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광야길에서 만나는 로뎀나무, 까미노

이대희 목사·강릉선교감리교회 담임

까미노 데 산티아고(8)

▲까딸루냐주 바르셀로나, 까딸루냐 광장에 있는 까딸루냐 전철역
▲바르셀로나 노르드[북] 터미널, 스페인 전역의 도시들과 유럽 각 국을 연결해 주는 유로라인 버스들이 들어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툴루즈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바르셀로나 노르드[북] 터미널, 스페인 전역의 도시들과 유럽 각 국을 연결해 주는 유로라인 버스들이 들어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툴루즈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바르셀로나에서 ‘까미노, 프랑스길’의 생장피드포르 마을로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많은 이들이 프랑스 파리까지 비행편을 이용하고, 파리에서 생장피드포르까지 기차편을 이용한다. 우리는 바르셀로나로 들어갔기 때문에 여정이 다르다. 바르셀로나에서 생장피드포르까지 가는 방법을 소개한다. 
 
하나, 바르셀로나[중앙역Barcelona Sants]에서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마을인 이룬Irun(Spain)까지 스페인 국영철도renfe를 이용하여 간 후에, 바욘Bayon(France)을 거쳐 생장피드포르까지 가는 방법이 하나이다. 둘, 바르셀로나 북터미널[Barcelona Nord]에서 스페인 버스회사Alsa의 유로라인을 타고 툴루즈Toulouse(France)까지 간 후에, 프랑스 국영철도sncf를 타고 생장피드포르까지 가는 방법이 있다. 셋, 버스를 타고 팜플로나를 간 후에,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여 론세스바예스, 생장피드포르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두 번째 방법을 택하였고, 유로라인 버스를 타고 프랑스 서남부의 중심도시인 툴루즈로 향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을 지나는 길이지만, 어디가 스페인이고 어디가 프랑스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EU 국가들이기 때문에 국경검문도 필요 없다. 버스 차창 바깥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까미노 길에서도 계속 보았던] 풍경을 통해 ‘해바라기는 농작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버스는 이베리아 반도의 동쪽 연안 지중해를 오른편에 두고 히로나, 페르피냥, 나르본느를 거쳐 7시간이 지난 후, 프랑스 남부 내륙의 도시 툴루즈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산츠역, 이곳에서 스페인 곳곳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스페인 동북부도시 이룬Irun까지 가면 생장피드포르에 갈 수 있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바욘으로 가는 열차 안, 승객들의 승차권을 검사하는 승무원.

바르셀로나를 떠나며 프랑스 툴루즈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그네는 상념에 빠진다.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버스 바깥엔 넘실대는 지중해 위로 햇살이 출렁이고 바다에서 불어 온 바람결을 못 이겨 한쪽 방향으로 누운 키 작은 포도나무들과 올리브나무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바람이 불 때면 나도 힘들었다.
 
요즘 힐링healing이 대세인 모양이다.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healing 데 쓰입니다.”(계22:1-2)  ‘힐링’의 헬라어는 ‘테라페이아’인데, 테라피therapy의 어원이다. 이것은 생기를 돌게 하는 것, 용기를 주는 것, 새로운 삶을 주는 것, 일으켜 세워 주는 것,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 종살이에서 놓임을 받아 자유롭게 주님의 자녀로 사는 것(스9:9) 등, ‘소성塑性’케 되는 것-‘여호와 라파’이다.
 
선지자 엘리야는 자신에게 닥쳐 온 삶의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광야로 들어섰다. 살려고 간 길이 아니라 죽으려고 간 길이었다. 사실 나는 엘리야의 이 고백,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옵소서”(왕상 19:4) 한 것이 ‘나를 제발 살려 주세요’ 한 것으로 들린다. 여인 이세벨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광야에서 죽으나 이세벨의 권력에 의해 죽으나 한가지일텐데,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다. 정말 죽고 싶었다면, 이세벨에게 붙들려 죽었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광야 로뎀나무 아래 처절한 엘리야의 부르짖음이 ‘하나님, 제발 살려 주세요’ 로 바뀌어 들린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순례 네 번째 날 아침 팜플로나를 떠나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여정에서 사리키에기 마을에 도착하기 전 펼쳐진 해바라기 밭 사잇길을 걷는다. 저 멀리 사리키에기 마을이 보인다
▲순례 네 번째 날 아침 팜플로나를 떠나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여정에서 사리키에기 마을에 도착하기 전 펼쳐진 해바라기 밭 사잇길을 걷는다. 저 멀리 사리키에기 마을이 보인다.
▲순례 열한번째날 벨로라도를 떠나 산 후안 데 오르테가까지 가는 길에서 에스피노사 델 까미노 마을에 도착하기 전 펼쳐진 해바라기 밭

동시에 그것은 오늘 나의 얄팍한 자존심과 하나가 된다. 항상 신적 본질을 추구하고 공의를 바라보며 ‘그 나라와 의’를 구하고자 살지만, 현실 속에서 여지없이 추락하는 나의 믿음[없음]과 연약함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부끄러움을 숨기고자, 나 또한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옵소서’ 하면서 우리의 치부를 포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까미노로 들어섰다. 그 까미노가 ‘로뎀나무’였고, 치유와 안식, 회복과 ‘소성’의 은총이 되었다. 그 까미노가 점점 가까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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