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텍스트 속으로 14] 루터의 신학적 돌파: '영광의 신학'에서 '십자가의 신학'으로

김균진, 『루터의 종교개혁』(새물결플러스, 2018) ②

루터의 종교개혁

마틴 루터는 1517년 10월 15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95개조〉를 붙였다. 95개조는 당시 교회의 회개에 대한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다루었다. 교회가 시행하는 회개의 성례전과 면죄부, 그리고 교황의 권력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 불과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지자 교회는 공식적으로 95개조를 문제 삼는다. 이에 루터는 6개월 정도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 강당에서 변론을 갖게 되는데, 이 때 〈하이델베르크 변론서〉(Heidelberger Disputation)를 발표한다.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변론서에서 면죄부 관련 내용을 다루지 않았고 칭의론을 개진했다. 이 글에서는 〈95개조〉와 〈하이델베르크 변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이 글의 내용의 출처는 김균진 박사의 『루터의 종교개혁』(새물결출판사, 2018)이다.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저자가 루터의 원전을 연구하여 펴낸 루터전문연구서이며, 800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분량이다.

먼저 〈95개조〉에서 세 가지 주제로 주요한 내용을 뽑으면 다음과 같다.(김균진, 202-208)

▷회개에 대하여: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 "회개하여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에서의 회개는 사제들이 집례하는 "성례적 회개 다시 말해 죄의 고백과 보상으로 이루어지는 회개로 해석될 수 없다." "신자들의 전 삶이 회개이어야 한다."

▷면죄부에 대하여: "참으로 통회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완전한 용서를 얻는다. 면죄부를 사지 않아도 그것을 받는다."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면죄부가 없어도 교회와 그리스도의 모든 재화[은혜]에 참여한다." 크게 부유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면죄부 구입에 돈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교황의 권한에 대하여: "교황은 어떤 죄도 용서할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죄 용서를 선언하고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면죄부 설교 때문에...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침묵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교황의 면죄부는...무거운 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죄도 없앨 수 없다."

위 내용에 따르면 루터는 '회개'의 본질을 다시 상고한다. 당시 교회의 회개의 성례전은 통회, 고백, 보상이라는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세 번째 보상은 죄의 케이스에 따라 사제들이 신자들에게 속죄로서의 행위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이 행위는 신자들에게 무거운 짐이었는데, 이 행위를 '돈을 주고 면제해주는 것'이 면죄부였다. 처음에 면죄부는 각 사람의 과거의 죄에 대한 벌을 면제해주는 것이었으나 그 적용범위가 점차로 확대되어 나중에는 미래의 죄에 대한 면제, 그리고 죽은 조상들이나 친척들을 연옥에서 빼내어 하늘나라로 가게 하는 것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회개의 이론과 실천의 문제가 이 지경까지 왜곡되었을 때, 루터는 회개가 특정 행위로 보속하는 것이 아닌, "전 삶"을 통한 것이라고 그 원래적 의미를 다시 밝힌다.

김균진

루터의 이 입장은 중세교회의 회개의 성례전을 상대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당시 사회는 크리스텐돔이었고 신자들은 교회의 권위와 전통 이외의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때문에 교회의 신자들에게 교회의 성레전들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죄책감으로 인한 불안은 성례전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했는데, 루터의 95개조 정신은 이것을 와해시키고 있다.

루터는 더 나아가 교황의 권위와 권한도 재고한다. 당시 교회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신 말씀을 교황에게 적용하여,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였다. 이에 성경에 없는 개념인 연옥이나 면죄부도 교황의 승인 아래 공식적인 것이 되었다. 루터는 이런 상황에서 교황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 용서하심을 교황은 "선언하고 증명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였다.

김균진 박사는 루터의 〈95개조〉가 "가톨릭교회의 회개의 성례를 상대화"하고 "가톨릭교회의 업적사상 내지 공로사상을 거부"하고 "성직자들의 구원의 중재직을 부인"하고 "사실상 성직자 계급을 부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95개조〉의 내용이 빠르게 확산되자, 면죄부를 사라고 설교하고 다니던 도미니크 수도회 원장인 텟철을 중심으로 한 교황 편의 사람들이 루터를 공격한다. 이에 루터에게 호의적이었던 루터의 멘토 슈타우핏츠가 수도원장의 위임으로 루터에게 변론을 요청하고, 이에 1518년 4월 26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문학부 강단에서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변론서'를 발표한다.

〈하이델베르크 변론서〉의 주요 내용은 칭의론이라고 김균진 박사는 밝힌다. 이 변론서에서 기존 가톨릭교회의 업적신앙의 체계를 붕괴시키는 칭의에 대한 내용과, 기존 스콜라 신학체계를 뒤집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김균진, 227-232)

▷ 업적에 관하여: "많은 업적을 쌓은 자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업적 없이 그리스도를 깊이 믿는 자가 의롭다."...칭의를 위해 업적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업적"은 우리의 업적을 일으키는 업적이요, 우리가 행하는 업적은 그리스도에 의해 "일어나게 된" 업적이다.

▷ 십자가 신학에 관하여: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계시 되는 하나님의 "인간성, 연약함, 어리석음"을 인식하는 자가 올바른 신학자가 된다...영광의 신학자(스콜라 신학자를 말함)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한, 그는 고난 속에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하나님은 오직 고난과 십자가 안에서 발견된다."

중세교회의 회개의 성례전은 기본적으로 업적신앙에 기인하고 있다. 인간의 행위로 인하여 죄가 용서된다는 전제에서 통회와 고백과 보상[보속]이 기능한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죄를 빠짐없이 통회하고 고백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사제들이 정해준 보속행위를 했어도 그것이 정말로 구원에 완벽한 행위였는지 인간이 확실할 수 없다. 이에 루터는 죄용서는 인간의 행위로 불가능하고, 칭의로만 즉 하나님이 인간을 의롭다 하심으로만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균진 박사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율법이 요구하는 업적을 행함으로써 죄용서와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죄용서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우리 자신이 행한 업적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있다."

마르틴 루터, 마틴 루터

업적신앙의 뿌리는 스콜라 신학에 있다. 루터는 스콜라 신학을 "영광의 신학"이라 하였는데, 이 영광의 신학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 안에 주어져 있는 것"에 근거하여 선한 업적을 행할 수 있다. 자신 안에 주어져 있는 것으로 선한 행위가 가능하고, 이 행위로 업적이 쌓이고, 이렇게 쌓인 업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이 논리에서는 인간의 죄용서 받음과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은혜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인간 스스로의 행위가 구원의 가능성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에 대하여 공로신앙을 전면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곧 '칭의'를 통한 구원만이 있음을 밝힌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하나님이 발견되는 자리는, 바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라고 루터는 말한다. 루터는 하나님은 오직 "고난과 십자가 안에서 발견"되고 "고난 속에 숨어 계신" 분이라고 말한다.

루터가 '의롭다 해주시는 하나님'과 '고난과 십자가 속에 계신 하나님'을 같이 이야기한 것은, 당시의 교회가 영광스러운 모습만을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은 것이리라 생각된다. 당시 면죄부는 교황과 교황청의 화려한 생활과 화려한 사업들과도 결부되어 있었다. 교회는 정치·경제와도 밀접하게 결탁되어 있어 면죄부 판매 수익금을 최대로 끌어올리려 했다. 이때 신자들은 교회에서 제시하는 구원의 방법 이외의 다른 길을 알지 못했기에, 어떻게든 면죄부를 구매하려 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신자들의 삶을 짓눌렀다. 교회가 제시하는 구원의 길이 오히려 신자들의 삶을 억압하고 있을 때, 루터는 "하나님의 의"가 교황과 교회 전통과 신자들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선물과 같은 은혜에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을 종교개혁의 기치로 삼았다.

김균진 박사는 하이델베르크 변론서가 "칭의론의 핵심"을 제시하고, 아울러 중세 스콜라 신학 곧 "'영광의 신학'과 결별하고 '십자가 신학'을 하나님 인식과 참 신학의 근거로 제시한다"고 밝힌다.

루터는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롬1:17)에 대하여 밤낮으로 고민하면서, 그 의를 화려한 교황청이 아닌 예수의 삶과 십자가에서 발견했을 것이다. 모두가 피하는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사람들이 멸시하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굶주린 오천명을 외면하지 않고 먹이시고, 삭개오의 집에 친히 들어가 유하시고, 귀신 들린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한낮에 사마리아 여인과 깊은 대화를 하시면서 그들의 삶 가운데서 그들을 새 삶으로 인도하는 예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보았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이같은 예수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른 어떤 화려한 곳에서가 아닌, 바로 이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하기를 소망한다.

북리뷰/서평 문의 eleison2023@gmail.com

*책/논문에서 직접 인용한 어구, 문장은 큰따옴표(", ")로 표시하였음을 밝힙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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