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병학 칼럼]대량학살의 기억과 반제국주의 운동(3)

이병학 교수(한신대학교, 신약학)

본지는 한신대 신약학 이병학 교수의 ‘대량학살의 기억과 반제국주의 운동’이란 연구논문을 3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인간의 그릇된 폭력의 역사를 해부하는 이 논문은 특히 한국전쟁 전후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민간인집단학살 문제를 성서신학적으로 풀어본 글입니다. - 편집자주 

 

 

3. 결론:

일곱 나팔들의 환상은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출애굽을 다시 일으킨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을 보여주는 신학적 틀이다. 요한은 권력과 자본을 우상 숭배하는 로마제국의 뱃속으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을 위해서 출애굽의 기억을 재현하고 현재화하였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의 목적은 수신자들로 하여금 출애굽을 다시 일으킨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고무하는 데 있다. 로마제국의 사악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불의한 세계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출애굽 사건이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에 묘사된 여러 표징들은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죄한 자들을 학살하면서 세계를 파멸로 몰아가는 로마제국의 질주를 중단시키고 대안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하느님의 해방적 행동들을 가리킨다. 그러한 표징들의 초점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자아내는 대재앙을 통한 세계의 종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학살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대항현실을 위한 희망과 저항에 있다. 하느님의 해방적 행동들은 역사적이지만, 그러나 우주적이고 상징적인 표징들로 묘사되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표징들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과거나 미래의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는 것처럼 해석되어서도 안 된다. 표징들의 현재적인 요소들과 미래적인 요소들은 요한의 수신자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역시 세계의 불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중단 없이 따라가게 하는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은 성도들의 기도가 하느님에게 상달되는 천상적 예전으로 시작하여 폭력의 역사의 끝장과 새로운 세계의 개벽을 축하하는 천상적 예전으로 끝난다. 이것은 대안적 세계의 도래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예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심판은 세계의 파괴, 세계의 종말, 또는 역사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당하는 약자들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서 이 세계 안에 있는 모든 불의와 억압과 차별을 소멸하고, 그리고 이 세계를 망하게 하는 억압자들과 살인자들과 학살자들을 심판하고 멸망시키는 역사 안에서의 심판을 의미한다.

로마제국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무죄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잔혹하게 멸절시켰다. 지배자들과 권력자들이 강요한 은폐, 침묵, 그리고 망각으로 인해서 로마제국이 자행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은 점차 지워졌지만, 요한은 희생자들의 편에 서서 대량학살의 기억을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재현하여 그의 수신자들에게 전수하였다. 대량학살은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서 창조하고 억눌린 자들을 바로의 압제의 사슬에서 해방시킨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반창조와 반출애굽의 행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위에서 논증하였듯이, 나는 처음 네 나팔들에서 타격을 받은 땅, 바다, 강 그리고 천체는 로마제국에 의해서 조직된 체제로서의 세계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다섯 번째 나팔에서 황충들은 짐승을 추종하는 우상 숭배자들에게 벌을 주는 형벌의 천사들로 해석되어야 하며, 그리고 여섯째 나팔에서 잔혹하게 집단적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 삼분의 일은 로마제국이 자행한 대량학살로 인해서 억울하게 희생된 무죄한 식민지 인민들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요한묵시록의 저자는 로마제국의 살인적인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해서 참혹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재현하고, 현재화하고, 그리고 보존하였다. 한 사회가 억울하게 처형된 민간인 집단학살의 희생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곧 그 사회가 산 자들에게 대하는 태도와 직결된다. 지난 세기에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의 희생자들이 망각된다면, 그러한 끔찍한 반인륜 범죄는 금세기에 다시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세기에 발생한 수많은 대량학살 사건들의 희생자들은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 전후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은 인권 운동의 차원에서, 남북의 화해와 민족 화합의 차원에서, 자주적인 민족 통일의 차원에서, 그리고 나아가서 외세로부터 자주권을 지키고 약자들의 인간적인 삶을 지키기 위한 반제국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보존되어야만 한다. 민족통일 교육과 평화 교육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민간인 집단학살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패권적 제국주의에 의한 경제의 세계화에 의해서 민족 국가들이 약화되고 있는 현시대에 반제국주의 운동은 요한묵시록의 저자의 시대보다도 훨씬 더 절박하다. 지난 세기에 제국주의 정부들은 총을 쏴서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하였지만, 오늘날은 총이나 무기로 사람들을 죽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총알을 발사하지 않아도 수많은 가난한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굶어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강요하는 규제가 없는 자유 시장 정책에 의해서 부채와 빈곤으로 내몰린 수많은 가난한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연이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량 자살이 지금 이미 세계 도처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은 패권적 제국주의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덫에 걸려 있는 약자들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서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출애굽을 다시 일으키고 있는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남녀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고 있다.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 없이는 국가의 자주권과 민족 통일도 기대할 수 없으며, 국민의 식량권과 건강권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리고 성평등과 생태 보존도 기대할 수 없다. 폭력과 빈곤과 죽음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평화와 정의와 생명이 지배하는 대항현실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제국주의의 사악하고 무정한 권력에 온 힘을 다해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증인들, 예언자들, 짐승의 인침을 받기를 거절하는 자들, 순교자들, 그리고 열사들이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은 그리스도인들의 반제국주의 운동을 정당화하고, 세계의 가난한 자들과 연대적인 삶을 살도록 고무한다. 폭력과 학살의 역사의 끝장과 대안적 세계의 개벽을 선포하는 일곱째 나팔은 언젠가는 반드시 울릴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희망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서도 불의와 싸우는 새로운 출애굽에 동참한다. 새로운 대안적 세계인 하느님과 그의 메시아의 제국은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기억 투쟁에 참여하면서 눌린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인권과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 지금 함께 싸우고 있는 남녀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스러운 투쟁 가운데서 이루어 나가는 승리와 연대 속에서 선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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