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기독교를 보는 새로운 관점의 하나로 "세계기독교"(World Christianity)라는 패러다임이 선교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세계기독교"라는 개념은 아직 한국 교회에서는 보편화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한복판에서 선교 일선에 있거나 선교를 연구한다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우리 시대 교회를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만 해석하고 그 틀에 안주하면 교회는 '현재'를 놓치고 있는 형국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기독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하는 이 글은 방연상과 이만형의 공동 연구논문 「세계기독교: 새로운 신학의 패러다임을 향하여」를 주 텍스트로 하였다.
"세계기독교"의 핵심은 '다양성'(diversity)과 '다중심'(polycentric)이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궤를 수납한다. 절대적인 하나의 모형을 나머지가 모방해야 한다거나, 하나의 절대적인 중심이 있고 나머지는 하부가 되어야한다는 사고로부터 탈피한 시각이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양성과 다중심이 신과 인간의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적용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오해되면 곤란해진다.
"세계기독교"가 가진 다양성과 다중심은 기존의 세 가지 개념과의 대비를 통해 밝힐 수 있다. 하나는 첫째는 '남반부기독교'(Southern Christianity), 둘째는 '글로벌기독교'(Global Christianity), 셋째는 '에큐메니즘'(ecumenism)이다.
첫째 개념인 '남반부기독교'(Southern Christianity)는 남반부의 교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여기서 '남반부'는 근대에 선교의 대상이었던 지역들을 이르는 말로,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지역 등을 가리킨다. '남반부기독교'라는 용어는 한편으로는 남반부 지역 교회들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용어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면에서는 "유럽중심주의적 통념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남반부기독교' 개념은 더 이상 기독교가 유럽 및 서구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북반구의 기독교 인구는 쇠퇴하나 남반구 기독교 인구는 약진하고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나타난다. 1900년도 전세계 기독교 인구의 81%가 백인이었는데, 2000년도에 그 비율은 45%로 감소되었다고 논문은 밝힌다. 선교학자들은 "북반구기독교가 선교를 통해 남반구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반구에서 자생적인 기독교가 형성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남반구기독교의 독립성과 특수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세계기독교" 패러다임은 남반구기독교 개념이 우리 시대에 지나치게 하나의 확정적인 틀로 자리매김 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북반구 기독교가 쇠퇴한다고 해서 남반구기독교가 그것의 완전한 대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북반구기독교가 '절대'가 아닌 것처럼 남반부기독교 또한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논문은 "서구기독교의 거울로서의 남반구기독교를 본질주의화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비서구 지역을 '남반구기독교'라는 하나의 틀로 통칭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주장도 일리있다. "시원적(primal)인 종교 전통이 강한 아프리카와 가톨릭 중심의 중남미를 남반구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태평양 제도는 물론 이슬람 서남아시아"를 남반구의 기독교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는가 라는 의문,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이 과연 남반구기독교에 속할 것인가라는 의문은 정당하다. 이에 논문은 남반구 기독교라고 일컬어지는 지역들은 "서구기독교의 타자로서 동질감을 가질 뿐"이라고 한계를 설정한다.
논문은 앤드류 월스(Andrew Walls)의 연구를 소개한다. 월스에 따르면 "기독교의 기원은 서구가 아니며, 다른 모든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서구기독교도 서구에 토착화한 기독교"이다. 교부 철학은 그리스철학의 토착화이고, 콘스탄티누스적 기독교왕국(Christendom)이나 계몽주의 하에서의 복음주의도 복음의 "지역적 상황화"로 보아야 한다고 월스는 밝혔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서구 지역 기독교들도 지역만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같은 오순절 운동으로 묶인다고 해도 "독립교회의 전통으로부터 나온 아프리카의 오순절운동과 가톨릭 중남미에서의 우순절운동을 함께 논하기란 쉽지 않다."
두 번째로 글로벌기독교(Global Christianity)는 다음과 같다. 라민 사네(Lamin Sanneh)는 세계기독교(World Christianity) 개념을 글로벌기독교(Global Christianity) 개념과 구분했다. 그는 글로벌기독교는 "유럽에서 발전된 기독교 형식의 '충실한 복제판'"으로 정의했고, 세계기독교는 "자발적이고 토착적인 반응으로서 기독교가 형성되는 기독교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전자는 말하자면 외래적인 기독교의 인상을 가지고 있고, 후자는 자생적인 기독교의 인상을 가지고 있다. 사네는 "글로벌 기독교를 시대착오적인 것들로 간주하고 있다"고 논문은 전한다.
세 번째로 에큐메니즘(ecumenism)과 세계기독교는 구분된다. 논문에 따르면 "에큐메니즘이 교회 간의 연합을 추구해왔다면 세계기독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와 교회의 연합을 부각시킨다." 세계기독교 패러다임은 교회와 사회를 성과 속의 이분법적 틀에서만 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논문은 "세계기독교 패러다임에서는 세계 자체가 이미 기독교화하고 있는 만큼, 세계와 교회의 분리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추구될 수도 없다. 교회는 이미 세계 속에 있다"고 밝힌다. 이 말은 교회의 특수성을 사회에 희석시키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논문은 "기독교가 세계화"되는 것과 같이 "세계의 기독교화"를 말한다.
정리하면, 세계기독교(World Christianity)는 선교의 주체와 객체가 과거보다 상대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특정한 지역을 절대화하기보다, 각 지역의 토착화된 기독교 커뮤니티들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접근법이다. 세계기독교 패러다임에서 기독교의 중심은 과거 선교대국이었던 특정 국가나 지역이 아니라, 오늘날 삶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의 지상명령을 따라 선교를 나가는 모든 국가와 민족과 지역이다. 그래서 어디라도 누구라도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다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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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논문에서 직접 인용한 어구, 문장은 큰따옴표(", ")로 표시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