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라도(Belorado) - 아헤르(Ager): 7시간 (28Km)
오늘은 평소보다 더 걸어볼까 한다. 몸이 기억하는 익숙함이 아니기에 걱정도 되지만 그냥 이유 없이 그러고 싶은 날이 있다. 생장에서 나눠 준 지도를 보니 오늘은 높은 언덕도 있는 듯한데, 이기적인 주인 때문에 몸이 고생 좀 하겠구나, 싶다. 그래도 다행인 건, 걷기 시작하니 어제와는 다른 길들이 나타나 걸음에 흥이 묻어난다. 오름직한 언덕과 적당한 평지, 작은 숲길이 적절히 분배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까미노의 일상이 그렇듯 출발은 함께 했어도 곧 따로 걷기 마련인데, 앞서 걷던 나는 산 중턱의 어느 Bar에서 숨을 돌리며 일행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영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어디예요?" 찰나지만 시원한 바람이 온 몸과 마음을 감쌌다. 사람이란 이토록 단순하지. 작은 욕망만 채워져도 미소 짓는 걸 보면 말이다.
조금 있다 보니 저 멀리 세진이와 선영이의 모습이 보인다. 익숙한 듯 여전히 낯선 나의 동행들과 발맞춰 목적지까지 걸어간다. 노래를 듣고 또 흥얼거리다보니 어느새 아헤르(ager)에 도착이다.
최근 며칠의 순례보다 오래 걷고 땀도 많이 흘렸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던 건 어떤 생각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이 이리도 샘솟는지 생각의 힘이 육체의 고통을 잊게 할 정도이다. 누군가 인생을 결정하는 건 '어떤 생각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는가'라고 하던데, 이 아마추어 순례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머리가 복잡한 날이면 그곳이 어디든 한 시간 이상씩 걷곤 했다. 걷다보면 생각의 혼란이 조금은 명료해지는 걸 경험한다. 걷는다는 건 돌보지 못했던 마음의 파편을 제자리를 돌려주는 시간과도 같은 걸까? 물론 걷는 행위가 몸의 피로를 쌓이게는 하겠지만 그 피로가 사색을 방해하진 않는다. 오늘은 평소 한국에서 걷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었지만 육체는 잔소리 하나 없이 자신을 내어주었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았던 걸까?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그의 책 <어린왕자>에서 흥미로운 대화를 펼친다. 소설 속,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뭔지 아니?" 어린왕자는 답한다. "흠, 글쎄.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야"
대체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여우는 생의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지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판단에 맡겨둔다. 어떤 테크닉을 묻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사람의 마음 얻는 방법에 관해 말하고자 하면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각설하고 이분의 짧은 권고의 말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쳐도 좋을 듯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더 테레사(Teresa)의 말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이 당신을 만나 다음에는 반드시 더 행복해지도록 하십시오." 잔잔한듯하지만 힘 있는 이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이들 마음에 깊이 새겨지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정말 나를 만난 당신이, 당신과 만난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그 행복이 고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기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무언가를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삶을 축복한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