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5 결국 ‘자기’가 문제의 핵심이다!Jul 16, 2015 03:40 AM KST

앞서 살펴본 대로, ‘인간’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종교의 문제들을 아무리 심도 있게 논해도 그 뿌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종교의 문제를 인간과 떼어 놓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가 표방하는 절대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경향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대체로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우리는 종교의 원론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됩니다. 이상적이고 원리적인 이야기만 하니 그럴 듯 해보이기는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위나 정오를 판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많은 논의가 공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을 덮어놓고 종교만 살피려하기 때문입니다.

[정재현의 신앙성찰] 그렇다면 ‘인간’은?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4 그렇다면 ‘인간’은?Jun 24, 2015 07:03 AM KST

앞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은 독실한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가당착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교회를 앞세운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그것도 내가 속한 교회만이라 하니 자기절대화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교회나 그리스도교라는 범주를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얼마나 심각하게 자아내는지를 진솔하게 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성경도 무슨 법전인양, 휘두르는 칼처럼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아직도 생소하거나 여전히 꺼려진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인간을 스스로 살펴봅시다. 나 자신을 보자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 그리스도교, 성경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우리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비/의도적으로,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3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에 대하여Jun 08, 2015 11:22 AM KST

교회보다 그리스도교가 더 크고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것이라고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성서에 갇혀 계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럴 수 없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물론 이 구호는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뭘 어떻게 생각해? 당연한 거지!”라고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착실히 하시는 분들에게 교회와 구원의 분리불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언제나 옳고 당연한 것입니다. 아니라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할 이유도 없겠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사에서도 이런 구호는 꽤 일찍이 등장했습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중세 초기인 7세기의 키프리우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구호라고 하겠습니다. 이교도들과의 싸움을 위한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중세 절정기인 13세기 교황 보나파시오가 교회의 치리를 목적으로 이 구호를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그러다가 시대의 전환이 근세로, 현대로 넘어오면서 세상이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듯이 보이자 교회는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듯이 이 구호를 재천명했습니다. 현대가 시작할 무렵인 1860년대에 열렸던 가톨릭교회의 제 1차 바티칸공의회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60년대 제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이 고전적 구호를 폐지하고 현대로의 전환의 길목에서 근대적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 구호는 가톨릭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니 개신교회의 경우도 이 선언은 포기할 수 없는 기조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개신교회가 이 구호를 오히려 더욱 목청 돋우어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한 교회가 전권을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생한 성지 이야기3] 에베소②: 사랑의 사도 요한

[생생한 성지 이야기3] 에베소②: 사랑의 사도 요한May 30, 2015 06:59 AM KST

백발이 성성하고 기력이 쇠한 노사도가 에베소의 강렬한 태양 빛이 쏟아지는 어느 늦여름에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지하 예배실에서 힘없이 빙 둘러 앉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 현대인의 성경) 체코의 종교개혁자 제롬에 따르면, 사랑의 사도 요한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서 장기간 설교하는 것이 힘들어 졌을 때, 가끔씩 나와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한 마디씩 권면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했다고 한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을 권면할 때마다 온화한 얼굴로 “나의 아들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항상 같은 말만 반복해서 하니까 에베소 교인들은 식상한 나머지 이렇게 건의를 했다고 한다. “사도님, 왜 똑같은 말씀만 계속 되풀이 하십니까?”라고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노사도는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니라”라고 말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2교회-그리스도교-성서-하나님의 관계May 26, 2015 09:44 AM KST

서로 다른 여러 종교들이 함께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다종교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살피기에 앞서 그리스도교 안에서 좀 정리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뼈대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핵심들을 추려본다면 교회, 그리스도교, 성서, 하나님, 이렇게 열거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더 많은 핵심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뼈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동의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넷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넷이 모두 같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미 차원이 다르니 액면 그대로 무조건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소유 또는 귀속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고 보는 가장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고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경전으로서 그 수용과 해석의 권한이 전적으로 그리스도교에 속하며 그러한 그리스도교는 현실에서 교회로 결집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 넷은 등호(=)를 써서 ‘교회=그리스도교=성경=하나님’이라고 정리됩니다. 순서를 정반대로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를 구성하는 요체로서 전부이며 그리스도교는 성경을 경전으로 채택하고 전수하는 권한과 의무를 지닌 독자적 종교이고 성경은 하나님을 이 세상에 알려주는 유일한 계시 또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돈독한 신앙으로 보입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1 ‘종교’와 ‘다종교상황’이라는 것May 16, 2015 09:07 AM KST

과학의 출현이 새로이 열었다는 근세를 탈종교화 또는 세속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중세 종교의 자리를 과학이 대신하여 인간을 더욱 확실히 잘 살게 해 줄 것이고 결국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과학주의까지 치달아갔지만 그것은 곧 근세 붕괴의 서주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이 시작된 우리 시대인 현대는 아직도 엮어져가는 중이라 잠정적으로 ‘포스트모던(post-modern)’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앞선 근대와 연속적이라는 뜻에서는 ‘후기근대’이기도 하고 불연속적이라는 뜻에서는 ‘탈근대’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우리의 시대에 종교의 퇴조를 여러 모로 예견한 이들이 꽤 있었지만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종교의 운명을 그렇게 점쳤던 말들이 딱히 맞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즐거워할 일만도 아닌 것은 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무종교인들이 그 어떤 종교인보다도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엄연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생생한 성지 이야기2] 성령이 된 이만희, 마리아가 된 아데미?May 06, 2015 07:27 AM KST

한국 교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공통적으로 이단과 사이비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벌여 왔는데, 특히 요즘은 대표적인 사이비 집단인 ‘신천지’(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때문에 거의 모든 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CBS에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방송을 8부작 시리즈로 방송을 하면서 신천지의 저항이 더욱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김경재 칼럼] 그리스도교 사유의 역사(5)Jan 24, 2015 09:17 AM KST

금년(2015)은 종교개혁 498주년을 맞는다. 마틴 루터가 윗템베르그 교회당 게시판에 ‘95개조 토론주제’를 게시한 날(1517년 10월31일)을 종교개혁의 날로 삼는다. 종교개혁 사건은 그리스도교 교회사 안에서 발생한 종교적 사건으로서만 아니라, 근데이후 유럽문명의 사회, 경제,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준 세계 문화사적 사건이 된다. 예들면, 근대시민사회의 출현과 함께 개인양심의 자유권, 직업윤리, 국가권력과 교권의 분리, 성경의 대중보급, 평신도 위상, 인문학 연구등에서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심광섭의 미술산책] 최후의 심판(2)Dec 31, 2014 02:21 PM KST

우리 주님은 가해자를 보복하고 불의한 자에게 앙갚음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의를 바로 세움으로써 그들을 용서하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심광섭의 미술산책] 최후의 심판(1)Dec 31, 2014 02:16 PM KST

주님! 일어나소서 악인들 맞받아 때려 누이시고 칼로써 끝장내어 이 목숨 구하소서

[이충범의 물에서(5)] 공공의 적들과 계급의 발생

[이충범의 물에서(5)] 공공의 적들과 계급의 발생Oct 23, 2014 07:39 AM KST

직장에 나가지 않는 기러기 아빠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생활이 엉망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규칙적인 일상의 일환으로 매일 동네 뒷산에 올랐습니다. 늘 다니던 길을 다니다가 조금 지루해지면 또 다른 길을 개척하고, 그렇게 또 다니다가 지루해지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이런 식으로 산책을 다니자 동네 뒷산은 제게 매일 새로운 얼굴을 선보여 주었습니다. 자주 만나는 화사(花蛇)나 가끔 보는 살모사는 친한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때론 거대한 고라니 수컷도 만났습니다. 어떤 때는 누구에겐가 살해당한 고라니 새끼의 사체도 보고, 작고 귀여운 쇠딱따구리, 물총새 등도 쉽게 만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산을 즐기며 동네 뒷산을 다니는 시간이 1시간에서 2시간, 2시간에서 3시간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충범의 물에서(4)] 전쟁, 보스의 출현과 리더의 등장 Oct 06, 2014 06:35 AM KST

사고는 매우 간단했습니다. 물잡이 고기들의 적응력에 놀란 저의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그들은 제게 질긴 DNA전승 집착을 보여주었습니다. 꼬물대는 것들은 연체동물이 아닌 소드테일의 새끼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저는 치어 사육통을 사러 대형양판점으로 뛰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행동이 즉흥적이고 본능적일 뿐 사려 깊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육통을 사들고 집에 돌아와서 새끼들을 격리하자마자 이런 질문이 저의 뇌리를 때렸습니다. “건강하게 다 자라면 어쩔건데?”

[이충범의 물에서(3)] 내 이름은 소모품

[이충범의 물에서(3)] 내 이름은 소모품Sep 17, 2014 11:58 PM KST

아주 오래 전에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땅이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한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다 바다를 막아 놓은 댐 한 구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물이 새는 구멍을 막고 있었는데 수압에 의하여 구멍이 점점 커져가면서 소년은 자신의 팔을 집어넣어 물을 막아야만 했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소년의 부모가 그를 발견하고 보니 소년은 댐에 팔을 넣고 잠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 후 소년은 저체온증으로 죽었대나, 살았대나,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 이야기가 뻥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씁쓸한 미소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네덜란드 그 지역엔 소년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가본 것은 아닙니다. 여하튼 이 이야기는 한 소년의 희생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충범의 물에서(2)]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충범의 물에서(2)]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Sep 06, 2014 06:35 AM KST

친구 Y는 직업군인이셨던 아버님 슬하의 5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형제가 많아서인지 그는 부모님의 제재를 별로 받지 않고 초등학생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행동반경과 자기영역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던 그는 대담한 성격에다 용기까지 대단하여 늘 새로운 탐험을 즐기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린아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까지 가서 물고기들을 잡아 오곤 했는데 우리는 그의 물고기 사냥 무용담을 들으면서, 그리고 그의 작은 어항에 있는 소위 “태극붕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작은 몸에 길게 나풀거리는 지느러미를 가진 태극붕어는 경이롭게도 윗 지느러미에 선명한 태극마크를 달고 있었습니다. 쉰이 넘어 민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 이 후에서야 저는 이 태극붕어의 정식 이름이 버들붕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버들붕어가 태극마크를 선명하게 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또 한 가지, 지금도 어린 그와 내가 그 먼 곳까지 어떻게 그렇게 자주 다녔었는지 저 조차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여하튼 친구 Y는 초등학생이었던 제게 늘 부러운 존재였습니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팜플로나의 평화로운 오후Jul 19, 2014 09:38 AM KST

피난처가 되어 준 팜플로나 알베르게의 환대와 풍성함의 은택은 우리를 새롭게 하였다. 씻음의 정결함과 채움의 풍족함이 우리에게 내적인 안식과 친절한 위로를 베풀어준다. 오후 6시가 다 되어 팜플로나 골목길에 나섰다. 아직도 날씨는 후끈하다. 저녁 먹을거리도 그렇고 내일 여정 중에 공급할 일용양식을 준비해야 했다. 부를라다 도로 끝에서 올려다 보이던 산타마리아교회가 바로 옆 골목에 있다. 아름답다. 14세기 나바라의 군주였던 카를로스 엘 노블레와 그의 아내 레오노르가 영원히 기도하는 모습의 석조상으로 산타마리아교회 내부에 누워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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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14):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인격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격주의가 문제다. 신을 지나치게 인격적으로 환원시킨 인격주의적 신관은 의인화의 산물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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