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텍스트 사이에서 19] 『신에게 솔직히』③, 예수가 실존 가운데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존 로빈슨, 『신에게 솔직히』, 현영학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① 『신에게 솔직히』①,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실존에서 울림이 있는가
② 『신에게 솔직히』②, '초자연적 하나님'과 '초월의 하나님'은 같지 않다
③ 『신에게 솔직히』③, 예수가 실존 가운데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예수님 사마리아 여인

1.
예수는 어느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성장 과정을 통과하며 자랐다.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예수는 오랫동안 생각해오고 준비해왔던 일을 시작한다. 제자들을 모아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들과 함께 다니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그 소식은 오로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기존의 종교인들이 전하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특히 무거운 의무를 부과했던 율법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용어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는데,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소망이 마음에 일어났다. 그는 가르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심지어는 부정한 여인이나 이방인들과도 교제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 눈높이에 맞춰 깊은 인격적 교제를 하였고, 때로는 찾아온 사람들이 처한 딱한 형편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시며 애통하며 기도해주셨는데, 그 기도는 때때로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를 시기하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작당했는데, 예수는 이를 알고도 피하지 않으셨다. 그는 자기에게 닥치는 일들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예수는 끝내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다. 그리고 그 이후 제자들은 예수 부활을 목격했다고 밝혔고, 여러 곳으로 다니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다.

예수와 함께 했던 제자들의 기록은 이렇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고, 자신이 하는 일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들이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주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실지로 이분은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제자들 뿐만 아니라 다니며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셨다. 여러 선생들이 있지만 예수가 다른 선생들과 달랐던 것은, 그의 사랑의 대상에는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민족의 원수같은 세리도 제자로 삼으셨고, 한낮에 물 뜨러 다니는 여인의 사정도 깊이 들으셨다. 그분의 사랑은 정말이지 중단됨 없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그 사랑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라고 믿고 증거한다.

2.
우리는 앞의 ①, ② 글에서 '초자연적 신'의 개념과 '초월적 신' 개념을 구별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중요한 과제 하나가 남았다. 그리스도교의 출발점인 예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솔직하게' 해부해보는 것이다.

로빈슨은 그리스도교의 예수 이해가 초자연주의적인 틀에 상당히 기대어 있다고 밝힌다. 그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교리'를 과감하게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성육신 교리는 대중적 종교에서 '초자연적인 신' 이해 방향으로 현저히 기울어 있다. 사람들에게 육으로 현현된 예수는 결국 '저 밖으로부터' 오신 존재이다. 인간과 같은 육체가 있었기에 '인간'이시지만, 저 밖으로부터 오셨기에 또한 '신'이다. 그는 신이면서 인간인(God-man) 존재셨다. 로빈슨이 이 지점에서 말하려는 포인트는 지렛대가 '신' 쪽으로만 급격하게 기운다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탈을 쓰고 이 땅 위를 거닌 신"이었다는 인상을 주고, "'아들'의 모양으로 이 지구를 '찾아온' 하나의 신"이라는 신화적 표상을 불어 넣는다. 예수에 대한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이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가현설적 표상은 대중적 종교성에 깃들어 있는 있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진단이다.

신에게 솔직히

그렇다고 신화적 표상을 포기하자는 것이 그의 의도는 아니다. 신화는 이야기를 통해 일단의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신화가 가리키는 곳에 의미와 깊이가 있다. 그리고 틸리히가 어디선가 밝힌대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을 상고할 때 우리는 상징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겨우 상징이 아니라 오직 상징"인 것이다. 우리가 무엇에 빗대는 과정을 생략하고 신 자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없다.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인류의 죄를 속죄하셨고' '하늘로 다시 올라가셨다'라는 표현들은 우리 신앙의 지표가 되어 주고, 훌륭한 교리나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로빈슨도 신화를 언급하며 "만일 우리가 천사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든지 동방박사의 별을 볼 줄 모른다면 우리 삶은 아주 무미건조하게 되고 말 것이다"라고 했다. 다만 그가 이 맥락에서 말하는 것은, 초자연주의적 생각이 없이도 우리가 임마누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빈슨은 질문을 밀어붙인다. 예수를 보는 관점에서 초자연주의적인 심상을 걷어낸다면, 예수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는가? 다른 각도에서 질문하면, 기존의 초자연주의적이고 신화적인 세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예수가 그리스도일 수 없는가? 정통 기독교 교리가 제시하는 세계관이 새로운 시대에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 그들에게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

3.
'예수가 신이다'라는 식의 직접적 주장이나 기록은 사실상 성경에 없다. 다만 요한복음서 1장, "말씀은 곧 하나님"이신데 예수는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는 기록이 이 명제의 주요 근거가 된다. 그런데 로빈슨은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the Word was God, 요1:1) 헬라어 원문을 다시 살피면서 원문에 더 가까운 해석을 새롭게 시도한다. 헬라어 원문은 "kai theos en ho logos"이다. Autherized Version은 이를 "the Word was God"로 번역했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 말씀은 하나님이었다"이다. 이 번역과 '요한1:14'(말씀이 육신되어)를 종합하면 '예수'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맞바꿀 수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런데 로빈슨은 만약 'the Word was God'이 되려면 헬라어에서 하나님이 theos가 아니라 정관사를 붙인 ho theos가 되어야 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만약 여기서 '신'을 '신적인' 정도로 표현하려고 했었다면 저자는 theos가 아닌 theios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로빈슨은 헬라어 원문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되는 NEB 번역을 소개한다. 바로 "And what God was, the Word was"이다. 『신에게 솔직히』 번역한 현영학은 이를 "그리고 하나님 됨이 그 말씀이었다"라고 번역했다. 간과할 수 없는 무게의 차이가 발견된다.

다른 복음서들도 예수를 직접적으로 신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는 예수에 대하여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 사도들의 증언이다. 예수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자의 아들'(son of man)이라고 종종 표현하셨고,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자신을 생명의 떡, 세상의 빛, 문, 선한 목자 등으로 표현하셨다. 로빈슨은 이 논의의 끝자락에서 다음의 결론을 낸다: "예수는 사실 자기가 신이라는 것을 부인했다."

로빈슨은 이제 신성성의 논의에서 한발짝 물러나, 예수의 삶 그리고 예수가 삶에서 보이신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그 삶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했다. 예수의 삶은 어떠했나.

존 로빈슨

4.
예수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다. 로빈슨은 '하나님과 예수가 하나'라는 것을 사랑의 관점에서 푼다. 신과 예수가 하나라는 것은 무슨 물과 기름이 합쳐지듯 하나가 되었다거나, 혹은 자연과 초자연의 혼합물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가 보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가 보인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을 상기할 때, 예수 존재의 근원과 원천도 하나님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 보편적인 인간 존재의 근원도 사실은 창조주가 아닌가? 일반적 인간에게도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형상'이 있지 않은가?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인가? 물론 그럴 가능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적 인간은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는 것이다. 틸리히는 이를 너무나 잘 간파하였고 「흔들리는 터전」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 삶 전체의 상태란... 그것은 우리가 우리 존재의 '기반'으로부터 이탈해 있기 때문이며, 우리 삶의 기원 및 목적으로부터 이탈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근원으로부터 도망하려 하고, 도피하고 외면한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 한가운데서의 저 너머를 구현한 존재"라고 로빈슨은 단적으로 밝힌다. 예수는 근원을,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였다. 우리와 같이 도피하지 않고, 그 사랑을 온 삶으로 구현하였다. 예수가 완전한 인간이고 완전한 신인 것은, 신비한 혼합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초월적인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그의 인간적 삶에서 보이셨기 때문이다. 로빈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순종을 통해서 사랑의 초월성, '우리 한가운데서의 저 너머'를 구현한 존재로서 그는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신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가 그 사랑을 보인 곳을 확인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인 장소는, '사람'이었다. 너, 타인, 이웃, 그리고 우리 자신이었다. 이 장소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가까운 장소이다. 물론 역설적으로 가장 먼 거리일 수도 있다. 핵심은 예수의 신성이 드러난 장소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장소라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로빈슨은 "신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충분히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예수의 신성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너와 나의 관계'에서라는, 쉽고도 어려운 메시지이다.

글쓴이 소개:
 종교철학을 공부하고 Ph.D를 받았다. 

*책/논문에서 직접 인용한 부분은 큰따옴표(", ")로 표시함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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