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도

성경이 말하는 방언(3)Feb 09, 2020 08:08 AM KST

"방언(方言)이라는 말은 지방언어(地方言語)의 약자입니다. 각 지방에서 쓰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사투리"라고도 불리지만,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사투리보다 훨씬 더 많이 다른 외국언어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경상도 사투리와 황해도 사투리는 서로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말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말과 일본말 그리고 중국말은 통역인의 도움이 없이는 의사소통이 전혀 가능하지 않은 언어인 외국어입니다."

manja

고난 가운데 희망을 사신 어머니Jan 24, 2020 12:46 PM KST

"만주 땅에서 막 돌아온 내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성서에 나오는, 이방인의 땅 모압에서 남편과 아들 모두를 잃고 며느리 룻과 함께 빈손으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모습에 비교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졸망졸망한 딸 넷을 데리고 친정으로 찾아온 딸을 보시고 외할아버지는 한참을 우시었다. 그러고는 '그냥 내 곁에서 지내거라. 아이들을 내가 키워 주마' 하시면서 불쌍한 과부 딸을 위로하셨고,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할아버지 곁에 살 것을 권하셨다. 그런데 내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살면 어머니는 편하게 지내실 수 있겠지만 우리들을 누구의 신세지면서 키워 기죽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또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시골이 아닌 도시로 가서 사시겠다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던 것이다."

이민애 기자

manja

최만자의 나의 삶, 나의 이야기: 프롤로그Dec 31, 2019 08:46 AM KST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최만자'는 모두 만주에서 태어난 '만자'들이었다. 일제의 만행이 극심해 지던 일제 강점 말기에 수많은 우리 백성들은 고향을 등지고 만주 땅으로 이주를 하였다. 우리 가족도 그 이주민 대열에 들어 있었고 그 허허로운 만주 벌판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의 네 번째 딸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나를 태어난 지명에 따라 '만자'라고 이름 지으셨다. 아마 다른 세 명의 만자들도 나와 나이가 비슷할 것이고 그들 또한 만주행을 하여야 했던 가족적 상황을 가졌을 것이다. 이름이 '자'자가 붙어 있으면 그것은 대체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 지어진 이름들이다. 더구나 '만자'는 고향을 뒤로하고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났던 식민지 백성의 슬픔이 그대로 베어 있는 이름이다."

warmemorial

[옹달샘과 초점(14)] 미국은 신성국가이며 한국은 주권국가인가?Nov 21, 2019 03:36 PM KST

"주한 미군감축과 철수? 언젠가는 한국민이 미군은 이제 철수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한국이 금방 망하고 무너진다는 것인지 한국 보수 정치계 및 군부지도층과 극우 기독교 지도자들은 명백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미국 안에는 선한 그리스도인도 많았고 지금도 미국민과 한국민 사이엔 특별한 유대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로서의 미국은 철저히 세속적 국가이며, 자국의 정치 경제 국방 이익을 추구하는 세속적 나라이지 '메시야적 신성국가'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kimkyungjae_07

[옹달샘과 초점(13)] 몸과 맘과 얼, 그 정기신(精氣神)의 변증법Nov 18, 2019 11:57 AM KST

"오늘날 깊은 병에 든 한국사회 각계의 기득권자들이 보이는 인간추태와 욕망과 명예욕과 자기아집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증진에 공헌 하기는 커녕 한국에 천문학적인 방위비 인상을 강요하는 국가이기주의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기독청년 전태일의 순수한 맑은 마음이 그리워진다. 대구지역에서 전태일을 사랑하는 새로운 기운과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기쁜 소식에 감사한 맘으로, 성냥개비 불꽃 하나 보태는 심정으로 서민들이 송금하기 위해 우체국을 찾아 나선다. 미국의 방위비 인상 강요의 부당성을 지적한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K)가 최근에 발표한 성명서에 동참하는 기독자의 숫자가 점증한다. 이것이 이 땅의 작은 희망의 씨앗이 아니겠는가?"

kimkyungjae_07

[옹달샘과 초점(12)] 잊음(Forgetting)과 잊혀짐(Being forgotten)Nov 12, 2019 01:42 AM KST

"기독교신앙은 오직 한가지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하심과 공의로우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위에 서 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위기는 그 근본적 믿음을 부인하고 우롱하듯이 행동하는 교역자, 신학자, 신도들이 아주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근본이 살아나야 살길이 생긴다"(本立而道生).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삶은 교리적으로 기독교신관을 부정하는 관념적 일이 아니고, 현실생활 속에서 무신론적이고 지극히 세속적 자기 야욕을 채워가면서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정의로우심을 우롱하는 생활인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지극히 세속적 정치비판을 하면서 대낮에 대놓고 '헌금'을 강요하는 파렴치한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탈선행위(脫線行爲)' 속에서 그 사례를 본다.

lily

[옹달샘과 초점(11)] '거룩한 낭비'로서의 생명현실 그 자체Nov 06, 2019 10:47 PM KST

"확실히 기독교는 의미 있거나 가치 있는 것, 이전 것보다 더 새롭고 발전한 것을 추구해가는 역사 지향적 종교로서 특징이 강하다. 자연 그 자체의 반복적 순환보다는 목적 지향적 삶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한다. 그러한 기독교 특징은 귀중한 특징이지만 잘못하면 평범한 것, 반복되는 일상적인 것,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그런 것들의 존재권리를 박탈, 억압, 무시, 폄훼하는 경향성이 강하다. 그 결과 내일이 아닌 오늘, 결과가 아닌 과정, 의미나 가치를 묻기 전에 있음 그 자체의 신비에 대하여 눈먼 신도들이 되기 싶다."

kimkyungjae_07

[옹달샘과 초점(10)] 홀로있음(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의 차이Oct 29, 2019 10:46 PM KST

"종교적 대중 집회도 마찬가지다. 집단, 단체, 무리, 군중, 큰 집회는 집단 회중이 내뿜는 열기가 있고 그 정서가 심하게 되면 집단적 과잉흥분상태와 심리적 황홀경험 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참다운 영성의 성숙한 황홀경험이 아니다. 열기가 식고나면 더 허전하고 더 외로움에 빠진다. 마약 중독자들처럼 그런 사람은 계속 그런 집회를 찾아다닌다. 홀로 하나님 앞에 고요히 설 줄을 모른다. 아니 홀로 하나님 앞에 마틴 루터처럼 벌거벗은 몸으로 설 용기를 갖지 못하고 두려워한다. 이름 있는 큰 재벌기업 회사나 유명한 큰 교회를 자기 자신이라고 곧바로 동일시한다. 단체여행 상품처럼 구원을 보장해주는 큰 교회나 안정된 종교기관에 자기영혼은 의존하려 든다. 종교개혁 정신은 그렇지 않다."

candle

[옹달샘과 초점(9)] 결국 다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Oct 20, 2019 06:09 AM KST

"서초동에 모인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광화문 집회 소위 태극기 부대 참가자들의 역사의식을 동질의 것이라고 필자는 보지 않는다. 소위 '진영논리' 블랙홀에 빠져있다고 필자는 초연한 듯이 경박한 판단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역사에서 상대적 선택과 참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 나는 서초동 집회를 더 지지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필자가 말하려는 핵심은 서초동이나 광화문 두 진영의 모두에게 '흑백 분리 단순사고법'을 넘어서서 우리민족과 사회를 이 비극적이고도 비인간적 현실로 휘몰아 가는 숨겨진 '악의 정체'를 좀 더 깊이 생각하자는 것이다."

kimkyungjae_07

[옹달샘과 초점(8)] 역지사지(易地思之) 할줄 아는 감성능력Oct 15, 2019 10:18 AM KST

"우리는 이제야 깨닫는다. 왜 중세기와 근세까지 종교계에 마녀사냥이 복음진리 수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횡횡했는지. 신앙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찾아가간 청교도 주류들이 근면성실 했으나 왜 그들은 흑인 노예들을 인간이하로 여기고 흑인노예 해방에 앞장서지 못했으며 극소수 퀘이커 교도들이 그 일에 앞장 섰는지. 왜 기독교문명권의 선도국가라고 자부하는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무신론적 인간살해와 억압, 그리고 그런 문명에 저항하는 해방 혁명운동이 일어났는지 이제야 깨닫는다...'역지사지하는 인간의 감성능력'을 마비시키고 냉혹한 인간군상으로 만드는 3대 마약은 무엇인가?"

kimkyungjae_07

[옹달샘과 초점(7)] 함옹의 신앙순수 지향과 니버의 리얼리즘Sep 14, 2019 08:30 PM KST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는 서로 양보하고 역지사지하면 자기를 조금 희생하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느 정도 지속할 수 있지만, 집단과 집단, 계층과 계층 사이엔 불가능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나온 명제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이다. 위 불후의 명제가 주장하는 것은 2가지이다. 첫째, 인간사회공동체 속에서 집단과 집단의 갈등은 개인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이 증폭 강화되면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할 수 없게 된다. 둘째..."

moonjaein

[옹달샘과 초점(6)] 나단과 요압, 누가 다윗을 돕는 자였던가?Sep 02, 2019 06:48 AM KST

요즘 법무부장관후보자 조국이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우리시회가 몹시 시끄럽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 방송, 그리고 시장바닥, 뒷골목 선술집 저녁 퇴근길에 막걸리 한잔씩 나누는 소시민들 입에도 온통 그 문제다. 씨알의 입장에서 그 문제는 이미 결판이 난 것이다. 다윗주변의 요압장군에 해당하는 청외대 참모진, 집권여당인 민주당, 그리고 문재인정권에 지나치게 과잉 충성하는 사람들 눈에만 국민 여론의 진실이 안보이고 안 들리는 것인가?

kimkyungjae_07

[옹달샘과 초점(5)] 신천옹(信天翁)이 본 한국 기독교의 핵심문제Aug 13, 2019 09:38 AM KST

"한국교회, 한국기독교는 어떠한가? 물론 잘 하는 지도자와 교회들이 더러 있지만 대체로 한국 기독교는 보수 정통적임을 강조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여 새로운 사조를 무조건 비판 거부한다. 과학사상과 싸우려 들고, 변화하지 않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기독교진리가 16-17세기 정통신학 안에 완성품으로 보존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교파 분열을 가속화하고 세상권력자들과 교계 내부 속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해 '무슨 무슨 총연합회' 조직 만들기 좋아하고, 감투를 나눠 쓰고,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보고 돌진하자고 말 엉덩이를 후려친다."

kimkyungjae_07

[옹달샘과 초점(4)] 장공의 좌우명에서 '예와 아니오'의 교훈Aug 07, 2019 05:26 AM KST

"좌우명(座右銘)이란 늘 가까이 적어 두고, 일상의 경계(警戒)로 삼는 말이나 글을 일컫는다. 보통은 한 두마디 가장 중요시하는 단어를 책상 앞이나 벽에 써두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기독교사에서 진보적 대표신학자로 손꼽는 장공 김재준목사(1901-1987)에게도 죄우명이 있었는데 10가지였다. 하나, 아는 분은 알지만 아직 널리알려지지 않는 내용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참고로 그의 죄우명 10가지를 다음에 다시 적어본다."

kimkyungjae_07

[옹달샘과 초점(3)] 성주괴공과 숫양의 뿔Jul 23, 2019 09:47 PM KST

""만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 한다"는 통찰은 고다마 싯다르타의 깨달음 실상을 평이하게 풀어 말한 것 중의 하나이다. 한문글자이어서 '생노병사'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루고(成), 머물다가(住), 허물어져(壞), 텅 빔으로 되돌아간다(空)"는 말이다...베드로 성당, 노트르담 성당, 구례 화엄사, 예루살렘 언덕이 있는 이슬람교 황금사원이라고 영원한가? 단일교회로서 교인숫자의 수량적 크기로서 10만명 이상 모이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나 명성교회는 예외일까? 서운할 말이요 벼락 맞을 소리인지 모르지만 그것도 '성주괴공'의 철칙에서 빗겨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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