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새벽별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새벽별

                                                                                                                                         정호승

새벽별 중에서

가장 맑고 밝은 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시인(1950- )은 새벽별을 보며 사랑의 속성을 성찰한다. 별에 대한 평가를 대립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사랑의 속성이 다면적이며 사랑이 정서적 효과에 그치지 않음을 알린다. 그에게 사랑은 자기를 긍정하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을 반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기 확장을 경험하게 하는 한편으로 통절한 심정으로 자기 존재 자체를 돌아보게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은 사랑의 본질을 반영한다. 사랑의 모습이 새벽별에 투영된 것은 본질을 환기하기 위한 시인의 장치이다. 새벽은 욕망의 분진이 가라앉은 명징한 거울 같은 순간이므로 그 하늘에 뜬 별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상태를 가리키지 않겠는가? 그래서 새벽별의 모습은 그 별을 보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발견은 새벽을 깨웠을 때 가능하므로 사랑이 사실상 의지적 결단을 전제하고 있음도 알린다. 결단은 선택을 암시한다. 따라서 사랑은 선택의 의지와도 상관있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맑고 밝은 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이 "가장 맑고 밝은 별"이 된다. 내가 그를 맑고 밝게 보는 것이다. 사랑은 그런 시각을 부여하므로 그 별이 맑고 밝은 만큼 그 사랑도 그러하다. 그 순간에는 나의 욕망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열정만 빛난다. 따라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맑고 밝[게]" 빛난다는 것은 내가 그러함을 반증한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기 확장이다. 그가 사랑의 대상에게서 가장 맑고 밝은 존재를 발견하고, 그 발견이 사랑의 주체도 그런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벽별 같은 사랑은 주체와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만큼 초월적이다. 그 초월의 공간에서는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가 된다. 그 순간에는 순수한 사랑의 열정만이 빛나므로 주체나 대상의 욕망이 끼어들지 못한다. 주체와 대상이 동일시된다.

자기 확장은 사랑이 의지와 상관있음을 알린다. 새벽이 의지를 환기하지 않는가? 새벽별을 보는 일은 평상적이지 않으므로 의도적 통제를 암시한다. 그때는 정욕과 탐심이 가라앉은 상태이므로 그 상태의 사람은 "가장 맑고 밝은 별"에 비길 만하다. 사랑하기 위해 자기의 욕망을 가라앉히는 것만큼 고귀한 일은 없다. 적어도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러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가장 고귀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 이유는 그 자체의 투명성 때문만 아니라 그것이 욕망의 안경을 벗었을 때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고귀한 것은 세상의 상식을 거스른다. 이것이 사랑이 정서적 반응에 그치지 않고 의지의 발현이라고도 보는 이유이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는 두드러지게 맑고 밝게 빛난다.

그러나 자기 확장은 맑고 밝은 모습에 그치지 않고 통절함의 연장이기도 하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가장 어둡고 슬픈 모습을 목격하는 것만큼 통절한 순간이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이라는 선언은 통절한 자기반성의 결과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사랑의 속성에 따라서 그 사람은 "가장 맑고 밝은 별"이어야 하는데, 그가 가장 어둡고 슬픈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자기 확장과 동일시의 대상일 터인데 어둡고 슬플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내가 욕망의 안경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어둡고 슬프다는 규정 자체가 고민을 반증한다. 그 고민은 통절한 자기반성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어서 자기의 욕망을 따르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욕망의 분진이 가라앉은 배경에 자신의 욕망이 부유물처럼 떠오르니까 그 욕망은 어둡기도 하거니와 그 배경을 어둡게도 하므로 슬픈 결말을 예고하기까지 한다. 바울 사도는 그 경우 욕망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라디아서 5:17).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니 "가장 어둡고 슬픈" 일인 것은 자명하다. 이런 사람은 자기 눈 속의 들보는 가리고 다른 사람의 눈의 티끌을 밝게 보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결국, 그는 새벽 하늘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별"로 퇴락한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시인은 자기반성의 자리에 서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자기반성은 자기 확장에 맞닿아 있다. 자기반성은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므로 자기 확장의 일환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사랑은 자기 확장과 자기반성의 접점에서 빛나는 별이다. 그런데 그 별은 새벽별이므로 의지의 발현을 전제한다. 의지는 선택지 앞에서 입증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것인가, 나를 사랑할 것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나 자신도 맑고 밝게 빛날 것인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둡고 슬픈 통로를 거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후자도 그 통로를 거쳐 자기반성과 자기 확장의 접점에 도달하겠지만, 욕망에 대해 단호하지 못했던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랑은 의지가 촉매가 될 때 자기반성조차 "가장 맑고 밝은 별"로서 빛나게 한다.

우리는 사랑할 때를 포함하여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경험이 많다. 그 경우 성경은 단호한 결정을 요구한다. 그것이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1-5). 말세의 고통이란 선택을 강요받는 시점의 고통을 일컫는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사는데,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눈앞에 있는 쾌락보다 보이지 않는 그분을 더 사랑하기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 고통을 강요받기 전에 경건의 능력을 신뢰하며 자기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결단을 실행해야 한다. 그렇게 돌아서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는 길이다. 사랑은 의지를 요구한다. 그 의지가 그를 "가장 맑고 밝은 별"이 되게 한다.

※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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