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8 종교간 관계 분석을 위한 틀(1)Sep 22, 2015 09:04 AM KST

앞서 서론의 끝자락에서 말씀드렸듯이 이제 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구 그리스도교의 배경에서 시작된 종교신학은 다른 종교들과 공존하고 혼재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마땅한 길을 모색하려는 목적으로 개진된 분야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살피고 되씹고자 합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렸던 ‘자기라는 인간’에 대한 성찰에 바탕을 두고 비판적으로 읽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정지웅의 통일이여](3)북한의 주체사상은 국가종교라고 할 수 있나?Sep 09, 2015 07:18 AM KST

주체사상은 1950-60년대 중국과 소련에 대한 반사대주의적 경향으로부터 형성됐다. 북한은 문화적 사대주의에 관한 문화적 대응으로 ‘주체’라는 정치이념을 고안한 것이다. 이때 주체의 개념은 맑스-레닌주의를 북의 상황에 적절하게 변형시키면서 자주성을 강조한 정치적 이념이다. 19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체개념은 인간중심의 철학화 과정을 거친다. 철학적 해석학이 적용되면서 주체사상은 기존의 맑스-레닌주의 주체개념을 초월하여 인간의식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하는 인본주의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물질과 정신세계의 합치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보다 포괄적인 주체개념으로 발전한다. 주체개념에 정신이 가미되면서 생명체 개념이 함입된 것이다. 즉, 사회역사적 발전의 원동력은 물질만으로 구성된 특정계급의 투쟁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즉, 인민대중의 주체적 의식과정에 기초하여 창조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정치 생명체론이다.

[정지웅의 통일이여](2) 한반도 분단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은?

[정지웅의 통일이여](2) 한반도 분단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은?Aug 26, 2015 03:06 PM KST

분단의 원인을 논할 때 정치학에서는 흔히 외인론과 내인론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외인론은 한반도가 지닌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외세들이 개입하여 분단되었다는 분석이다. 한반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마주치는 요충지로서 강대국들의 세력 대립의 각축장이 되어 왔다. 조선 시대에 이미 한반도에 대한 분할 논의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중국 명(明)나라와 일본 간의 분할 논의가 있었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한반도는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열강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었다. 연합국들은 카이로 회담(1943년: 전쟁이 끝난 후 적당한 시기에 한반도의 독립이 허용될 것이라고 결정)과 포츠담 회담(1945년: 카이로 회담의 결정 재확인) 등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표출하였고, 연합국들이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한다는 명분하에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주하여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국토 분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외인론의 논리이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7 다종교세계를 이루는 ‘종교 간 관계’와 그 얽힘Aug 26, 2015 03:44 AM KST

몇 차례에 걸쳐 서론을 나누었던 글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는 여러 종교들이 함께 있는 상황을 살피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락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그것도 그저 추상적 인간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라는 인간’을 살피자고 했습니다. 삶의 모든 면들이 그러하지만 종교에서 이게 더욱 진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되돌아 새기곤 했습니다. 충분하진 못해도 어느 선에서는 이야기를 옮겨가야 하기에 인간 이야기를 일단 마무리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덮어놓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자기성찰이 모든 종교 이야기에 착실하게 깔려야 할 터이니 필요한 때마다 다시 끌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이게 다종교세계를 보는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정지웅의 통일이여] 한반도 통일은 왜 필요한가?Aug 10, 2015 06:50 AM KST

[편집자 주] 올해로 우리는 분단 70주년을 맞이한다. 그 동안 통일에 관한 담론이 교계 내에서 수차례 개진되었지만 대개가 사실적인 정보를 신앙적으로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본지에서는 통일전문가 정지웅 교수(ACTS대)를 통해 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적 정보의 분석과 신앙적 해석의 합리적 연결을 도모해보고자 한다. 정 교수는 일반 독자들이 궁금해 할 수 있는 통일관련 문제들을 질의응답 방식으로 제시하며 본지에 정기적으로 연재할 계획이다.

[정재현의 신앙성찰] ‘자기’에 대해 한 마디 더!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6 ‘자기’에 대해 한 마디 더!Aug 06, 2015 07:52 AM KST

자기에 대한 이야기에 미련이 좀 남아 있습니다. 아니 사실 이건 미련이기보다 노파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마디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그리 하겠습니다. 앞서 타자를 배제한다는 배타주의는 배제하려는 타자가 자기를 이루고 있으니 자기모순이라고 했습니다. 타자를 포함한다는 포괄주의는 타자에 대한 우월을 전제하니 서로 우열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타자와 함께 한다는 다원주의도 자기가 그렇게도 타자와 다르기만 한 별개라는 착각을 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이제 같은 이야기를 반대 방향에서 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려는 것은 이것이 바로 다종교상황에서 겪는 문제의 핵심적인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5 결국 ‘자기’가 문제의 핵심이다!Jul 16, 2015 03:40 AM KST

앞서 살펴본 대로, ‘인간’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종교의 문제들을 아무리 심도 있게 논해도 그 뿌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종교의 문제를 인간과 떼어 놓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가 표방하는 절대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경향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대체로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우리는 종교의 원론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됩니다. 이상적이고 원리적인 이야기만 하니 그럴 듯 해보이기는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위나 정오를 판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많은 논의가 공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을 덮어놓고 종교만 살피려하기 때문입니다.

[정재현의 신앙성찰] 그렇다면 ‘인간’은?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4 그렇다면 ‘인간’은?Jun 24, 2015 07:03 AM KST

앞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은 독실한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가당착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교회를 앞세운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그것도 내가 속한 교회만이라 하니 자기절대화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교회나 그리스도교라는 범주를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얼마나 심각하게 자아내는지를 진솔하게 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성경도 무슨 법전인양, 휘두르는 칼처럼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아직도 생소하거나 여전히 꺼려진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인간을 스스로 살펴봅시다. 나 자신을 보자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 그리스도교, 성경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우리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비/의도적으로,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3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에 대하여Jun 08, 2015 11:22 AM KST

교회보다 그리스도교가 더 크고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것이라고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성서에 갇혀 계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럴 수 없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물론 이 구호는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뭘 어떻게 생각해? 당연한 거지!”라고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착실히 하시는 분들에게 교회와 구원의 분리불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언제나 옳고 당연한 것입니다. 아니라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할 이유도 없겠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사에서도 이런 구호는 꽤 일찍이 등장했습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중세 초기인 7세기의 키프리우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구호라고 하겠습니다. 이교도들과의 싸움을 위한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중세 절정기인 13세기 교황 보나파시오가 교회의 치리를 목적으로 이 구호를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그러다가 시대의 전환이 근세로, 현대로 넘어오면서 세상이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듯이 보이자 교회는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듯이 이 구호를 재천명했습니다. 현대가 시작할 무렵인 1860년대에 열렸던 가톨릭교회의 제 1차 바티칸공의회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60년대 제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이 고전적 구호를 폐지하고 현대로의 전환의 길목에서 근대적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 구호는 가톨릭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니 개신교회의 경우도 이 선언은 포기할 수 없는 기조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개신교회가 이 구호를 오히려 더욱 목청 돋우어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한 교회가 전권을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생한 성지 이야기3] 에베소②: 사랑의 사도 요한

[생생한 성지 이야기3] 에베소②: 사랑의 사도 요한May 30, 2015 06:59 AM KST

백발이 성성하고 기력이 쇠한 노사도가 에베소의 강렬한 태양 빛이 쏟아지는 어느 늦여름에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지하 예배실에서 힘없이 빙 둘러 앉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 현대인의 성경) 체코의 종교개혁자 제롬에 따르면, 사랑의 사도 요한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서 장기간 설교하는 것이 힘들어 졌을 때, 가끔씩 나와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한 마디씩 권면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했다고 한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을 권면할 때마다 온화한 얼굴로 “나의 아들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항상 같은 말만 반복해서 하니까 에베소 교인들은 식상한 나머지 이렇게 건의를 했다고 한다. “사도님, 왜 똑같은 말씀만 계속 되풀이 하십니까?”라고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노사도는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니라”라고 말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2교회-그리스도교-성서-하나님의 관계May 26, 2015 09:44 AM KST

서로 다른 여러 종교들이 함께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다종교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살피기에 앞서 그리스도교 안에서 좀 정리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뼈대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핵심들을 추려본다면 교회, 그리스도교, 성서, 하나님, 이렇게 열거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더 많은 핵심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뼈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동의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넷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넷이 모두 같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미 차원이 다르니 액면 그대로 무조건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소유 또는 귀속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고 보는 가장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고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경전으로서 그 수용과 해석의 권한이 전적으로 그리스도교에 속하며 그러한 그리스도교는 현실에서 교회로 결집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 넷은 등호(=)를 써서 ‘교회=그리스도교=성경=하나님’이라고 정리됩니다. 순서를 정반대로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를 구성하는 요체로서 전부이며 그리스도교는 성경을 경전으로 채택하고 전수하는 권한과 의무를 지닌 독자적 종교이고 성경은 하나님을 이 세상에 알려주는 유일한 계시 또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돈독한 신앙으로 보입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1 ‘종교’와 ‘다종교상황’이라는 것May 16, 2015 09:07 AM KST

과학의 출현이 새로이 열었다는 근세를 탈종교화 또는 세속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중세 종교의 자리를 과학이 대신하여 인간을 더욱 확실히 잘 살게 해 줄 것이고 결국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과학주의까지 치달아갔지만 그것은 곧 근세 붕괴의 서주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이 시작된 우리 시대인 현대는 아직도 엮어져가는 중이라 잠정적으로 ‘포스트모던(post-modern)’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앞선 근대와 연속적이라는 뜻에서는 ‘후기근대’이기도 하고 불연속적이라는 뜻에서는 ‘탈근대’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우리의 시대에 종교의 퇴조를 여러 모로 예견한 이들이 꽤 있었지만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종교의 운명을 그렇게 점쳤던 말들이 딱히 맞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즐거워할 일만도 아닌 것은 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무종교인들이 그 어떤 종교인보다도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엄연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생생한 성지 이야기2] 성령이 된 이만희, 마리아가 된 아데미?May 06, 2015 07:27 AM KST

한국 교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공통적으로 이단과 사이비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벌여 왔는데, 특히 요즘은 대표적인 사이비 집단인 ‘신천지’(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때문에 거의 모든 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CBS에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방송을 8부작 시리즈로 방송을 하면서 신천지의 저항이 더욱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김경재 칼럼] 그리스도교 사유의 역사(5)Jan 24, 2015 09:17 AM KST

금년(2015)은 종교개혁 498주년을 맞는다. 마틴 루터가 윗템베르그 교회당 게시판에 ‘95개조 토론주제’를 게시한 날(1517년 10월31일)을 종교개혁의 날로 삼는다. 종교개혁 사건은 그리스도교 교회사 안에서 발생한 종교적 사건으로서만 아니라, 근데이후 유럽문명의 사회, 경제,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준 세계 문화사적 사건이 된다. 예들면, 근대시민사회의 출현과 함께 개인양심의 자유권, 직업윤리, 국가권력과 교권의 분리, 성경의 대중보급, 평신도 위상, 인문학 연구등에서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심광섭의 미술산책] 최후의 심판(2)Dec 31, 2014 02:21 PM KST

우리 주님은 가해자를 보복하고 불의한 자에게 앙갚음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의를 바로 세움으로써 그들을 용서하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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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족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회

"모든 형태의 편견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고질적 질병이다. 그것은 생존의 수법이다. 그러므로 참 사람이 되는 길은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한 불가능하다. 편견은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