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성한]찾아가고 찾아오는 사람들

공동체를 위한 한국교회사 읽기(3)

제중원 신앙공동체 이야기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장 4절)


1885년 6월에 이 땅에는 두 개의 개신교 신앙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 땅 곳곳에 오직 성경만을 중심으로 생겨난 순수 한국인 중심의 ‘자생적 신앙공동체’였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고국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 선교하러 온 ‘선교사 공동체’였습니다. ‘자생적 신앙공동체’가 요연히 번지는 들불처럼,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찾아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면, ‘선교사 공동체’는 나라 임금이 정한 법에 따라 서울 성곽 안으로 제한된 자신들의 주거지를 벗어나지 못하며 제중원을 중심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두 공동체는 각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지체와, 자신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체를 서로 찾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각각의 두 공동체가 마치 자신의 반쪽과도 같은 지체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885년 6월 이후 이 땅의 선교사 다섯 가정은 예배를 중심으로 한 선교사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면서 선교사 공동체는 예배 중심의 공동체에서 더 나아가 서서히 교회로 발전해 가며 그에 걸맞은 기능들을 수행해 갔습니다. 교회의 기본적인 중요 기능들에는 예배와 함께 성찬식과 세례가 있습니다. 1883년 6월 21일 공식주일예배 이후 예배는 정기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1885년 10월 11일 주일에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 첫 개신교 성찬식이 거행된 것입니다. 이 날의 성찬예배에 일본 요코하마의 루이스 감독이 참석해 예배를 인도하며 ‘오직 예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고, 장로교 언더우드 목사와 감리교 아펜젤러 목사가 공동으로 성찬식을 집례했습니다. 이 성찬예배에는 한국에 있는 모든 선교사 가족들과 제물포에 입항해 있는 미국상선의 간부선원들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1885년 12월 1일 주일에는 미국의 교회력에 따라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렸습니다.


1886년에 들어 선교사 공동체는 세례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들 가운데 스크랜튼의 딸 마리아 피취와 아펜젤러의 딸 엘리스가 유아세례를 받아야 했고, 아펜젤러가 성경공부를 시켜오던 일본공사관의 직원 역시 세례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1886년 4월 23일 부활주일에 한국에서의 첫 세례식이 베풀어졌습니다. 이 세례식은 아펜젤러가 집례했고, 언더우드는 보좌하였습니다. 두 번째 세례식은 그로부터 삼 개월 뒤인 1886년 7월 18일 주일에 있었습니다. 이 날 헤론의 딸 사라 앤이 유아세례를 받았고, 알렌과 헤론 등 주로 의사선교사들의 한국어 선생노릇을 하던 한국인 노춘경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세례식은 첫 번째와는 반대로 언더우드가 집례했고, 아펜젤러가 보좌했는데, 이 땅에서 선교사들이 한국인에게 준 첫 번째 세례였습니다.


선교사 공동체가 교회의 모습으로 발전해 가는데 고무된 선교사들은, 한국인 세례가 있었던 그 주간인 1886년 7월 23일에, 앞으로는 매 주일 11시에 서울의 외국인들이 미국 공사관 사무실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을 한국정부에 정식으로 통보합니다. 이 예배는 아주 조용히 진행될 것이고,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제 교회로서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된 선교사 공동체는, 1886년 11월 6일에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이름을 ‘연합교회’(The Union Church in Seoul)라 불렀습니다. 이 연합교회의 임원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사로 구성되었는데, 첫 담임목사는 아펜젤러였고, 임기는 2년이었습니다. 이는 선교사 공동체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생각할 때 지극히 당연했습니다. 선교사 공동체는 처음부터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체로 이루어졌으며, 성찬식과 세례식에서도 그 정신은 그대로 지켜져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외국인들만의 교회였습니다. 아직은 한국정부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전도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886년 초 선교사 공동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도주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한국인 몇 명이 이 선교사들의 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여기에 고무된 선교사들은 다음 번 기도주간에는 더 많은 한국인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1886년 7월 18일 주일에 한국인 노춘경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노춘경이 성경을 읽고 세례를 받아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과정은, 만주에서 첫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던 의주청년들의 과정과 똑같습니다. 사실 이 땅에 있으나 세상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세례를 받지 못한 ‘자생적 신앙공동체’들 역시 노춘경이 밟았던 과정을 이미 밟아왔고, 이젠느 세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인 노춘경이 세례를 받고 선교사 공동체에 참여한 것은, 이후 한국인 ‘자생적 신앙공동체’와 서양인 ‘선교사 공동체’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신앙공동체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서로 찾아가고 찾아오는 사람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사도행전 18장 9~10절)


‘선교사 공동체’와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만남은 노춘경의 세례가 있었던 그 해 1886년 말에 있었습니다. 만주의 첫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한 사람인 서상륜이 서울에 있는 ‘선교사 신앙공동체의’의 언더우드 목사를 찾아 온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자생적 신앙공동체’가 형성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인 권서입니다. 서상륜과 언더우드의 만남은 한국교회에 큰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만남은 한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자생적 신앙공동체’와 ‘선교사 공동체’가 만나 보다 더 발전적인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완성시킨 만남입니다. 우리는 이 만남이 주로 제중원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제중원 신앙공동체’라고 부르겠습니다.


서상륜은 언더우드를 만난 자리에서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존재와 규모를 이야기하고, 우선 그가 은둔하고 있었던 황해도 지방의 소래교회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서상륜의 등장은, 전도의 길을 얻지 못하고 있던 선교사들에게 천군만마(千軍萬馬)의 원군을 만난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기쁨과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정세는 서양인 선교사가 서상륜의 요청대로 당장 소래로 달려가 세례 줄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래교회 교인들 중 세례 희망자가 서울로 와서 선교사들에게 세례를 받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이듬해인 1887년 1월 23일 주일에 소래교회 교인 중 세 사람이 언더우드의 집례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선교사 공동체’에서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일원들에게 세례를 주는 과정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선교사들은 지도자 없이 성장해 온 한국 토착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철저히 검증하려는 듯, 며칠에 걸쳐 여러 선교사들 앞에서 엄격한 세례 문답을 거치게 했고, 세례를 받을 자격이 되는 지에 대해서는 선교사 전원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자생적 신앙공동체들의 신앙은 확고했습니다. 이들 역시 세례를 받으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철저히 자립적이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서울에 오고 가는 경비나 숙박비 일체를 스스로 조달했습니다. 그들은 낯선 ‘선교사 공동체’ 앞에서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본 모습을 당당하고 뚜렷하게 보여 준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세례를 받게 된 세 사람의 경우,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와 구원에 대해 핵심적인 사항을 명확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왕이 내 머리를 베어도 나는 상관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때 세례 받은 세 사람은 소래교인 서경조, 최명오, 정공빈이었습니다. 이 세례를 통해 한국 자생적 신앙공동체를 대표하는 ‘소래교회’와 서양 기독교를 대표하는 선교사들의 ‘연합교회’는 하나의 공동체(교회)가 되어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후로 ‘자생적 신앙공동체’와 ‘선교사 공동체’의 세례를 매개로 하는 만남은 계속되었습니다. 만남이 계속될수록 ‘선교사 공동체’는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887년 9월에는 소래교회의 세례교인이 11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후 선교사들은 소래교회 뿐만 아니라, 개성, 안주, 평양, 의주 등지에도 세례지원자들이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세례받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사 선교사들은 새로운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조선 법 때문에 언제까지 제중원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노릇 아니었겠습니까. 해를 넘겨 1888년 1월 중순 이후 언더우드는 금기를 깨고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존재와 그 규모를 확인하고자 송도, 평양을 거쳐 안주까지 첫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때 그는 한 마을에서 네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같은 해 4월에는 언더우드 목사와 감리교 아펜젤러 목사가 함께 두 번째 여행을 좀 더 멀리 의주까지 다녀옵니다. 그 이유는 세례지원자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계속 올라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에도 그들은 세례와 성찬식을 베풀었습니다. 1884년 4월, 언더우드는 의사 선교사 호튼(Lillias S. Horton, 1888-1921)양과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겸한 세 번째 여행을 압록강 지역까지 갔습니다. 이  때도 그들은 세례를 주고, 여러 곳의 자생적 신앙공동체들과 예배를 드렸으며, 현지 권서들의 활동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함께 간 호튼 부인은 의료사역도 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의 이 여행은 서상륜을 비롯한 현지의 여러 권서들이 안내하고 함께 했습니다.  세 번째 여행 때는 제중원을 비운 언더우드 목사를 대신해 서상륜이 병원사역을 대신합니다.



더불어 모두 함께 가는 사람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서 2장 13절)


이제 ‘자생적 신앙공동체’와 ‘선교사 공동체’의 만남을 통한 ‘제중원 신앙공동체’의 형성은 완성의 단계에 도달하였습니다. ‘제중원 신앙공동체’ 중에서 한 공동체라도 떨어져 나간다면 각각의 두 공동체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1887년 2월 이후, 선교사 공동체가 세운 연합교회는 더 이상 선교사들만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의 학생들 및 직원들, 그리고 병원에 관계된 한국 사람들이 연합교회의 예배에 많이 참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공동체의 만남 이후 한국교회의 초기 역사는 ‘제중원 신앙공동체’를 못자리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실례를 우리는 1887년 9월 27일에 설립된 ‘정동예배당’(새문안 장로교회의 처음이름)과 그로부터 열이틀 뒤인 10월 9일에 설립된 ‘베델예배당’(정동 감리교회의 처음이름)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 두 교회의 설립은 선교사들과 함께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정동예배당의 경우 교회를 세운 14명의 한국 교인 중 13명이 소래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이 날의 설립예배에 만주의 로스 목사가 참석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봉천에서 성서번역에 참여했고, 권서 노릇을 했었던 최성균을 감리교 아펜젤러 목사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에 힘입은 듯, 아펜젤러 목사는 최성균을 포함한 한국인 4명과 함께 1887년 10월 9일 베델 예배당을 설립하였습니다.


이상에서 서술한 ‘제중원 신앙공동체’에 대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봅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세계교회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보통은 외국 선교사가 어느 나라에 정착하여 먼저 선교사 공동체를 이루고, 그 나라의 사람들을 전도하여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고 교회가 발전하는 모양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일반적인 과정과는 반대입니다. 먼저 이 땅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 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며 선교사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공동체가 아직은 복음전파라는 그 본래의 임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미 성장하고 있던 자생적 신앙공동체를 만났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보다 발전된(변증법적 통일을 이루는)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이 민족을 복음화해 왔던 것입니다. 이런 양상은 남한 및 북한과 간도지방 등 한국의 모든 지방을 통해 똑같습니다. 서울에서 제중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이 지방 어디에서나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평양이든, 대구든, 광주든, 전주든, 부산이든 그 어디나, 먼저 한국인 권서들을 통해 형성된 자생적 신앙공동체가 있고, 그 존재를 확인한 선교사들이 지방에 내려가 터를 잡음으로 선교사 공동체를 이루며, 곧 두 공동체의 만남을 통해 그 지역의 ‘제중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함께 선교사역을 진행해 갑니다. 선교사들은 서울의 제중원 신앙공동체를 선교본부라 했고, 지방의 제중원 신앙공동체들을 선교지부(st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선교사들은 지방에 터를 잡게 되면 제일 먼저 병원을 세웠고 그 병원을 처음에는 모두 제중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며 형성된 서울을 비롯한 모든 지역의 ‘제중원 신앙공동체’들은 병원(의료), 학교(교육), 교회(복음)를 차례로 세우며 선교사역을 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들로 구성된 선교구조는 초기 한국교회의 성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글쓴이 : 정성한(영남신학대 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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