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는 매우 독특한 시기이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중세의 일부를 말하는 것뿐이다. 서유럽의 중세는 다시 오기 어려운 세계이다. 단일한 종교가 천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회 전반을 구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온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던 시대이다. 이른바 크리스텐돔(Christendom)이다.

오늘날의 우리, 곧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거치고,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을 거치고, 인간 이성에 대한 장밋빛 낙관이 처절하게 부서지는 경험을 거쳐 절망과 불안을 수납하고,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들이 구상하기 불가능한 세계이다.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크리스텐돔이었던 만큼 스콜라주의의 결과물들은 중세 정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사제 그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는 스콜라 문헌이 논하고 있는 내용들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는 방식을 두 가지 길로 보았다. 하나는 예배와 예전 및 문화(종교예술 등)이다. 신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 없이도 예배와 예전에 참여함으로 성스러운 영역에 참여할 수 있었다. 교회 건축이나 교회 음악, 종교예술 등도 이를 도왔다. 다른 하나는 신비주의이다. 중세는 수도원 문화와 더불어 신비주의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서의 신비주의는 신적인 것과의 합일이다. 성직자가 아닌 일반 대중이 수도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다만 일반 대중들의 삶에의 신비적 요소에는 미신적이고 마술적인 요소가 범벅 되어 있었다.

짧은 글에서 중세 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다 다루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들이 공식적으로 의지했던 성례전과, 비공식적이지만 그들의 일상에 파고들었던 미신적 요소들을 간략히 살피고자 한다.

교회의 성례전 그리고 신앙생활

교회사가 이장식에 따르면 중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악을 심판하시는 무서운 정의의 하나님"이었다. 사람들은 죄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중세 신학의 기틀을 닦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의 개념을 정초하였고 그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된바, 모든 이들은 자범죄뿐만 아니라 원죄도 짊어졌다. 거기에 교회당 창문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한 손에 검을 쥐고 무서운 얼굴로 세상을 향하여 내려오는 그림"과 같은 이미지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판정관과 같이 생각하게 하였다.

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이해와 방법은 교회와 사제들의 가르침에 의존하고 있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일반인들이 읽을 수도 없었기에 그저 교회가 집행하는 것들에 열심히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제가 죄 용서를 선언하면 그것을 그대로 믿었다. "개인의 신앙이 있을 수 없고, 교회의 신앙이 있을 뿐이었다."(이장식)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데, 대중이 이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은 교회를 통하여 성례전을 통하는 길 밖에는 없었다. 교회가 주재하는 성례전의 종류는 많았는데 12세기에 이르러 7가지로 통합되었다. 세례, 견신, 성찬, 고해, 혼배, 종부, 서품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세례, 성찬, 고해, 종부가 죄사함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례에 의해 원죄가 소멸되고, 성찬에 의해서 용서할 수 있는 가벼운 죄가 소멸되고, 고해에 의해서 죽어 마땅한 죄가 소멸되고, 종부성사에 의해서 아직도 남아 있는 죄가 소멸된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엄격한 금욕생활의 실천사항들을 제시했다. 이장식에 따르면 교인들은 금요일마다 금식하고, 부활절 주간 이전 40일 동안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금식했고, 승천일 전 3일간 금식했다. 교회의 절기에는 고기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러한 금욕이 구원을 얻는데 공적을 쌓는 행위라 생각했다. 일반 평신도가 이 같은 금욕생활을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수도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수도원은 틀림없이 구원을 위한 공로를 쌓을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중세의 수도원은 전성기를 맞았고, 수도원의 수가 교회의 수보다 더 많았다.

거리의 미신과 마술, 그리고 신앙생활

교회는 구원과 관련하여, 공식적인 성례전 외의 것들도 제공했다.

당시 순례자들은 로마가 꿈의 순례지였는데 이유는 그곳이 면죄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라테라노 대성당(San Giovanni in Laterano)의 '거룩한 계단'을 무릎을 꿇고 기어 올라가면 죄가 사해진다고 했다. 계단 한칸 한칸이 9년의 속죄를 보증하고, 마지막 계단은 속죄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 이러한 행위는 연옥에 있는 영혼의 죄도 사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성자들의 시체를 넣은 관이나 석상 및 동상을 보유한 교회들은, 그 성자들에게 구원을 받고도 남는 여공이 있다고 하였다. 순례자들은 그 여공을 빌려 구원받고자 기도를 올렸다. 수도원들도 희귀하고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유물들을 전시하였고, 순례자들은 그 유물들 앞에 가서 합장하고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죄를 뉘우치는 행위를 하였다. 이 유물들은 예수의 머리카락, 베드로나 바울의 유골의 일부, 성모 마리아의 젖이 담긴 것 등으로 소개되었다.

교회와 수도원이 이러하니, 거리에도 미신이 넘쳐났다. 로마 거리에서는 가짜 성유물 전시가 성황이었다. 돈을 내면 모세의 불타는 장작, 가시 면류각의 한 조각, 예수의 발자국, 유다의 은화를 볼 수 있었고, "이 성유물을 보면 천 년간 연옥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는다고 과대선전"이 돌았다.(이동희, 2013)

또 사람이 타향에서 죽으면 시체를 고향에 가지고 와서 장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람이 전쟁터에서 죽으면 시체를 가마에 넣고 물을 부어 삶은 후 뼈만 가려서 고향에 가져와 장사하는 일들도 행해졌는데, 이장식은 이것도 미신의 작용일 것이라고 보았다.

틸리히는 미신적인 신앙은 "유한한 대상을 신적인 것 그 자체와 동일시"하여 발생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신앙의 지표가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실지로 신앙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그 '달' 자체가 되는 순간 상징은 우상이 된다.

마술적인 요소도 일상적 신앙에 침투했다. 성만찬을 마술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여 성찬의 떡조각을 입에 넣고 삼키지 않은 채 집에 돌아와 떡조각을 입에서 꺼내 벌통에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떡조각을 벌통에 넣으면 그것의 마술적 힘으로 더 많은 꿀이 생길 것이라 믿은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가 악마에 팔린 한 여자의 영혼을 도로 찾아주었다는 일화도 나돌았다.

이런 미신적이고 마술적 분위기에서, 마성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악령의 추방(Exorzimus)은 교회 일과의 하나였다. 교회 안에 들어설 때 성수를 몸에 뿌리는 것은 "마성적인 세력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세례는 "마성적인 여러 세력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효력을 가진다.(틸리히) 이들에게 마성적인 것은 현존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이 마성적인 현존에 대한 불안에 시달렸다. 이 불안이 극심하여 교회가 이 불안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고 한다. 마녀재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글 이민애, Ph.D, theworld@veritas.kr

*알쓸신학은 잠시 쉬었다가 내년에 다시 이어집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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