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5)

사도들의 이방선교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2. 사도들의 이방선교

바울의 선교

바울(사울)은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온 세상에 전파한 선교의 선구자였다. 그는 사회적 신분으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헬라계의 유력한 유대인이었으며, 학벌로서는 당시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 그런 그가 예수를 주로 모신 후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새 피조물의 시대가 왔다는 신념을 가지고 제국의 유명 도시들을 두루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교의 이방선교의 문을 열고 길을 닦기 시작했다.

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 설교한 말과 그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고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정말 예수일까 회의하면서 5, 6일 걸리는 다메섹 도보여행을 하다가 예수를 만나 그의 사도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사울은 이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사도로 임명하셨다고 믿게 되었다.

사울을 사도의 길로 인도했던 사람은 다메섹의 예언자 아나니아와 예루살렘 교회의 경건한 신자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사울을 경계하고 멀리하였던 사람들을 설득해서 사울을 용납하게 하였고, 사울을 시리아 지방의 최초의 이방교회였던 안디옥 교회로 인도하였으며, 46년 그의 첫 전도여행의 동행자가 되어 사울의 선교를 성공적인 것이 되게 한 사람이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도 예루살렘 교회를 처음 방문한 사울을 친절하게 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설명해주었고, 또 사울의 이방선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도록 예루살렘 회의에서 반론을 억제하여주었다.

사울과 바나바가 바나바의 조카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배를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갔다. 그들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비를 받은 것 같지 않으니 곧 자비량 선교였다. 키프로스 섬에서 사울은 총독 서기오 바울을 회개시켜서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된 최초의 케이스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이때 사울은 자기 이름을 로마식으로 고쳐서 바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울은 전도여행지의 교인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장막을 만들어 수입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가 장막을 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유대인 남자들은 바울처럼 유식한 사람이라도 어떤 한 가지 수공업 기술을 익히는 것이 통례였다. 장막을 만드는 장비나 도구도 가지고 다녀야 했는데 젊은 마가가 힘쓸 일이 많았을 것이다. 49년 제1차 전도여행이 끝났을 때 마가는 더 이상 동행하지 않고 예루살렘의 집으로 돌아가버렸는데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장막을 만드는 무거운 도구를 가지고 먼 길을 다니는 것이 힘겨워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키프로스 섬에서의 전도를 통하여 신앙의 선배 되는 바나바보다 바울이 더 큰 능력을 나타내었으나 바나바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쓴 것 같지 않고 끝까지 바울과 동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시리아 안디옥에 와서 그동안의 전도 지역의 교회를 순방해보고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려 하였을 때 바나바가 조카 마가를 다시 대동하자고 하였으나 바울이 거부하자,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헤어졌다.

바울은 가는 선교지마다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서 유대인 동족을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힘썼다. 그는 예수가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라는 것과, 모세의 율법과 전통을 지키지 않고 예수만 믿어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타일러주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과 변론을 벌이고 토론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울이 선교지에서 받은 박해는 주로 유대인들의 미움과 질투 때문이었다.

바울의 선교지는 아시아나 그리스를 막론한 이교도 세계였고, 오래된 민족종교들이 건재한 곳들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종교와 신들을 정면 부인하거나 공격하지 않았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과의 마찰로 복음 전하는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종교자유정책 아래서 바울의 선교는 정책적으로 금지되지 않았고, 지방 행정관헌들이 바울이 부당하게 군중에게 잡혀 곤욕을 치르는 것을 막고 소요를 진정시켜 질서를 세우려 한 일이 에베소에서처럼 다른 곳에서도 있었다.

바울은 예수의 재림이 머지않았다는 긴박감을 가지고 신자들의 신앙과 생활의 해이를 경고하였으나 그것은 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경고였지, 말세가 되었으므로 로마제국은 망할 것이라는 등의 세상 나라들의 멸망을 말한 적은 없었고 오히려 국가의 권력과 법을 준수하라고 가르쳤다. 예수의 임박한 재림을 알리면서 박해하는 세상 나라의 멸망이 가까웠다고 외치고 다닌 열광주의자들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미움을 사는 일이 이따금 있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정죄를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자유를 가르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양심의 자유도 인정하라고 가르쳤다. 할례 문제에 있어서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할례 받고 싶은 사람은 받게 하였다. 그가 전도해서 믿게 만든 디모데는 할례를 받았다. 유대교 절기를 지키는 일이나 제사음식을 먹는 일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양심의 판단대로 하면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이렇게 서로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 그리스도 교회의 평화와 일치를 보존하는 길이라 여겨, 교회는 마치 한 몸처럼 되고 신자는 그 몸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를 그 몸의 머리로 삼으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교회 안의 지도자들이나 신앙 사상의 차이로 파벌이 생길지라도 머리 되는 그리스도에게 종속하여 분열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바울은 49년의 예루살렘 회의가 끝나자마자 안디옥으로 와서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 시리아 지방의 여러 곳 곧 전에 전도한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면서 예루살렘 회의의 결과를 알려주어서 신자들이 기뻐하였다. 바울은 에베소 지방에 가서 전도할 생각이었는데 밤에 환상을 보고 그리스로 가기로 결심하였고 이때부터 의사 누가가 동행하였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와서 기신자 루디아를 만나 도움을 받고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과 실라가 투옥되는 사건을 맞았다. 이때 갑자기 손의 수갑이 저절로 풀리고 옥문이 기적적으로 열려 나왔고 로마 시민권의 효력을 본 일도 여기서 처음이었다. 루디아의 가정교회가 성장하여 크게 된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고 바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교회가 되었다.

바울이 그리스의 철학의 도시 아덴의 아레오바고 광장에 모여있던 철학자들 앞에서 설교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한 신이 있으며 그 신은 창조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인 것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유식하게 전하였으나, 그들은 예수를 또 하나의 신으로 여길 뿐이었다. 신을 믿는 것을 미신 행위로 치부하는 그들에게 바울의 설교는 먹혀들지 않아 실패였고 그들은 바울을 말장수로 보았다.

유대인들이 합세해서 바울의 선교를 가장 크게 박해하여 고난 받게 한 곳은 고린도였다. 로마의 법을 어기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다는 이유로 바울을 이끌고 총독 갈리오에게 가서 재판하라고 강요했다.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종교 문제라는 이유로 바울을 재판에 부치기를 거부하였으므로 바울은 그의 호의로 풀려나와서 시리아 안디옥으로 갔다. 그는 거기서 에베소에 들렀다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급히 돌아왔는데 어떤 서원한 것이 있어서 삭발하였다.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에 참배하고 자기의 서원을 하나님께 아뢰고는 곧장 안디옥으로 와서 마지막 선교길에 올랐다.

바울의 마지막 설교는 52년에서 57년 사이였다. 그는 안디옥에 들른 후 그길로 에베소로 가 석 달 동안 유대인 회당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에베소의 신 아데미를 믿는 신자들의 반발을 사서 군중들이 소요를 일으키는 사건을 맞았으나, 관원들이 소요를 진정시켰기 때문에 붙잡혔던 그리스도인들은 풀려나왔고 바울 일행은 에베소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리스도교의 전파로 재래종교의 신전들의 참배자가 줄어들거나 제물의 판매가 부진하게 되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반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떠나면서 그 지방의 여러 교회들을 순방하여 신도들을 격려하고 그리스 지역으로 가 머물면서 일루리곤, 곧 오늘의 유고슬라비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자기가 전도하여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서신도 보내어 많은 교훈을 주었다. 그는 3차에 걸친 전도여행에서 교회도 많이 세웠지만 여러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고 자기를 시켜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라고 고백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교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의 선교지에서 바울을 미워하던 유대인들이 미리 예루살렘에 가서 그를 해치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당도하자마자 그를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하였다. 바울은 군중 앞에서 자기가 예수를 믿게 된 회심의 이야기와 이방선교의 사도가 되어 떠나도록 예수의 분부를 받은 일과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였다는 것을 말하였다. 군중들이 바울을 체포하여 죽여 없애려고 하자 로마군대의 천부장이 그를 끌고 가서 무슨 죄가 있는지 신문하려 했다. 바울은 자기가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밝히고 결국은 보호를 받고 2년 동안 가이사랴에서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아그립바 왕과도 대면하고 자기의 사건을 로마 황제의 법정에 상소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59년에 예루살렘을 떠나 지중해 배편으로 60년 초에 로마에 와서 황제의 법정에 정식 기소되기까지 사가에 연금되었는데 유대 총독의 상소장에 바울의 죄상이 가벼웠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은 2년 동안 이 집에 머물면서 로마에 있는 신도들을 만났고 유대인들과도 만나서 전도하였는데 누가의 사도행전에 언제 바울이 재판을 받았는지 기록이 없고 더구나 그의 순교 이야기도 기록된 것이 없어 정확한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네로 황제가 로마시를 불태우고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64년에서 네로가 죽은 68년 사이에 바울이 순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이 쓴 많은 목회서신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석한 것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테마들과 해석이 되었다.

베드로와 요한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에서 늘 함께 전도하고 다녔으나 박해 때는 서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49년 예루살렘 회의가 있은 후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에 온 어떤 신도가 나타나자 갑자기 자리를 피하여 나간 일로 바울과 말다툼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 바울과 헤어지고 다시 만날 수 없었는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에 베드로가 예수의 형제들과 같이 아시아 어느 지방에서 선교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서신을 본도와 갈라디아와 그 근처 지방에 있는 신자들에게 보냈으므로 그가 한때 이 지방에서 선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서신을 쓰던 때는 그가 그 지방을 떠나 로마에 와 있던 때임을 암시하는 말이 이 서신 말미의 인사말에 나온다. 그는 자기가 로마에 있다는 말을 바벨론에 있다는 말로 암시하였다. 이 시기에 박해 아래 있던 교회 지도자들은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편지나 교회 문서에 기록하여 자신들의 로마 소재를 감추려 하였다. 요한의 계시록에 나오는 바벨론도 로마를 두고 말한 것이다.

베드로가 아시아 선교를 거쳐서 로마에 온 것을 전설로 간주할 수 없으며 그것은 사실이다. 로마에서 바울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바울이 로마에 와 있다는 사실은 베드로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두 사도가 네로의 박해 시기에 순교한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사도 요한이 유대 나라를 떠난 때는 62년 야고보가 순교한 후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모시고 에베소로 왔다고 에베소 교회는 알고 있었다. 요한은 90세가 넘도록 에베소 지방에서 선교하며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양성하여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특히 에베소교회에서 오래 사역하면서 교회를 성장시켰고 장로들도 잘 키웠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은 요한의 사랑을 크게 받은 사람이었다.

요한이 티투스 황제(재위 79~81)와 그의 동생 도미티안 황제(재위 81~96) 때 박해를 받아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계시를 보고 뿔 열과 머리 일곱 달린 짐승이 마흔 두 달 곧 3년 반 동안 교회를 박해하였다는 것을 기록하였는데 정확하게 티투스 황제의 통치 기간과 일치하였다. 그러나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선교의 자유시대가 올 것을 묵시로 보고 예언한 것은 그러한 시대가 올 것을 기다리면서 박해를 참고 이겨내야 할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요한은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로서 노령에 예수의 생에를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불러주어서 기록하게 하여 요한복음서를 95년경에 저작하였는데, 다른 복음서들보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더 자세히 그리고 더 길게 기록하여 그의 죽음으로 죄의 용서와 영생을 얻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그리고 요한 1, 2, 3서도 그가 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예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답게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하였다.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에베소에 모시고 와서 어머니로 섬긴 것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으나 에베소 교회가 그것을 사실로 믿고 있다. 에베에소에서 3~4km 떨어진 산 속 한적한 곳에 요한이 성모를 위해 지었다는 자그마한 옛 집은 지금 성모를 섬기는 성당이 되어 신부와 수녀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으며 에베소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고 허물어진 요한 성당의 폐허가 있다. 사도 요한의 생애가 끝남으로써 사도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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