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4·19 학생혁명 50주년의 역사신학적 의미(Ⅱ)

<4.19와 기독교>(2) 감신대 이덕주 교수 발제문 기고

연재 중인 <4.19와 기독교> 2탄은 4.19 학생운동을 역사 신학적으로 조명한 감신대 이덕주 교수(감신대 교수/ 한국교회사) 발제문을 기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본 발제문은 얼마 전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4.19를 전후로 기독교의 반성과 회개를 촉구해 참석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덕주 교수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차례로 싣는다. - 편집자주


특혜인가? 행운인가?: 광화문 감리회관

호헌파 분열의 빌미를 제공했던 유형기 감독이 2차 임기를 마치는 1958년 9월 총회 서두에 행한 ‘감독 연설’에 이런 내용이 있다.

“1930년 총리원이 생긴 이래 집 없이 지나던 총리원은 모교회[미국연합감리교회]의 후의로 두 달 전에 광화문 네거리에 감격에 넘치는 기공식을 거행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 245평을 얻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 터를 얻는데 힘써 주신 이들이 많습니다만은 특별히 우리의 존경하는 이기붕 의장의 수고가 컸으며 또 그 터에 건축 허가를 얻는데는 우리 회원의 한 분이신 김활란 총장의 수고가 컸습니다. 그 두 분과 또 직접 간접으로 수고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총리원은 그 때까지 냉천동 감리교신학대학 구내에 있는 한옥 건물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건물은 본래 조선시대 궁궐 부속 건물로 사용되던 것인데 미감리회 선교부가 사서 감리교신학교 구내로 옮기고 처음엔 교사로 사용하다가 1930년 이후 총리원 사무실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 신학생들이 급증하여 교사가 부족하게 되었고 건물도 낡아 학교 밖에 총리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김광우 목사가 수복직후 서소문에 있던 중앙신학교 소유 건물 임대권을 확보하려 했던 것도 총리원 건물을 마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였다.
 
그 무렵 감리교회가 운영하던 국제대학도 건물이 필요했다. 국제대학은 1946년 설립되었지만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고 교수진과 시설미비로 문교부로부터 정식 대학 인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는데 1956년 4월 감리교회가 재단법인 ‘감리학원’을 설립하고 학교를 인수하여 유형기 이사장, 김광우 학장 체제로 재출발하였다. 국제대학은 당시 유일한 ‘야간 대학󰡑으로 학생은 많았지만 교수와 교사(校舍)를 확보하지 못해 무인가 학교로 폐교 위기를 맞고 있었다. 1957년 1월 이사회는 학장을 문창모 장로로 교체하고 본격적으로 학교 대지 확보에 나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광화문 네거리, 중구 태평로 1가 64번지에 있는 1천여 평 땅이 나왔다. 일제시대 일본인 소유였다가 해방 후 적산이 되어 국방부에서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총리원과 국제대학 이사회는 공동으로 불하받아 5층 건물을 짓고 1-3층은 총리원에서, 4-5층은 국제대학에서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불하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사회국 총무였던 문창모 장로의 증언이다.

“신청 단체는 모두 27개였는데 우리가 27번째로 접수했다. 경쟁이 아주 치열했던 만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리고 국방부에서는 민간인에게 불하하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사회는 이기붕 의장을 찾아가 교육사업을 위해 꼭 불하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곧 적산관리청을 찾아가 설득하고 민간에게 불하하는 것을 반대하는 국방부를 설득하여 우리 국제대학이 그 땅을 불하받을 수 있었다.”

 
적산관리청과 국방부를 움직인 것은 이기붕 국회의장이었다. 그래서 “광화문 감리회관은 이기붕 의장이 준 것이다”는 소문이 돌았다. 총리원 실행부 위원에다 국제대학 이사, 총리원 건축위원이었던 그의 아내 박마리아도 힘을 썼다. 자유당 정권의 ‘막후 실세’로 통하던 박마리아를 재단 이사로 끌어들인 것은 그가 부총장으로 있던 이화여대의 김활란 총장이었다. 유형기 감독이 1958년 9월 총회에서 총리원 기공식을 보고하면서 이기붕 의장과 김활란 총장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서울 한복판 광화문 네거리에 위치한 감리회관은 특혜로 얻은 선물이었다. 대지 확보와 건축 허가 과정에서 이기붕 ․ 박마리아 부부의 절대적인 후원을 받았다. 특혜는 ‘빚’이다. 특히 정치인으로부터 받은 특혜는 그러했다. 감리교회가 정치권으로부터 특혜성 지원을 받고 있을 1958년 봄은 ‘5․2총선’으로 불리는 제 4대 국회의원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으로 집권 자유당으로서는 개헌 통과선인 국회의원 ‘3분의 2’ 확보를 위해 정치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서 이기붕 의장은 기독교인의 ‘몰표’가 필요했고 당선 가능한 기독교인 후보가 필요했다. 비록 떨어졌지만 국제대학장 문창모 장로가 자유당 후보로 김포지역 민의원 선거에 나간 것도 이기붕 의장의 강력한 추천과 권고 때문이었다. 그만큼 당시 감리교회 지도부는 자유당 정권과 밀착되어 있었다. 잦은 교회 분열로 가뜩이나 ‘싸우는 교회’라는 비난을 받고 있던 차에 부패한 정권과 결탁하여 이권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 교회의 권위는 더욱 떨어졌다. 

기독교계의 자유당 선거지원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야욕은 1954년 11월, 소위 ‘사사오입 개헌’으로도 불리는 3선개헌안의 무리한 추진에서 드러났다.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한 3선 개헌안을 근거로 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5월 대선에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부통령으로 이기붕 의장을 지목하였다. 무리한 3선 개헌과 이기붕 부통령 후보지명이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음에도 기독교계는 3선을 노리며 대통령후보에 나선 이승만과 그의 정치 파트너를 적극 밀어주자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당시 기독교계 일반 대중지로 널리 읽히고 있던 <낙원>에서는 이승만에게 ‘경천애인의 민족적 지도자’란 칭호를 붙인 후 그를 ‘다윗’과 비교하여 인간적인 실수까지도 덮어주자는 논지를 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失手)가 있었다고 하자. 다윗에게도 실정(失政)과 실수는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백성을 사랑하는’신앙의 사람은 그의 인간적인 연약과 결여에도 불구하고 그가 십자가 앞에 겸허하고 회개할 때 그를 통하여 신의 대능(大能)이 나타나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경천애인의 민족적 지도자의 3선을 바라고 또한 그의 대를 이을 신앙과 신념의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그래도 안정권이었는데 부통령 후보로 나선 이기붕에 대한 대중의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유당으로서는 부통령 선거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고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이기붕이 ‘감리교 권사’인 것을 강조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그래서 당시 자유당 선전부장이었던 황성수 장로는 <낙원>에 다음과 같은 호소문을 썼다.
 
 “이 대통령께서 전당대회에서 총재각하(이기붕)를 지정한데 유의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부통령 지명을 ‘공의’로 생각하셨다는데 중대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각하께서 지명하신 ‘진정한 애국자’ 그리고 ‘부통령의 직책을 완수할 적격자’이신 이기붕 의장을 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서의 그 양심적이며 민주주의적이며 실천적인 정치를 통하여 민족의 백년대계에 광명을 이룩하기를 국민에게 호소하는 바이다.”

이처럼 기독교계 인사들이 나서서 “이승만 ‘장로’를 대통령에, 이기붕 ‘권사’를 부통령에 당선시키자”며 ‘종파의식’에 호소하고 나선 것은 당시 자유당 정권이 계속된 실정으로 민심을 잃어 ‘친 기독교적’ 정권 유지가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과 맞선 천주교인 장면의 인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에 개신교 지도자들은 선거를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대결로 몰아가며 ‘1백 2십만’ 개신도인들의 결집을 호소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 기독교계 지도급 인사들은 1956년 5월 실시될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정․부통령선거추진 기독교도중앙위원회’를 조직하여 자유당 선거를 지원하고 나섰다. 자유당을 지지하는 친여  기독교계인사들로 조직된 기독교도중앙위원회에서는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남북통일과 도의건국을 완수하기 위하여 장로 이승만 박사를 대통령으로!! 이대통령이 지명한 진실한 보필자이며 양심적인 정치가 권사(집사) 이기붕 선생을 부통령으로!”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전국 기독교도들에게 발표하였다.

“한국의 기독교의 진실과 양식으로 조국의 방향이 지어질려고 합니다. 정치가 작란이나 도박이나 요행이 아닌 이상 우리가 이박사가 자기의 정치의 동반자로 택하신 이기붕씨를 앞으로의 4년간의 부통령으로 선택하는 것은 극히 건전한 하나의 상식입니다. 조국과 겨레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순간입니다. 상식 이하의 불작란으로 화재를 일으키지 마십시다. 우리나라의 정치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자유의 꽃이 피고 번영의 열매가 맺도록 이승만 장로와 이기붕 권사를 우리 한국 교회 백이십만 신도는 밀고 또 밀어주시기를 삼가 권고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1956년 선거 결과는 자유당의 ‘사실상 패배’로 나타났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장로’가 5백만여 표(55%)를 얻어 당선되기는 했지만 온갖 탄압을 받으며 도전했던 진보계열의 조봉암이 얻은 2백만 표(24%)를 얻었고 자유당 지지를 거부한 무효 1백 8십만 표(22%)의 의미도 컸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이 장면에게 2십만 표 차이로 패했다는 점이다. 국민은 ‘야당’ 부통령을 선택함으로 자유당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였다.
 
그럼에도 교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유당과의 연결된 청탁과 지지의 끈을 유지하려 노력하였다. 더욱이 자유당 정권의 ‘막후 실세’로 꼽히던 박마리아는 1954년 이후 감리교 총회 총대가 되어 총리원 이사 및 실행부 위원, 감리교신학대학 이사, 감리학원(국제대학교)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교회 정치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 관계로 종종 이사회가 박마리아의 사택에서 개최되었고 그 때마다 감리교 지도자들은 서대문 ‘국회의장댁’에 초대받아 가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청탁성’ 민원이 전달되었는데 교회와 우호적 관계 유지를 원했던 자유당 정부로서도 교계 청탁을 무시할 수 없었다. 1959년 1월 민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기독교계의 대표적 언론이었던 <기독시보> 사장 강수악이 교계잡지 <기독교계>에 쓴 글은 당시 한국교회의 정치권력 결탁의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기독교인 국회의원이 한 사람도 없고 정부 요직에 기독교인 한 사람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매일같이 일어나는 교계의 대소사·교인들의 대소사의 처리와 해결을 청탁하기 위하여 얼마나 막막한 것인가는 정치에 냉담을 가장하는 자다. 기독교교육협회 협동총무 엄요섭 목사가 시교육위원이 되니 제일 먼저 청탁을 가져 오고 또 혜택을 입는 곳이 기독교계 학교들이었다는 것은 최근의 실례다.”

물론 기독교인 중에 정일형 ․ 조병옥 ․ 윤보선 같은 ‘야당’ 정치인이 없지 않았으나 이들을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목사나 교인은 없었다. 반면에 교계 인사들의 자유당 지지는 공개적이었다.

이런 기독교인들의 자유당 정권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1960년 3월 15일 대선에서 또다시 연출되었다. 1960년 대선에서 자유당은 이승만-이기붕 카드를 또다시 내놓았다. 야당에서는 이번에도 천주교인 장면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정부통령선거대책위원회’ 명의로 기독교계 신문에 실린 광고 내용의 일부다.

“부통령은 네 분이 나오셨읍니다마는 교회의 여론이 지지할 수 있는 분은 리기붕 한 분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리기붕 선생은 그 성실한 인품이 어려서부터 교회 분위기와 교회 생활을 통하여 조성된 것이며 부인 박마리아 선생과 더불어 오늘도 교회와 기독교 교육사업을 위하여 한결같은 성심을 기우리는 교인이십니다. 더욱이 카도릭이 우리나라 정치 속에 침투할 가능성이 무르익어가는 이때에 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는 신교의 신망과 기대를 리기붕 선생에게 걸어야 할 것입니다.”

자유당의 선전이란 점에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당시 기독교계(개신교)의 보편적 여론을 대변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들은 1) 그 동안 기독교계가 이기붕․박마리아 부부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2) 장면을 내세운 가톨릭계의 정치 세력 확산 의도를 방어하기 위해 이기붕 지지를 호소했다. ‘친여’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1960년 대선에서 달라진 민심 때문에 1956년 선거 때만큼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승만 ‘장로 대통령’과 이기붕 ‘권사 부통령’ 후보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런 식으로 한국교회는 독재와 부패의 오명을 쓰기 시작한 자유당 정권과 공동 운명체로 묶이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이승만 정권의 장기 독재와 부패와 타락에 염증을 느끼고 등을 돌린 민심을 읽는데 실패했다. 부패한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돌아선 민심은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교회는 다가올 민중의 심판을 읽지 못하고 ‘정치적 후원자’로서 자유당의 집권 연장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각종 교계 행사에 자유당 인사들이 초청받았고 ‘돈을 싸들고’ 지방교회 목회자들을 찾아다니는 ‘정치꾼 목사’들까지 등장했다. 그 때문에 양식 있는 학생, 지식인으로부터 한국교회는 ‘자유당 주구’란 비난을 받아야 했다. ‘3 ․ 15부정선거’ 이후 치열하게 전개된 청년학생들의 반정부 시위 현장에, 그리고 백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끝에 이승만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남으로 4·19 학생혁명이 이루어진 순간에도 기독교계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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