것이다. 이런 항로의 실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경락의 가시적인 실물을 찾으려 한다면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경락은 혈관, 신경, 근육과 같은 물질의 종합적인 작용을 만들어내는 보다 근본적인 형이상학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경락이나 기를 다루는 의학은 단지 한의학만이 아니다.
필자가 처음 서론에서 심기혈정(心氣血精) 중 현대의학은 정(精), 기능의학은 혈(血), 한의학은 기(氣), 양자의학은 심(心) 치료를 잘 한다고 했는데, 나라별로 대표적인 전통의학들은 모두 기(氣)치료를 잘 하는 의학이다.
중국의 중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 중동의 유나니 의학 등은 모두 그러하다. 이외에도 AK 의학(Applied kinesiology, 응용근신경학), 일본의 니시의학, 도수치료, 두개천골요법(CST), 정골의학, 요가, 필라테스, 마사지, 맨발걷기 등은 모두 근본적으로 기의 흐름을 좋아지게 하는 에너지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이 오행(목, 화, 토, 금, 수)에 따라 체질을 구분한다면, 아유르베다는 5원소(공기, 바람, 불, 물, 흙)인 도샤(Doshas, 원천적인 생명력)를 통해 체질을 구분한다. 한의학에서는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누지만, 아유르베다에서는 바타(Vata), 피타(Pitta), 카파(Kapha) 기질로 나눈다. 아유르베다에서 7개의 에너지 센터를 차크라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의 확장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의 흐름'을 치료하는 의학에서는 해당 장기를 치료하기 보다는 그 장기를 다스리는 기의 통로인 경락을 치료했고, 이렇게 경락을 치료하면 해당 장기의 질병도 회복되었다. 이러한 경락을 한의학에서 침, 뜸, 부항, 한약으로 치료한다면, 아유르베다에서는 오일 테라피, 한증요법, 사혈, 장해독 등으로 치료한다.
또한 경락은 빛과 색, 향(아로마), 음악으로도 치료가 가능한데, 이들은 모두 입자(particle) 보다는 파장(wave)에 가깝고, 마음을 움직이는 양자의학의 성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의학 역시 몸과 마음, 정신과 육체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질병의 발생과 치료는 항상 정신적인 측면이 관여된다고 파악한다.
이러한 에너지 의학은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 있다'는 자연의 근본원리인 프랙털 이론 및 홀로그램 이론까지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오늘날 양자물리학의 발달은 부분이 전체라는 이론을 설명해주고 생명체에 적용하여 증명까지 했는데, 그것이 바로 복제양 돌리이다. 자동차 하나의 부속으로는 자동차 전체를 만들 수 없지만, 생명체는 그 속의 한 부분으로 다시 전체를 만들 수 있다.
소우주인 인체는 대우주인 자연이 반영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의학의 기본 원리인 '몸의 각 부분은 몸 전체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검증한 것이 손이나 발에만 침을 놓아 치료하는 침법인 수지침이다. David Bohm은 이를 숨겨진 질서(implicate order)라고 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질서가 눈에 보이는 나타난 질서(explicate order) 속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체의 경락이나 차크라 체계 역시 반드시 몸속에 있고, 더 작은 부분인 손에서도 같은 시스템으로 흐르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의학적 의학관, 질병관, 인체관의 핵심은,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나오는 '정기존내 사불가간(正氣存內 邪不可干)'이라는 한 문장으로 집약된다. 내 몸에 바른 기운(正氣)이 충만하면 삿된 기운(邪氣)이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모든 한의학 문헌에는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면 먼저 그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라는 경고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우리의 마음이 올바르게 자리 잡고 있어야 우리의 몸으로 흐르는 기운이 막히지 않고 잘 흐르게 되는 것이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은 비단 우리 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교회도, 우리 사회도, 국가도 소통이 잘 되면 건전하고 순조롭게 돌아가지만, 소통이 안 되고 꽉 막힌 일부 집단이 있다면 그 사회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사와 한의사 간의 소통의 부재이다. 대화가 안 되니 꽉 막힌 상태가 되고, 양쪽으로 걷잡을 수 없이 의료비만 치솟고 있다. 다음번에 언급하겠지만 미국과 일본, 중국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통합의학이 실현되려면 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간에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 서로 자기 집단의 이익만 대변할 것이 아니고, 환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다면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들은 필자의 칼럼과 비슷한 글 들을 많이 읽고, 스스로 지혜롭게 선택하는 수 밖에 없다.
소통의 최고 달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최고의 소통 기술이 바로 남을 대접하고 섬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 7:12)"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잘 소통하고,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가 모두 소통이 잘 되어, 함께 기분(氣分) 좋게 웃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한다.
※성경에는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잠언 17:22)"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마음(心)에서 시작된 근심이 기와 혈을 거쳐 물질(精)의 세계에서 뼈를 마르게 한다는 뜻이다. 글쓴이는 사람이 마음부터 몸까지 모두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심기혈정 존재라는 인식으로 통합의학을 연구하고 있는 의사이자 목회자다. 30년 이상 진료실에서 현대의학을 펼쳐온 그는 현대의학의 장, 단점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치유는 몸뿐 아니라 마음 치료가 병행될 때 비로소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글쓴이는 연세대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차의과학대학교 통합의학대학원을 나왔다.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와 종교철학을 수학했고 현재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의료고문/목사, 한국 NLP 최면교육협회 부회장, 한마음 자연치유 상담센터/ 연세바른의원/ TLC 클리닉 원장으로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외래교수이기도 하다. 통합의학에 관한 글 총 7편을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