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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무덤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최만자의 나의 삶, 나의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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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최만자 제공)
▲최만자 선생 부친의 모습.

그럴 즈음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남쪽으로 밀려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을 얼른 고향에 데려다 놓고 작은아버지들과 함께 다시 만주로 돌아와 아버지의 유해를 모셔 가리라 생각하고 우리 가족도 남하하는 무리에 함께 한 것이 해방 이듬 해 였다. 두만강이 꽝꽝 얼어붙었을 때 그 얼음을 지치면서 조무래기 네 딸을 데리고 어머니는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남으로 남으로 내려 오셨다. 남하해 오는 과정의 고초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웠다. 그런데 우리가족이 그 고초를 겪으며 내려오고 있는 동안 국토는 둘로 나뉘어져 삼팔선이 그어지고 말았다. 삼팔선 근처에는 경비가 삼엄하였고 그 경계를 넘어오는 일은 위험스럽기 그지없었다. 기침이 나면 풀밭에 입을 대고 해야 했으며 때로는 신발 소리를 내지 않도록 맨발로 걸어야 하기도 했다. 그나마 내려오는 길의 안내는 안내꾼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두둑한 돈을 주고 안내꾼들을 사서 그들의 안내를 받아 삼팔선을 넘어오던 중에 우리 가족은 둘로 나뉘어지고 말았다.

어둡기 시작한 저녁 남하하던 사람들이 잠시 삼삼오오 풀밭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꽝하고 울렸고 순식간에 사람들은 제각기 어디론가 숨어들었다. 군화의 저벅거림이 커졌고 '나오지 않으면 죽인다'는 고함 소리에 어머니와 네살된 나와 큰언니, 그리고 우리 집에 함께 있던 단천언니가 숨어있던 풀숲에, 같이 숨었던 어린 아기가 울어 제쳤다. 그 풀숲의 모두는 붙잡혔는데 둘째, 셋째 언니는 거기에 없었다. 붙잡힌 우리는 그 군인이 몰아대는 대로 어디론가 잡혀갔고 두 언니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붙잡힌 우리들은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게 되어 커다란 트럭을 타야만 했다. 그때 어머니는 감시하는 한 사람을 붙잡고 '내가 어린 두 딸을 잃어 꼭 찾아야 하니 트럭을 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게 해달라고' 애걸복걸 하셨단다. 참으로 고마운 그 감시병은 자기가 모른체 할테니 요령껏 숨어 달아나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 고마운 아저씨 덕분으로 어머니는 두 언니를 찾아 헤메게 되었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와 또 다르게 어머니는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큰언니와 나를 얼른 서울에 데려다 놓고 다시 월북하여 두 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일단 남쪽으로 내려 왔다. 깜깜한 밤중에 한탄강 철교를 더듬어 건너 마침내 의정부에 차려졌던 피난민 수용소까지 오게 되었다. 이리 저리 인편을 찾아 서울 사시던 작은 아버지께 우리가 의정부 수용소에 있다는 전갈을 보내고 어머니는 월북채비를 서두셨다. 수용소에 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내게 남아있는데 사실 그것이 기억인지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상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그 수용소에서의 한날, 어린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잠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서명을 하고 기다리는데 누군가 두 여자아이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어머니에게 전갈을 했고 어머니는 황급히 그쪽으로 가려는 찰나에 뒤에서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소리 나는 쪽으로 훽 돌아섰을 때 거기에, 바로 거기에 두 언니가 서 있었다!

우리 넷을 어머니 혼자 감당 할 수 없어 둘째 언니는 돈으로 산 안내꾼에게 맡겼고 셋째 언니는 우리 집에 같이 있던 아저씨가 맡았었다. 단천언니는 그 아저씨의 아내이다. 우리가 뿔뿔이 헤어졌을 때 우리 두 언니들은 또 각각 따로 헤어졌다 한다. 안내꾼들은 낮에는 혹시 부모를 만나라고 큰 나무아래 언니를 놓아두고 밤이 되면 나무 위의 둥지에서 제웠단다. 그야말로 하늘의 도움으로 하루는 우리집 아저씨가 셋째언니를 업고 그 큰 나무 길로 가게 되어 두 언니가 만났다는 것이다. 둘은 부등켜안고 펑펑 울었단다. 우리 아저씨는 두 언니를 데리고 남하했는데 역시 한탄강을 얕은 곳을 찾아 물살을 헤쳐 건넜다고 한다. 나중에 맞춰보니 같은 날 한탄강을 건너왔더라고 한다. 아저씨와 언니들도 의정부 수용소로 왔고 어머니를 찾고 있던 중에 그렇게 기적적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어머니는 언니들을 그렇게 만나게 해 준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도와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남쪽으로 온 후 우리는 다시 만주에 가지 못하였다. 우리는 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우리 어머니의 연세가 금년 87세, 이제는 기력이 쇠하셔서 만주까지 가시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든 만주에 가서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어머니 살아 생전에 꼭 만주를 다녀와야 되리라 싶은 마음이 조급해 진다.

나의 어린 시절 나는 여러 번 어머니를 울게 만들었다. 언니들은 철이 들어 그랬는지 어머니에게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린 나는 아버지가 없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앞집 내 친구는 그 아버지가 사업상 일본을 나주 왕래했고 돌아올 때마다 인형이며 예쁜 선물들을 안고 오셨다. 나는 그것이 많이 부러워서 어머니에게 왜 나는 아버지가 없고 저런 선물도 못 받느냐고 떼를 썼다. 지금도 그때 어머니 모습이 생각나는데 어머니는 돌아 앉아 조용히 우시었다. 그리고 내 손을 이끌고 동네 앞에 와 있는 꽃바구니 장사에게로 가셨다. 그 꽃바구니는 내가 평소에 갖고 싶어 하던 것이었다. '자, 꽃바구니를 사줄 테니 이제 아버지 생각 날 때마다 이 바구니를 보도록 하자'라고 제안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학교 문예지에 낸 나의 글의 소재는 아버지에 관한 것이 많았고 그래서 또 어머니를 울렸다.

<보슬 보슬 보슬비 나리는 밤에 책상 앞에 앉아서 나혼자 생각,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하면, 그리운 내고향 가고파 져요/ 싸락 싸락 싸락 눈 나리는 밤에 등불 밑에 앉아서 외로운 생각, 그리운 아버지 언제나 볼까, 그리운 고향엔 언제나 갈까>(초등학교 4학년 때 지은 시, 교생 선생님이 칭찬해 준 시)

만주 벌판에 남편을 묻어 놓고 그 유해를 거두어 오지 못한 한을 한평생 품고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식민지 역사와 분단의 역사가 우리 가족에게 미친 아픔, 나의 이름은 이런 사연들을 담고 내 아버지에 대한 커다란 그리움을 안고 언제나 만주 벌판을 생각하게 하는 이름이다.

※ 이 글은 새길교회 최만자 선생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최 선생은 일제 만행이 극심해 지던 일제 강점 말기에 이주민 대열에 합류한 이주민 가족 출신으로 만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해당 글은 1995년 여신학자협의회 출판물에 앞서 게재된 바 있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총 6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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