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가려움과 불편함을 벗 삼는 길

이대희 목사·강릉선교감리교회 담임

까미노 데 산티아고(9)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근처 우리가 묵은 숙소
▲뜨거운 여름 태양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 피난처refuge이다. 

문제가 생겼다. 날씨가 덥고 습하니까 땀띠가 일어나 ‘육신의 가려움’이 시작된 것이다. 목덜미 아래쪽으로 가슴부위가 좁쌀 같은 붉은 반점들이 일어났다. 많이 많이 가렵다. 팔뚝에도 빨간 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매년 여름이면 반복되는 개인적 병변이지만, 약간 서늘한 곳에 있으면 곧 안정이 되고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곳 스페인[까미노 여정]에서는 더운 곳을 피할 길이 없다. 아직 8월말이고 햇살의 뜨거움은 영원하게 내리 쬘 기세이다. 이 가려움은 까미노 길에서 만나게 될 빈대 습격의 전조에 불과했다. 
 
길 떠나기 전, 교우들에게 ‘빈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기를 기도해 달라고 하였는데, 그 기도가 아들 세빈이에게만 능력을 나타낸 모양이다. 육신의 이곳저곳이 가려우니 마음도 가렵기 시작했다. 가려운 곳은 한 번 긁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피부가 벌겋게 일어나고 심지어 살갗이 벗겨져 ‘피를 보기’까지 한다. 아, 이 가려움의 공포는 수면에도 영향을 준다. 욥의 마지막 재앙이 가려움이었다. “사탄은 주 앞에서 물러나 곧 욥을 쳐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하게 하였다. 그래서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었다.”(욥2:7-8) 재물과 자녀를 빼앗아 간 사탄이 욥을 마지막 시험한 과제는 육신의 질병이었는데, 그것이 피부적 질환이다. 얼마나 가려웠는지 욥은,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었다’고 전한다. 다른 질병도 많이 있었을 텐데, 굳이 피부의 가려움으로 욥을 시험했을까? 그 가려움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리라. 욥의 생명만은 건들지 말아야 하는 사탄의 입장에서 죽기 직전의 고통으로 습격한 것이 바로 피부의 가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죽음’ 만큼 두려운 것이 가려움의 고통이 아닐까?
 
▲바르셀로나 까딸루냐 광장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과 시원한 분수 
▲새벽이면 온 도시를 물청소하는 깨끗한 바르셀로나, 거리가 깨끗하다.
▲바르셀로나에서 툴루즈까지 여정

또 하나 문제가 생겼다. ‘내적인 가려움’이 일어났다.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날 아침, 묵었던 숙소를 나와 버스터미널로 나설 참이다. 아들 세빈이가 메어야 할 바이올린 상자의 어깨끈 조절이 잘 안되었다. 세빈이가 무심코 툭 내뱉은 말, “불편해요.” 우리의 이 일정 자체가 편안함이나 편리함, 안락함을 즐기기 위해 온 여행이 아닌 것을 여러 차례 서로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럼에도 ‘불편’하다는 말이 나온 것에, 나는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세빈이 입장에서 보면 배낭과 바이올린 상자를 함께 메어야 하니 짊어진 짐이 몸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데,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너의 배낭과 바이올린 이리 줘.”(화난 억양과 위압적 말투) 그리곤 내 짐을 아들에게 주고는 그의 배낭과 바이올린을 내가 짊어지고 터미널로 걷기 시작했다. 아들, 아내, 나, 모두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외적인 불편함이 그만 내적인 평화마저 깨트리고 말았다. 모두 불편해졌다. 마음이 가려워졌다.
 
우리의 툴루즈행 버스는 9시30분 출발이다. 숙소에서 8시30분쯤 나와 걷기 시작했다. 이미 버스표 예약을 한 상황이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발급받기 위한 창구부터 숨바꼭질이다. 여러 버스 회사들의 승차권 판매 창구가 각각 달랐는데, 우리가 예매한 A사 버스창구 아닌 엉뚱한 곳에서 표를 달라하니 직원이 황당한 표정이다. 고갯짓으로 다른 창구로 가라한다. ‘아하, 버스 회사가 달랐구나.’ 아직 시간이 여유롭다. A회사 버스 창구에서 예매자료와 버스표를 교환하였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우리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을 들고 터미널 플랫폼에 가서 버스를 찾았지만, 도무지 어떤 버스인지 알 길이 없다. 안내센터로 가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물었더니, 다시 ‘매표소 쪽으로 가라’는 손짓이다. 
 
▲프랑스 툴루즈행 ALSA버스 예약 서류 
▲바르셀로나에서 툴루즈까지 데려다 준 유로라인 버스 

9시20분. 버스는 찾을 수 없고, 알아들을 수는 없고, 날씨는 덥고, 몸은 가렵고, 마음은 불편하고, 시간은 다 되어간다. 쿵, 버스표를 구했는데 버스를 찾을 수 없다. ‘외적인 가려움’이 일어난 것이다. 최초의 매표소 직원한테 헐레벌떡, 들고 있는 버스표를 내밀었더니 창구에서 걸어 나와 우리를 데리고 터미널 끝 쪽, 별도의 창구로 안내한다. 그리곤 창구 안으로 [사실은 버스표가 아니었던]버스표를 밀어 넣어 그 쪽 담당자에게 주었다. 그러자 숫자 ‘10(10번 플랫폼 차량을 탑승하라는 뜻)’이 쓰여 있는 큼지막한 사각형 딱지[진짜 버스표]를 세 장 준다.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국경을 넘기 때문에 별도의 창구에서 ‘체크 인’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플랫폼으로 냅다 뛰었다. 버스가 막 출발하려 한다. 10번 플랫폼에서, ‘10’번 딱지[버스표]를 내고 간신히 버스에 탑승하니 안도의 숨이 절로 나온다. 불편함과 어려움이 가득한 아침이었다. 그것은 나의 연약함과 성급함과 무지함의 결과였다. 사탄은 우리의 까미노 [길]에서, 육신의 가려움, 내적인 가려움, 외적인 가려움으로 도전한다. 그 모든 ‘가려움’은 시원한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 끝이 났다. “나는 주님의 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재난을 당할 때에, 주님은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refuge가 되어 주시기에, 아침마다 주의 한결같은 사랑을 노래하렵니다.”(시59:16)(사진제공= 이대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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