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교리와 '혼돈을 극복한 창조'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구약학자의 주장이 나왔다.
홍국평 교수(연세대, 구약학)는 지난 31일 연세대 원두우 신학관 예배실에서 열린 창조신학 컨퍼런스에서 전자를 조직신학자의 변증 신학적 작업에서 맺혀진 연구 결과물로 본 반면 후자는 성서학자들이 고대 근동 문화 맥락에서 성서로부터의 내적 증거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성취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둘은 창조에 대한 서로 다른 종류의 생각으로, 서로 보완하고 양립할 수 있다"며 "'무로부터의 창조'는 논리적, 철학적 사유의 산물인 반면, 혼돈을 극복한 창조는 실존적 산물이다"라고 전했다.
앞서 홍 교수는 창조에 관한 기사가 기록될 당시 창세기 1장의 저자가 씨름한 실존적 문제에 대해 "마땅히 그의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당시 고대 근동 창조신화의 골자는 혼돈의 세력의 극복이었으며 창세기 저자 역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분명히 했다.
홍 교수는 "고대 이스라엘인의 삶의 자리에서는 혼돈의 극복이라는 실존적 고백이 중요했다면 현대 신앙인은 논리적 체계 안에서 신을 설명해야 할 요구를 직면해 왔다"며 "그렇다고 현대인은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만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악의 문제는 오늘도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혼돈을 극복한 창조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삶에도 재현될 수 있고 재현되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역동적인 '혼돈을 극복한 창조'의 재현이 개념화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 보다 고통과 악이라는 실존적 문제를 마주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더 유의미할 것이라는 성서학자의 입장이었다.
홍 교수는 이어 "한 발짝 더 나가야 한다"며 "이 두 창조 개념은 각자의 시대적 도전에 응전하는 시도였고 그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새 시대는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저들이 그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면서 창조에 대한 개념이 발전했다면 우리는 우리 시대의 도전에 신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도 잠정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점도 짚었다. 홍 교수는 "'무로부터의 창조'는 종착역이 아니며 언젠가 극복될 수 있는 잠정적 개념이다"라며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신학은 늘 새롭게 자기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신학자들이 바로 그 첨병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 홍 교수는 끝으로 "이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도전에 대한 신학적 응전의 최전선에 서 있다"라며 "이들의 과업이 때로 낯설고 거칠고 위험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어제의 조직신학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기독교는 없었고 오늘의 조직신학자가 없으면 내일의 기독교는 없을 것이다. 이들의 고단한 싸움을 우리 모두가 응원해야 할 이유다"라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한편 이날 창조신학 컨퍼런스에서는 홍국평 교수 외에도 박창훈 교수(서울신대), 우종학 교수(서울대)의 발제도 이어졌다. 이들은 각각 △존 웨슬리의 자연과학 이해와 창조신학 △과학의 관점으로 본 창조과학 vs. 진화적 창조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박 교수는 "웨슬리에게서 창조 세계는 영원을 위한 종말론적인 지평으로 기능한다"며 "웨슬리의 창조신학은 기원에 대한 담론보다는 인간이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만드셨다는 세계관을 염두에 둔 것이며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위해서 종말론적인 기대와 마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웨슬리 역시 창조신학의 핵심 화두인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를 지지하고 있음을 알린 것이었다.
이어서 발표한 우 교수는 창조과학의 문제점들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우 교수는 특히 거짓 논증으로 전도하는 일과 증거를 왜곡 편집하거나 과학 문헌을 반대로 인용하는 등 비윤리적인,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창조과학을 거세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