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7)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설치된 샘, 항상 물병을 가득 채우고 다녀야 태양이 내뿜는 열기를 그나마 견딜 수 있다. |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설치된 샘, 항상 물병을 가득 채우고 다녀야 태양이 내뿜는 열기를 그나마 견딜 수 있다. |
내게는 ‘바르셀로나’ 하면 떠오르는 숫자가 있다. 1992. 바르셀로나에서는 1992년 제25회 여름올림픽이 열렸다. 이 대회 마라톤종목에 출전한 우리나라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 오르막길에서 일본 선수를 제치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에 들어서며 두 손을 번쩍 들고 우승하던 장면은 아직까지 벅찬 감동으로 눈에 또렷하다.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다하여 이름 지어진 그 몬주익Montjuic 언덕을 올라봤다.
거의 평지를 지나다가 몬주익 언덕으로 올라서니 그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이미 40여킬로미터를 달려오면서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는데, 그 때부터 올라가야 할 언덕의 오르막 경사 2~3킬로미터는 아마도 극한의 고통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당시 황영조 선수는 경주를 마친 후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갔다. 언덕을 오르다보니 심장이 터질듯한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진다. 심장의 박동과 육체의 압박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몬주익 언덕으로 올라가기 전 에스파냐 광장, 예전 투우경기장으로 사용했던 바르셀로나 아레나가 보인다. |
▲에스파냐 광장 기둥 너머의 몬주익 언덕 국립까딸루냐미술관.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또 다른 영광의 순간이 있었다. 남자 육상 400미터 준결승전, 유력한 우승후보 영국의 데렉 레드몬드Derek Redmond가 출전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총성과 함께 힘찬 출발이 시작되었는데, 250여미터쯤에서 데렉은 오른쪽 허벅지를 손으로 붙잡으며 주저앉고 만다. 오른쪽 허벅지 부분 근육이 순간 파열된 것이다.
잠시 후 그는 고통을 참고 일어서서 절뚝거리며 텅 빈 트랙을 돈다. 그 때 관중석에서 한 사람이 안전요원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경기장에 들어오더니, 비탄의 눈물 가득한 데렉을 부축하여 그와 함께 트랙을 돌며 마침내 결승선에 다다른다. 데렉의 아버지였다. 수많은 관중은 환호하였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데렉의 모습은 금메달이 우리들에게 주는 감동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선물을 허락했다.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을 올라가면서, 1992년 바르셀로나, 두 젊은이의 ‘인내와 고통’을 떠올렸다. 히브리인들에게 신앙의 인내를 권면하며 보낸 편지에서 발신자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나서, 그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히10:36) 하였다. 몬주익 언덕을 올라가며, 인내하므로 영광스런 금메달을 품에 안았던 선수와 같이, 어떠한 약속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고난과 시험이 와도 타협함 없이 견고하고 든든하게 한결같이 오래 참으며 견디어 내는 것이 인내인 것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우리에게 ‘인내’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1929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축된 국립궁정, 현재 국립까딸루냐미술관. |
▲몬주익 언덕 올라가는 길에 있는 스페인 민속촌Poble Espanol. |
▲1992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황영조 선수가 역주하였던 몬주익 언덕 경사로. |
스페인은 태양의 나라이다.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이 온통 대지를 제압한다. 더군다나 바닷가에 위치한 바르셀로나의 맹렬한 여름 태양 열기는 참숯가마를 떠오르게 한다. 사람들은 연신 물을 마셔대고 시내 곳곳에 설치한 샘에서 물병을 가득 채운다. 사람들은 그 뜨거운 한낮의 태양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데, 그것이 ‘시에스타’이다. 아들과 함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찬바람을 쐬며 냉음료를 들이킨다. 아들[1998년생, 중학교2학년]에게 20년 전 바르셀로나의 뜨거웠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런 일이 있었어요?’ 하며 깜짝 놀란다.
몬주익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지중해를 품에 안은 바르셀로나의 풍경은 지고 있는 태양이 온 대지를 붉게 덮는 고즈넉함으로 충만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눈물, 포기와 좌절, 절망과 근심을 경험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우리에게 회복불능의 지경까지 이르는 깊은 상처를 만든다. 태양은 맹렬히 뜨겁다. 목은 불같이 타오른다.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는 힘은 다 빠졌다. 믿고 의지할 만한 구석도 끊어져 버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다. 더군다나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이다. 그런데 가만히 걸어가면서 살펴보면, 그 험난한 길에 은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신비한 은총의 샘, 안식의 마을, 거룩한 천사들이 수북하다. 이것이 까미노Camino다.(사진제공= 이대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