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4·19 학생혁명 50주년의 역사신학적 의미(Ⅳ)

<4.19와 기독교>(2) 감신대 이덕주 교수 발제문 기고

연재 중인 <4.19와 기독교> 2탄은 4.19 학생운동을 역사 신학적으로 조명한 감신대 이덕주 교수(감신대 교수/ 한국교회사) 발제문을 기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본 발제문은 얼마 전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4.19를 전후로 기독교의 반성과 회개를 촉구해 참석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덕주 교수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차례로 싣는다. - 편집자주  

미완의 혁명 4·19

 4·19가 한국교회에 던진 메시지는 ‘회개와 반성’이었다. 한국교회는 그것 외에 다른 것으로 4·19를 대할 수 없다. 무엇을 반성하고 회개할 것인가? 무엇보다 해방 직후 교권 분쟁에 몰두하여 자기 정화 능력을 상실함으로 부패한 정권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락한 정권과 결탁하여 그 선전 도구가 되었던 과오를 회개해야 했다. 단지 같은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그 능력과 자질을 묻지 않고 정치인들을 맹목적으로 지지, 후원함으로 집단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집단으로 전락하여 일반사회로부터 권위와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했다. 다윗 임금 앞에서 그의 잘못을 지적했던 나단과 같은 예언자적 용기를 상실하여 “나만 옳다.”는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의 배타적 독선(獨善)에서 비롯된 독단(獨斷)과 독주(獨走), 그리고 독재(獨裁)를 견제하지 못했던 실수를 반성해야 했다. 그런 반성과 회개 후에야 새롭게 전개될 역사에 창조적 참여가 가능했다.

 당시 감리교단 총리원 전도국 총무로 있으면서도 자유당 정권에 맹목적 지지를 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눈치를 받았던 마경일 목사. 그는 4·19직후 사태책임을 느껴 제일 먼저 사표를 제출함으로 교단 쇄신운동의 불씨를 지폈는데 그가 교단지 <감리교생활>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당시 한국교회가 했어야 할 회개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기독교인이라는 조건을 이용하여 그것을 배경삼아 높은 지위를 꿈꾸고 부당한 이권을 노렸던 것이다. 대통령의 이름을 걸머지고 긁어모은 모리, 그 그늘 밑에 숨어서 집어삼킨 이권, 그 끄나풀 붙들고 기어 올라가려던 엽관운동, 그 등살을 믿고 세도를 부리고 행세해 보려던 어중이떠중이들, 이런 것들이 모든 사회부정의 바탕을 만들어 놓았다. 아! 그 욕심, 그 허영, 그 출세욕 등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눈을 멀게 하였다. 수많은 기독교인의 양심을 마비시켰다. 실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그러니까 입이 있어도 짖을 줄 모르는 벙어리가 되고 눈이 있어도 볼 줄 모르는 소경이 되었다. 이렇듯이 자체가 병들고 부패하고 말았으니 어떻게 사회부정을 시정하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맛 잃은 소금이었다. 불 꺼진 등불이었다. 수뢰, 독직, 부정을 감행하다가 4·19사태 이후 그 전모가 세상에 폭로됨으로 사직의 손에 걸려 심판을 받아야 할 원흉들 중에 우리는 여러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섞여 있음을 볼 때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금할 수 없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 기회에 깊은 통회와 자성을 가져야 한다. 민족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걸음을 솔직하게 자인하고 이를 속죄하기 위하여 이제부터의 우리의 삶을 민족봉사의 길로 옮겨 놓아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요 나아갈 길이다.”

 화개와 반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는 기독교 신앙 가치이자 역사 속의 책임이다. 특히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확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들의 반성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다. 8·15 직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4·19 직후에도 한국 사회와 교회는 회개와 반성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위기 상황을 피해가려고만 했다. 4·19 직후 1년 간 진행된 정치적, 사회적 혼란 상황을 빌미로 터진 군사혁명은 역사청산과 정리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군사혁명정부는 4·19 학살의 표면적 책임자들과 그들의 지시를 받고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했던‘정치 깡패’들을 체포하여 처형하는 것으로 정치 쇄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자유당 독재와 타락, 부패의 근본적 원인을 밝히고 척결하는 청산작업은 완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유당 시절 권세를 누렸던 세력들은 여전히 1960년대 공화당 정권, 1970년대 유신정권, 1980년대 군부 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권력 핵심부에서 권세를 누렸다. 그 결과 4·19는 ‘미완의 혁명’으로 남게 되었다.

 상황은 기독교계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정권과 그 타락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었던 기독교계 안에서도 4·19 직후에는 청년학생과 소장파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정권에 대해 ‘예언자적 감시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자유당 정권에 유착하여 ‘자유당 주구’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적극 활동했던 목회자와 평신도들에 대한 숙정 요구가 제기되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시, “누가 누구를 정죄할 것인가?”하는 집단적 공범의식에 근거한 책임무용론이 확산되었다. 더욱이 실질적으로 책임자를 문책하고 교단 지휘부를 교체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이 없는 청년학생이나 소장파 목회자들의 제기한 정풍운동의 한계는 분명했다. 여기에 1년 후 군사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정치 환경이 조성되면서 4·19와 관련한 기독교계의 회개와 반성운동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그렇다보니 자유당 정권과 유착 하여 정계와 교계를 넘나들며‘비신앙적’활약을 보였던 기독교계 인사들이 196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공화당과 유신정부, 군부독재 정권과 유착관계를 맺고 각종 이권과 교계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교계 지도자’로 활약할 수 있었다. 오늘 ‘안티 기독교운동’의 촉발 원인의 하나가 된 한국교회 현대사의 어두운 측면은 그렇게 해서 조성되었다.

 그 때, 회개를 했으면 철저하게 했어야 했다. 반성을 해도 완전하게 했어야 했다. 하다가 만 치료가 병을 더 악화시키듯, 그 때 하다가 만 회개와 반성은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병, 권력지향적인 정교유착(政敎癒着)과 사회적 양심에 둔감한 도덕적 불감증을 더욱 심화시켰다. 그렇다보니 교회의 대(對) 사회적, 정치적 ‘예언자’기능이 약화된 것은 물론이고 교회 자체도 그 존재와 사역의 기본근거가 되어야 할 신앙의 자리를 떠나 물질적인 관심과 세속적인 방법으로 교회 일을 해결하고 추진하였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급속한 물량적 성장을 이룩하여 거대한 몸집을 갖추기는 했으나 그 영적 권위와 사회적 지도력에서는 50년 전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한국교회는 시간적으로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자유당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4·19를 ‘미완의 혁명’으로 부르는 이유다. 끝나지 않은 혁명, 그것이 데모 현장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기독학생 이근형이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을 부릅뜨고 죽은 이유일 것이다.

 맺음 글

 혁명의 완성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책임이다.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 혁명은 ‘뒤집어엎는 운동 ’이자 ‘제 자리를 찾아가는 운동’이다. 비정상적인 것을 뒤집어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제자리를 떠나 있던 것을 끌어다 제자리로 돌려놓는  운동이다. 교실에 있어야 할 학생과 공장에 있어 할 노동자, 부대에 있어야 할 군인, 성전에서 있어야 할 목회자가 거리로 나온 것은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 잡아 놓기 위함이다. 뒤집어 바로 잡은 다음 그들은 떠나왔던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뒤집은 다음 되돌아가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혁명의 대상이 된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이 이런 ‘역혁명’(逆革命, counter-revolution)이 아닐까? 강단을 떠나 거리를 방황하는 목회자들, 기도실을 떠나 의사당을 기웃거리는 교계 지도자들, 선거철만 되면 교인표를 얻기 위해 종교집회만 찾아다니는 철새 정치인들....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뒤집혀 교정되어야만 4·19 희생자들이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입을 벌려 외쳤던 민주와 정의, 그리고 평화가 이 땅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교회 안에, 기독교계 안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야 하겠다. 지금부터 80년 전, 지금보다 훨씬 적은 숫자로도 일제식민통치 하 민족사회에 영적 권위와 지도력을 발휘했던 한국교회를 향하여 그것도 부족하다며 근본적인‘혁명’을 외쳤던 시대의 양심 최태용 선생의 절규처럼 말이다.


“신학은 많고 신앙은 적고
 기도회는 많고 기도는 적고
 단체로서의 수는 많고 신앙의 개인은 적고
 사람의 지혜로의 운동은 많고 하나님 자신의 권능의 일은 적다.
 이 많은 일이 적게 되고
 이 적은 일이 많게 되어야
 세상은 바른 세상이니
 그러면
 세상이 그렇게 되기 위하여서는
 지금 세상은 한번 뒤집혀야 한다.
 아! 세상은 역시 한 혁명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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