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형이 언도되면 사형수는 먼저 모진 태형을 당한 뒤에, 십자가의 횡목을 직접 지고 사형장까지 운반해야 한다. 하지만 태형 때문에 약해질 대로 약해져 미처 횡목을 운반할 만한 힘이 없을 때는 아무나 강제로 뽑아 대신 횡목을 나르게 할 수 있었다. 이는 피정복지 주민을 임의로 부역에 차출할 수 있는 로마군의 권리에 따른 것이다. 사형장에는 수직목이 세워져 있고 횡목을 날라 온 죄수는 손목과 발등에 못이 박혀 십자가에 달리게 된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을 박는 이유는 손바닥이 몸무게를 못 이겨 찢어지는 바람에 사형수가 십자가에서 곤두박질치는 일을 막기 위함인데, 틀림없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개발된 방법이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죄목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따로 팻말을 만들어 십자가 상단부에 걸어놓는데 예수님의 경우는 ‘나자렛 예수 유대인의 왕’(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약자로 INRI)이었다고 한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물론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몰약을 탄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 마시게 하는데, 아마 약간의 마취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십자가 죄수는 손목에 못을 박았으니 손목동맥 파열에 따른 과다출혈로 숨을 거둔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은 질식사였다. 몸이 아래로 처지면 횡경막이 눌려 숨을 못 쉬게 되고, 못으로 고정된 발의 힘을 빌려 몸을 추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몸을 추릴 기운이 빠지면 호흡곤란으로 죽는 것이다. 그래도 죽지 않을 경우는 완전히 숨을 거두게 하기 위해 다리를 꺾어 버렸다. 발에 힘을 못주게 하려는 조치이다.
형리로 선발된 군인들은 사형수의 죽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누구인가 예수에게 다가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보았다. 만일 이 때 조그만 신음 소리라도 들렸다면 여지없이 마지막 일격(다리 꺾기)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라 창에 찔린 곳에서 물과 피만 흘러나올 뿐이었다고 한다(요한 19,32-34). 어느 의사 선생님에게 사람이 죽으면 피에서 물이 분리되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보통 하루 정도 버텼다.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세기에 검투사의 반란을 일으켰던 스팔타커스가 십자가에서 사흘을 버텼다고 한다. 말하자면 십자가에 달려 오래 버티기 부문의 기록 보유자인 셈이다. 검투사의 다부진 체력이 한몫 단단히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는 미처 세 시간을 못 버텼는데 아마 3년의 공생애 동안 영양 공급이 부실했기에 그만큼 몸이 약해진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