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눈가리고 귀막고 ‘개혁한다’는 한기총

한기총 특별총회 폐막에 즈음하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특별총회가 막을 내렸다. 한기총 구성원들은 지난 반년 간의 갖은 수모와 불명예를 한번에 씻어내려는 듯 선거관리규정에 관한 한 법원이 파견한 직무대행의 제안을 빠짐없이 수용했다. 금권선거 등으로 돌팔매질을 당한 한기총에게 ‘변화’와 ‘개혁’이란 깃발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였다.

하지만 깃발만 바꿔 단다고 끝난게 아니다. 한기총이 진정으로 변화되거나 개혁되고자 한다면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이 담보되어야 한다. 지도자들의 진정어린 반성과 회개가 없는 한기총을 누가 따르겠는가.

한기총이 ‘개혁’을 내세우며 정상화 수순을 밟는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가 있다. 누구를 위한 개혁이냐는 것이다. 향방 없이 ‘개혁’을 외치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 ‘개혁’의 주체나 대상이 무엇인지를 따지기 전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를 논하는게 먼저다. 후자가 충분히 고려된 다음에야 비로소 전자의 방향도 잡히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한기총이 단순히 선거관리규정 등을 개정하는 것으로 ‘개혁’을 이뤄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에 가깝다. 한기총이 진정으로 ‘개혁’을 희구한다면 ‘개혁’이란 몇몇 제도 개혁에 국한되어 있기 보다 지도자들의 마음가짐과 자세의 변화에 의존한다는 것 즈음은 알고도 남을 것이다.

이제라도 ‘이익집단’ 혹은 ‘이전투구의 장’이란 꼬리표를 떼기 위해 한기총은 한국교회 성도 그리고 한국교회 전체의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더 나아가 교회 제도권 밖에서 들려오는 비판적 목소리도 귀담아 듣는 유연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귀를 틀어막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현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사회책임 등 기독교 NGO 단체들은 한기총 대표회장에 인준된 길자연 목사의 용퇴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금권선거를 시인한 지도자가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얘기다. 공직자 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실제로 길 목사의 용퇴 여부를 한기총의 진정성 있는 개혁 여부를 따지는 잣대로 삼고 있기까지 하다.

세상의 지도자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좇는다. 돈과 권력이란 가치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는 달라야 한다. 날마다 교회 현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종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인카네이션의 가치를 설파하는 그들 만큼은 적어도 세상의 도(道)가 아닌 예수의 도(道)를 따라야 한다.

랍비 예수는 제자들에게 높아지려면 낮아지라 하였고, 그 분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배우라 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높은 자리는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응당 가시 방석과 같은 자리가 되어야 옳다.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과 인품을 갖춰야 하며 동시에 자기비움의 정신을 수행할 믿음이 필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길자연 목사가 말하는 화끈한 봉사보다는 길 목사의 용기있는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으나 길 목사가 금권선거를 시인한 것은 한기총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한기총 ‘개혁’의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은 적어도 한기총 사태의 가장 큰 부끄러움인 금권선거로부터 자유로운 후임 지도자들에게 맡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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