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텍스트 사이에서 21] 비참한 바빌론 포로생활 중에 정교화된 이스라엘의 창조신앙

김균진의 『기독교 신학 2』 "창조론"

바빌론 유수

구약성서의 창조신앙은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의 직접적인 근거이다. 구약성서의 창조 이야기를 단순하게 진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이 기록의 구성을 살피거나 내용이 가지는 의미를 천착해볼 수도 있다.

앞의 글에서 본 바와 같이,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이야기는 P 문서와 J 문서 자료를 사용하였다. 여러 자료를 사용하였어도 전체적으로 일맥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표상들이 사용되어 다양한 측면들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창조 이야기를 기록한 기록자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내용들을 기록하였을까?

김균진은 『기독교 신학 2』 "창조론" 부분에서 '구약성서의 창조신앙의 주요 관심'을 한 절로 다룬다. 그는 구약성서의 창조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몇 가지로 소개하는데, 이를 본 글에서 나누고자 한다.

메시지를 말하기 전에 김균진은 두 가지 전제를 먼저 밝힌다. 하나는 성서의 언어에 관한 것이다. 성서의 언어는 "사실들의 언어"가 아니라 "그림언어(Bildersprache)"이고 "은유"이다. 성서에 나오는 여러 자연에 대한 이야기들은 과학적 사실들이 아니라, 저자들이 증언하고자 하는 내용을 기술하기 위하여 고대인들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사용한 것이다.

다른 전제는 창조 이야기가 문서화되는 시기의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이다. 창조신앙은 다윗과 솔로만 왕 때 부분적으로 기록되었고, 이후 "바빌론 포로생활 때 정교하게 문서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400년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 남북 왕조의 멸망, 50여 년의 바빌론 포로생활(주전 586-536) 등 고난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에서도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창조 이야기를 문서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기독교 신학 2

김균진은 이스라엘이 고난의 역사 한 복판에서 창조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였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첫째, 이스라엘이 믿는 야웨의 하나님은 "신들 가운데 한 신이 아니라 유일한 신"이며 "초월의 신"이라는 고백이다. 당시 바빌론의 신화에서는 신들이 성관계나 전쟁을 통하여 세계를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야웨 신앙은 하나님이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아니"며,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또한 고대세계에서 자연은 신으로 생각되어 천체를 숭배하였고 바빌론에서도 해, 달, 별들에 대한 숭배와 제의가 있었는데, 야웨 신앙은 세계를 창조하신 야웨를 말함으로써 "자연의 영역을 탈신화화·탈신격화 시"켰다. 야웨의 하나님은 세계를 초월하신 분이다.

둘째, 구약성서 기자들은 야웨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증언하고자 했다. P 문서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bara라는 동사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재료가 없는 창조, 곧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이른다. 그들은 이방 민족의 포로가 되어버린 희망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믿는 야웨 하나님의 전능성을 고백한다. 이것은 이들의 구원신앙과도 연결된다.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야웨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는 말씀으로 세계를 무에서 창조한 전능한 분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고 우리를 도울 수 있다."

셋째, 구약성서 기자들은 창조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역사적 차원의 이해를 가진 민족이었다. (참조, "천하의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 전도서 3장.) 이들은 "때"나 '시간, 시기'에 민감하였고, 보이지 않는 시간들도 하나님의 전적인 통치 안에 있다는 인식을 하였고 이것을 고백하였다. 이스라엘은 인간 개개인의 삶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 전체가 창조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고 고백한다. 당시 거대한 제국들이 있었고 자신들은 포로들일 뿐이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눈에 보이는 제국의 통치를 넘어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하고자 했다.

이민애 eleison20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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