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산티아고 순례기] Day 8. 위대한 모험에 나를 던지다

글·이재훈 목사(쓰임교회 담임)

로그로뇨(Logrono) - 나헤라(Najera): 6시간30분 (30Km)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제 이틀 후면 이 20세기에, 트로이에서 귀향하는 오디세우스와 라만차의 돈키호테, 지옥의 단테와 오르페우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겪은 것과 같은 위대한 모험에 뛰어든다는 생각이 온통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미지의 무언가를 향해 길을 떠나는 모험에"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문학동네, p.25)

<연금술사>의 저자로 잘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는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순례자>를 쓴 후 본업이 있음에도 작가라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는 <순례자> 뿐만 아니라 그 후에 쓴 여러 책들을 통해서 사람이 생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자신을 개방해 놓아야 함을, 안일한 일상을 벗어나 모험에 자신을 던질 줄 알아야 함에 관해 이야기했다. 관련된 글귀 몇 개를 더 언급해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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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형님, 저 앞에 언덕 보여요?" " 현수야, 보인다. 와, 높다 높아" "저거 넘으셔야 합니다, 전 정상이에요. 먼저 내려갑니다. 이따 봐요" 언덕 정상에서 글쓴이에게 보내준 사진이다.

먼저 방금 언급한 <순례자>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 말해주기 전부터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삶은 매 순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니까요. 따라서 비밀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도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강인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이번처럼 특별한 모험에 참여하게 될 경우에만 그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문학동네, p.281)

다음은 <오자히르>인데 이 책은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그는 아내를 찾아가는 길고 긴 여정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의 흔적을 따라오는 동안, 나는 나와 결혼한 여자를 진심으로 이해했고, 내 삶의 의미에 다시 눈뜨게 되었다. 내 삶의 의미는 크게 변했으며, 지금 다시 한 번 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해왔음에도 나는 내 아내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파울로 코엘료, 『오자히르』, 문학동네,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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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그간 순례 중 안 좋은 날씨는 없었는데, 이 날은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 속을 묵묵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이 걷히더니 한 줄기 빛이 내렸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불륜>인데, 이 책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족할 것 없고 그래서 매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한 여성의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그녀의 마음은 이런 말을 전한다. "매일 저녁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머릿속에서 끝없는 대화가 시작돼. 뭔가 변할까봐 겁이 나면서도 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생겨. 똑같은 생각이 계속 되풀이 되는데 어떻게 통제가 안 돼." (파울로 코엘료, 『불륜』, 문학동네, p.99)

지난 나의 삶이 그러했다. 일상이 무료했다. 다른 삶을 위한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움츠림과 위축의 반복이었다. 불안하고 답답한 이 마음을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마음을 내 안에 고이고이 숨겨둔 채 새어나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간절했다. 누가 됐든 이런 내 마음을 헤아려줬으면, 너의 어려움을 잘 안다고 말해줬으면 했다. 이렇게 양립할 수 없는 두 마음이 나를 더욱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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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나는 군대에서 훈련 받을 때를 제외하곤 평소 맥주나 탄산음료를 마시질 않았다. 그런데 순례자의 길을 걷다가 그만 청량감에 눈을 뜨고 만 것이다. 더위와 갈증을 잊게 만든 맥주와 콜라라는 녀석. 매력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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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다음 마을을 향해 가던 중, 먼발치 앞서 걷는 다섯 명의 순례자들을 보았다. 다섯이서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고 자연스레 그들의 뒷모습을 훔치게 됐다. 우리의 뒷모습도 다른 순례자들을 미소 짓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지났을까? 한 줄기 빛이 있었다. 어떤 음성라고 해야 하나? 희미한 한 줄기의 빛과 또렷하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기도와 성서, 고전문학을 통해 조금씩 선명해져갔다. '이게 뭐지? 이 마음은 뭘까?' 분별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조금씩 선명해지는 빛과 음성은 나를 향해 떠나라고 등 떠밀었다. 두려워말고 용기를 내라고 했다.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시간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돕겠다고 부추겼다.

그렇게 시작된 순례였다. 이제 남은 몫은 그 빛과 음성이 나에게 무엇을 전해주고자 하는지 알아내는 것뿐이다. 이 시간들을 살아냄으로 알아내야 했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순례'라는 모험의 현장에 있다. 가야 할 길은 여전히 까마득하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피로의 누적과 통증, 숙소와 끼니 해결 등 매일 넘어야 할 산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면의 한 음성과 마주한 이상 계속 나아가는 길밖엔 없다. 여전히 출발점에 서있는 이 가난한 영혼 가운데 하늘의 은총이 가득하길 바래본다.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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