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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영성순례기] 팜플로나의 낭만 까미노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팜플로나의 낭만 까미노Jul 12, 2014 07:18 AM KST

‘탕.’ 요란한 폭죽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르고 귀청을 뒤흔든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육중한 철문이 좌우로 열려진다. 리워야단 같은 콧김을 내뿜으며, 강인한 두 뿔을 좌우 날개 벌리듯이 내민 분노한 소들이 뛰어 나온다. 검은 녀석, 짙은 갈색, 얼룩진 것 등 그 기세가 심히 위협적인 황소들 십여 마리가 팜플로나의 골목길을 거침없이 질주한다. 뜨거운 여름, 매년 7월 6일, 일주일간의 산 페르민 축제가 시작된다. 하얀 셔츠와 빨간 머플러를 목에 감은 차림으로 축제를 즐기려는 젊음들이 소 떼와 함께 뛴다. 황소들이 돌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고, 황소의 뿔을 피하려는 사람, 그 뿔을 잡아 보려는 사람, 그 괴이한 광경을 지켜보려고 발코니마다 매달린 사람들의 탄성과 환호성이 좁은 골목길 안에 가득하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까미노Jul 09, 2014 11:05 AM KST

아내의 하소연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힘들어요. 아파요. 고통스러워요.” 심지어, “죽겠어요.” 한다. 나와서는 안 될 말까지 나온 것이다. 해줄 수 있는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사발디카Zabaldika를 빠져 나오면서 135번 국도와 교차하고 도로 오른쪽 경사길을 따라 십 여리 쯤 가야 내리막길이 나온다. 팜플로나 도시 풍경이 저 너머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들어온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까미노에서 노란 화살표를 잃어버렸을 때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까미노에서 노란 화살표를 잃어버렸을 때Jul 09, 2014 07:29 AM KST

북쪽 멀리로는 산악지대, 남쪽으로는 비옥한 곡창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위쪽에는 구불구불한 아르가 강이 생명수를 공급하는 동시에 외적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는 천혜의 ‘해자’가 되어주는 도시가 팜플로나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BC 75년 율리우스 케사르의 정적 폼페이우스가 로마에 대항한 반란군을 정벌하기 위해 세운 도시로 소개되고 있다. 무어인과 샤를마뉴의 격돌, 스페인과 프랑스 간 전쟁 등의 소용돌이가 이 도시에서 계속되었다.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1521년 프랑스군을 맞아 팜플로나 요새를 방어하던 중에 포탄을 맞고 다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후, 로욜라 성에서 요양하면서 자신의 죄를 깨닫는 영적인 각성의 시기를 맞이한다. 이냐시오는 자신의 삶을 순례로 비유하면서 그의 자서전을 통해 “명성을 얻으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군사훈련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며 허영에 빠진 사람” 이었다고 고백하고, 내면으로 신비한 순례의 여정을 떠난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까미노에서 대접 받은 ‘냉수 한 그릇’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까미노에서 대접 받은 ‘냉수 한 그릇’Jun 30, 2014 02:30 PM KST

죽은 줄로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해 이집트에 간 늙은 야곱은 파라오 앞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47:9)” 세상 떠돌던 나그네 길이 험악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인생이 무겁고, 힘들고, 짜증이 나며, 악한 일들과 고생과 걱정이 심했다는 것을 말함이다. 많이 틀린 말은 아닌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이처럼 험악한 일들만 가득하다면 우리의 나그네 길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지만 순례의 여정 가운데 우리는 사랑의 천사를 수도 없이 만난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까미노의 산딸기가 주는 기쁨과 유혹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까미노의 산딸기가 주는 기쁨과 유혹Jun 28, 2014 09:10 AM KST

까미노 길 가에 늘어선 검은색 산딸기(Ronce)를 몇 개씩 따먹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어릴적 간식거리가 많지 않던 때, 한 여름철 동무들과 마을을 온통 헤집으며 뛰어놀다가 산딸기를 따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우리의 산딸기는 속살이 들여다 보일만큼 빨갛고 앙증맞다. 어떤 것은 잘 익어서 거무스름한 빛깔을 나타내는 것도 있지만, 산딸기를 한움큼 따면 손바닥은 빨갛게 물이 든다. 그마저 철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사람들의 손길에 남아나지 않는다. 땀이 바짝 난 더위에 산딸기 고것 몇 개만 입에 넣고 오물거려도, 그 시큼하고 달콤한 청량감은 한량없는 것이어서 어느덧 등줄기 흘러내린 땀을 말리기에 충분하다. 누가 그렇게 열매를 따갔는지 우리가 그것을 찾을 때면 넉넉한 수확을 거둘 수가 없었다.

[심광섭의 미술산책] 개혁교회 미학Jun 24, 2014 07:24 AM KST

언젠가 장로회신대 조직신학 교수인 김 모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소년시절 청교도 신앙과 정신을 어마어마한 것으로 생각하다가 대학 영문과에 들어갔는데 한 교수가 청교도 정신이 영문학을 쇠퇴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설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금욕과 절제와 검약을 강조하는 청교도주의자들에게 예술과 미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려했던 르네상스나 바로크의 예술과 비교할 때 대단히 소박하고 단순하게 보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신교회를 예술의 교묘한 거세자라고 말하는데, 개신교 안에도 세계를 부정하거나 반예술적이지 않은 흐름들도 있지만 17세기 영국의 크롬웰 공화국 시대에 예술에 대하여 대단히 강력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청교도신앙의 세상 문화에 대한 비타협과 검약을 계승한 관계로 예술과 문화에 대해, 그리고 감각과 감각의 향유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성향이 지배적이다.

[프라하 기행] 프란츠 카프카의 체취를 찾아서

[프라하 기행] 프란츠 카프카의 체취를 찾아서Jun 23, 2014 07:30 AM KST

프라하는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도시다. 시의 주요 길목에 그를 기리는 기념물이 서 있는가 하면, 기념품 상점에서는 그의 얼굴이 들어간 엽서와 티셔츠를 흔히 볼 수 있다. 카프카의 이름을 딴 카페도 성업 중이다. 또 그의 작품은 서점마다 한 가득씩 진열돼 독자들을 기다린다. 한편 후배 문인들은 ‘카프카 소사이어티’를 결성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복기해내는 활동을 수행중이다. 독일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 이스라엘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모스 오즈 등도 이 단체 회원이다.

[프라하 기행] ‘30년 전쟁’의 진원지 옛 왕궁

[프라하 기행] ‘30년 전쟁’의 진원지 옛 왕궁Jun 14, 2014 01:25 AM KST

사회적 변혁기에 갈등은 불가피하다. 이런 갈등이 종교적 신념과 결합되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번진다. 3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30년 전쟁’이 바로 그런 경우다.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신교의 영향력은 확대일로에 있었고, 이에 비례해 로마 교황청의 권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신흥 세력인 신교와 기존 기득권 세력인 구교는 자주 알력을 드러냈고, 이런 알력이 기나긴 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프라하 기행] 성지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

[프라하 기행] 성지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Jun 12, 2014 07:24 AM KST

‘성지(聖地)’란 낱말의 사전적 정의는 ‘각 종교에서 신성시하는 도시 혹은 지역’이다. 이 같은 정의를 따른다면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의 성지다. 프라하를 이렇게 정의하는 게 비약일수도 있다. 프라하는 특정 종교의 성지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얀 후스(1372년?~1415년)는 프라하에서 수학하며 자신의 개혁사상을 발전시켰다. 한편 신교와 구교의 알력이 전쟁으로 비화된 사건인 30년 전쟁도 프라하에서 촉발됐다. 이렇게 보면 프라하는 개신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기는 하다.

[심광섭의 미술산책] 훌륭한 설교자에 대한 루터의 주장Jun 05, 2014 11:38 PM KST

루터에게 제사장 직분의 바른 수행은 말씀의 선포에 있다. 말씀 선포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선포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업적과 삶과 말씀에 대한 지식을 처세를 위하여 역사적 사실로만 설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훌륭한 설교자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수립되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당신과 나를 위한 그리스도가 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이 우리 가운데 효과가 나타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설교되어져야 한다. 설교자는 “왜 그리스도가 오셨고 무엇을 그가 가져오시고 주셨으며 또한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는가 하는 것”을 설교해야 한다.[루터, 중에서]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라라소아냐의 어둔 밤May 13, 2014 12:29 AM KST

어둠이 찾아온다. 어둠이란 ‘공간’은 불안, 회피, 우울, 절망, 혼돈, 무질서 등으로 우리에게 언제나 부정적 인식의 대상이다. 늘상 찬란하고 완전한 빛이 찾아옴으로 어둠은 범죄자인양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고 마는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오늘은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찾아오는 어둠이 복되다. 너그럽게 감싸주고 덮어주는 캄캄함이 오히려 정의로운 빛을 밀어내듯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밤이다. 아! 어둠은 기도의 시간이다. 빛 속을 살며 나그네로 걸었던 고통과 먼지와 인내와 상처를 씻어낼 뿐만 아니라 지혜와 인도하심과 자비하신 주님께 향한 감사를 채우는, 성찰과 묵상으로 깊어가는 시간이 어둠이다. 소란과 분주함과 근심과 조급함의 발걸음을 멈추고, 기쁨과 푸른 초장과 신선한 시냇물가 베푸신 주님의 사랑을 아름다운 찬송으로 영광 돌리는 평화의 시간, 그것이 어두운 밤이다.

[심광섭의 미술산책] 자본과 구원May 09, 2014 08:34 AM KST

“만일 예수께서 돈을 저축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어디에서 쇼핑하시는지 알고 싶다.”(If Jesus saves, I want to know where he shops.) 이 글은 미국의 어느 화장실 벽에 쓰여 있는 낙서다. 물은 이 글은 동사 “구원하다(to save)”를 의도적으로 오독한 것이다. 그리고 이 동사는 명사 “구원(salvation)”과 관계되어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낙서는 다음과 같은 더 깊은 현실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라라소아냐의 까사 엘리타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라라소아냐의 까사 엘리타May 08, 2014 07:11 AM KST

라라소아냐 다리 밑 냇가에서 두 시간을 혼자 기다린 세빈이를 만난 마음은 복잡한 감정의 뒤엉킴이었다. “세빈아, 일단 알베르게에 가 보자.” 아르가 강 다리를 건너자 낡은 교회-성 니콜라스 예배당(13C경)-가, 오래된 친구들이 서로 다정하고 반가운 대화를 나누듯이 주변의 건물들과 정겹게 어울리고 있다. 높지 않은 종탑 벽에는 영혼의 깊은 곳까지도 흔들어 버릴 듯한 땡그렁 소리를 품고 있을 육중한 쌍둥이 종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수비리에서 멈추어야 했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수비리에서 멈추어야 했다May 01, 2014 07:42 AM KST

에로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골짜기는 바위와 자갈이 뒤섞인 험한 길이다. 까미노 전체 여정에서 만나는 가파른 내리막 경사 중에 단연 으뜸이다. 4킬로미터 정도 구간이고, 정상적인 걸음이라면 한 시간 소요되지 않을 거리이다. 그러나 전날 생장피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왔다면 사정은 다르다. 더욱이나 걷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참 험난한 여정이다. 그렇게 ‘게걸음’으로 절룩이면서 한 시간 반 정도 내려 왔을까? 오후 4시쯤 되니 아래쪽으로 붉은 지붕들이 있는 수비리 마을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시원한 물줄기 흐르는 수비리 마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수비리 마을을 지나 라라소아냐Larrasoana까지 6킬로미터 이상을 더 가야 한다. 나중에 따져보니, 우리 내외가 수비리에서 라라소아냐로 갈 즈음에 세빈이는 라라소아냐에 이미 도착하였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걸어보고 힘든 줄 알았다

[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걸어보고 힘든 줄 알았다Apr 26, 2014 07:22 AM KST

잠깐 쉬었다가는 걸음걸이가 가벼워질 것이라는 생각은 어제도 틀렸고 오늘도 틀렸다. 어깨는 다시 무겁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내리 쬐는 태양의 기세는 거침이 없다. 한길사(2008)에서 출판된 책, ‘두 남자의 산티아고 순례일기’의 지은이는 순례여정길에서 참 독특한 표현을 사용한다. 너무 힘들 때마다 튀어 나오는 말, 그것은 ‘닝기리죠또’이다. 이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은어와 육두문자를 조합한 비속어 표현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정작 걸어보고 나서 정말 힘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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