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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9):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글 · 파울로 연세대학교 신학박사(Ph. D.)

5.1.3 셋이자 하나이어야 하는 신 존재의 모순

'있음'의 차원에서의 신 존재의 모순에서 빠지지 않는 또 다른 주제는 신성과 인성을 지닌 모순적인 신 못지않게 기독교 교의의 뼈대를 이루는 삼위일체로서의 신에 관한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삼위일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의 본질 속에서 지각하는 근본적인 차이의 총체를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기독교의 본질>, 371)고 지적한다. 여기에 인간의 본질 규정 여하에 따라 삼위일체의 근거와 기본 규정들이 요동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신의 인격성을 나타내는 삼위는 인간에 의해 상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동일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사유 속에서는 본질로서, 아니 일체로서의 신으로 정립된다. 환상에서는 삼위였던 것이 사유에서는 하나로 정립된다는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삼위일체로서의 신을 두고 다신론과 일신론, 환상과 이성, 상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라고 꼬집는다. 삼위일체는 인간에게 상상된 것(삼위)과 반대되는 것(일체)을 사유하고 사유되는 것(일체)과 반대되는 것(삼위)를 상상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다신론과 일신론, 환상과 이성, 상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다. 환상은 인격의 3체를, 이성은 인격의 1체를 제시한다. 이성에 따르면 구분되는 것이 구분으로 끝날 뿐인데 환상에 따르면 구분이 신적 본질의 통일을 폐기하는 구분되는 것으로 된다. 이성에 대해서는 신의 인격이 유령이고 상상에 대해서는 본질이다. 삼위일체는 인간에게 상상된 것과 반대되는 것을 생각하고 사유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상상하도록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유령을 본질로 생각하도록 요구한다"(<기독교의 본질>, 371-372)

인간의 상상 속에서 신은 세 가지 인격성을 지닌 세 위격의 신이나 사유 속에서는 그 본질이 하나인 신이기 때문에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만일 인간이 상상 속에서 세 인격신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포이어바흐는 인류의 유개념과 종개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인간에게서 하나의 인격은 그 자체로 육체적인 실존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개체로서의 인격적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르게 구분되지만 본질에서 만큼은 인류라는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셋 보다 더 많은 인격적 특징을 가질 수도 있는 육체적 실존인 인간이지만 그 본질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은 달라야 했다. 인간과 똑같은 것이 신에게 있지만 그것은 인간 외적인 '어떤 다른 것으로'서만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의 세 인격은 서로 서로의 바깥에 다른 실존을 갖는 것이 아니어야 했다.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기독교의 삼위는 참된 인격과는 다른 인격들이다. 그것은 오히려 상상된 가상의 인격이면서 동시에 참된 인격이 되려 하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인격성은 단일성과 상충되는 것으로 여겨져 이것이 부정되는 것도 같은 이치였다. 포이어바흐는 인격적인 현실성의 본질적 징표인 다신론적 요소를 기독교에서 비신적인 것으로 배제하고 거부하기에 기독교의 인격은 상상력의 가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그들의 개체 속에 참된 인격의 징후를 지녔다. 그들은 신성이라는 본질에서는 일치하지만 각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이었다. 그들은 참으로 신적인 인격들이었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세 인격은 표상되고 상상되고 꾸며진 인격일 뿐이다. 물론 참된 인격과는 다른 인격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상상된 가상의 인격이면서 동시에 참된 인격이 되려 하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현실성의 본질적 징표, 곧 다신론적 요소가 기독교에서는 비신적인 것으로 배제되고 거부된다."(<기독교의 본질>, 373)

따라서 기독교에서 세 인격은 복수가 아닌 단수로 끝난다. 포이어바흐는 여기서 기독교가 추구하는 단일성 역시 신의 실존형태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신은 세 인격으로 구성된 하나의 인격적 본질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이러한 단일성은 인격성을 부정하며 인격들의 독자성은 단일성의 독자성 속으로 환원되어 소멸된다. 그에 의하면 삼위일체에서 나타나는 인격은 인격들의 단순한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인격이란 단순히 성부 아버지와의 관계로 용해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인격은 서로 다르지만 본질상의 차이는 없다. 인격은 그러므로 순전히 아버지와의 관계료 용해된다. 인격의 개념은 여기서 상대적인 개념, 관계의 개념일 뿐이다. 아버지로서의 인간은 그가 아버지인 것 속에서 바로 독자적이지 못하며 아들과의 관계에서만 본질적이다. 그는 아들 없이는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 됨을 통하여 인간은 상대적이고 의존적이며 비인격적인 본질로 하락한다. 실제로 현실 속에서 인간 속에 존재하는 이러한 관계에 의해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기독교의 본질>, 374)

다시 말해 각각의 단일성을 표방하는 아버지인 신, 아들인 신, 성령인 신에게 관계 개념인 인격은 다만 상상될 뿐 실제로는 각각의 개체 속에서 참된 인격의 징후를 발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소위 기독교의 삼위일체에서의 신의 세 인격이 단지 추상화된 인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인격들이 단순히 관계나 종속성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므로 다시 복수의 진리, 다신론의 진리가 승인되고 유일신론의 진리가 거부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삼위일체의 종교적 신비 속에서도 모든 것은 현혹, 환상, 모순, 궤변으로 용해되어 버린 것이다.(<기독교의 본질>, 375) 추상화된 세 인격이 구체화 된 인격들로 둔갑하고 동격의 위상을 가진 세 인격들이 그 본질에서는 하나로 귀결되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신비가 그것이 인간의 본질과 구분되는 진리를 제시하려는 한 모순이며 환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포이어바흐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자신의 무수한 본성들 가운데 왜 하필 세 가지 인격성만 추려서 이를 토대로 삼위일체로서의 신을 옹립하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유발된다. 인간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세 인격성을 지닌 신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자기 확인 욕구에 충실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공동생활, 즉 자기 안에서 만족하는 신적인 생활"(<기독교의 본질>, 147)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고대 기독교도들이 삼위일체의 신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신비스러운 대상으로 여긴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폭로한다.

"그러나 그 대신 이들은 신 속에 가장 내면적인 사랑으로, 곧 자연적인 친화력만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랑으로 감싸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을 들여놓으면서 보상을 얻었다. 고대 기독교도들에게는 삼위일체의 신비가 놀라움, 감동, 감격의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현실성, 생활 속에서 부정한 인간의 가장 내적인 욕구의 만족이 신 안에서 삼위일체를 통해 직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기독교의 본질>, 151)

신적 가족, 즉 신과 아들 사이의 사랑의 유대를 보완하기 위해 기독교에서 성령이라는 이름의 제3의 여성의 인격이 인간에게 받아들여져 신적 가족 구성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는 설명도 보탠다. 이 같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 된 신적 가족 구성에서만, 다시 말해 삼위일체라는 관계 범주 안에서만 인간은 공허함이나 고독감을 몰아내고 신적 가족생활 양식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 자기만족에 이르게 되는 것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포이어바흐의 견해에 따르면 삼위일체 역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떤 신적인 원리가 아니라 투사의 원천인 인긴의 자기 확인 욕구에 의해 자연발생학적으로 나타난 인간적 원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신 존재, 즉 신의 '있음'의 차원과 연관해 기독교의 핵심 교리로 간주되는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포이어바흐의 이 같은 맹렬한 비판은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성의 모순을 일으키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반감을 스스로 억누르고 교리에 대한 물음 자체를 거부하며 맹신하는 무책임한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불가해한 신비라는 이름으로 형이상학적으로 나타나는 삼위일체 교리는 '있음'의 차원에 맴돌면서 신앙인들의 '삶'에 뜻 있고 맞갖게 새겨지지 못하고 있는 게 일면 사실이다. 때문에 형이상학적으로 표상된 삼위일체의 교리를 우리 삶의 자리에서 뜻 있게 새기기 위해 그로부터 실천적 함의를 도출해 내려는 사회적 삼위일체 논의는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다. 이러한 논의의 전개는 삼위일체 신비의 폐기를 주장하는 소극적 대응보다는 훨씬 더 나은 대응 방식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그리스도교 전통의 뿌리로 남아있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비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줄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의 상황화를 도모해 현대 삼위일체 담론을 이끄는 사회적 삼위일체론 논의에 있어서 그 실천적 의의가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파생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당위로서의 실천이 강조될 때 사회적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에 해당하는 성질을 갖는 사회, 정의, 평등이라는 숭고한 가치마저 인간의 자기중심주의로 환원되어 인간의 자기 확장 욕망의 투사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숭고한 가치도 인간의 자기중심적 횡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그렇다.

이상과 같이 우리는 '있음'의 차원에서의 신 존재의 모순으로서 기독교 교의의 뼈대를 이루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신과 삼위일체로서의 신이 갖는 모순을 포함해 갖가지 모순을 살펴봤다. 여기서 우리가 되짚어야 할 것은 지성의 정점으로 올려놓은 신과 감각 혹은 체험의 대상으로서의 신의 대립은 결국 형이상학적 유무신론의 대립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서로 증명이 불가한 단지 신념들의 부딪힘에 불과하다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있음'의 차원에서의 이러한 신 존재 모순에는 인간이 바라고 원하는 '현실로서의 신'과 구중궁궐의 저 높은 곳에 인간 외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당위로서의 신'의 괴리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인 관계에 있어 이러한 괴리를 해소하고자 신성과 인성의 공존을 위한 타협책으로 제시된 것이 '유사성'이지만 태생적으로 동일적 비동일성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기에 이로부터 투사된 신성은 어떠한 형태로든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날카로운 비판도 곱씹을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신의 존재개념과 연관된 물음이 '무엇'이라면 신이 인간에게 알려지는 방법에 관한 물음은 '어떻게'일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신 인식의 문제로 이끈다. 다음으로는 신 존재개념과 긴밀히 연관된 '앎'의 차원에서의 신 인식의 모순을 다루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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