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텍스트 사이에서 17] 『신에게 솔직히』①,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실존에서 울림이 있는가

존 로빈슨, 『신에게 솔직히』, 현영학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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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솔직히 1

19세기 철학은 종교에 대하여 혁명적이었다. "신은 투사다"라고 하거나 "신은 죽었다"고 했고,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했다. 이 도전의 물결에서 20세기 신학은 쇄신을 꾀했다. 기존의 전통적 신관이나 종교성을 새로운 시대의 관점으로 보았고, 정당한 의문들을 제기했다. 자신들이 맞닥뜨린 시대와 도래하는 시대에서 신, 예수, 종교가 궁극적인 의미를 유지하게 하는 데에 책임의식을 가졌다.

폴 틸리히는 "초자연적" 신 이해를 넘어서자고 했다.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의 신화적 이해들로부터 "탈신화화" 해야 한다고 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종교성"을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각각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는 이들의 주장은 하지만 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기존의 신 이해 그리고 기존의 종교성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영국 성공회 주교 존 로빈슨(John A. T. Robinson, 1919-1983)은 위 세 신학자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논의를 일보 진전시켰다. 그의 역저 『신에게 솔직히』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후의' 신 이해, '이후의' 예수 이해, '이후의' 실천적 삶을 논한다.

본 글은 『신에게 솔직히』를 3번에 걸쳐 3가지 주제로 살피고자 한다. ① 첫 번째로는 책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틸리히, 불트만, 본회퍼의 주장을 소개한다. ② 두 번째로는 앞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신 이해를 살핀다. '초자연적이지 않은' 신 이해가 가능한가? ③ 세 번째로는 예수에 대한 이해를 본다. 초자연성과 신화성을 걷어냈을 때 예수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① 『신에게 솔직히』①,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실존에서 울림이 있는가
② 『신에게 솔직히』②, '초자연적' 신과 '초월적' 신은 같지 않다
③ 『신에게 솔직히』③, 예수가 실존 가운데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신에게 솔직히』①,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실존에서 울림이 있는가

로빈슨은 다소 진보적인 논의의 출발점을 틸리히, 불트만, 본회퍼의 주장 가운데서 잡는다. 이들의 주장은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 인간 주체성의 부상 등은 기존의 종교적 세계관에 정당한 이의를 제기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전통적 신앙의 해체가 아니다. 이들의 요점은 궁극적인 것들의 보존이었다.

신에게 솔직히 2

먼저 틸리히는 "초자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대체로 신론에 관한 것이다. 신을 초자연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을 '자연을 넘어선(超)' 존재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자연을 공간적으로 이해할 때 초자연적 신은 우리 사는 세계의 '저 위'에 계시거나 '바깥에' 계실 것이다. 혹 세계를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해본다면 신은 그저 역사의 한 지점에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인간과는 달리, 초시간적이시기에 역사의 '처음'과 '끝'에서도 주관자로 계시는 분이실 것이다.

이같은 초자연주의적인 신 이해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개념들이다. 사실상 기독교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신 이해이고,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교두보가 되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틸리히는 이같은 초자연적 신 이해의 맹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신을 '초자연적' 존재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을 '자연적'인 것과 비교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은 자연적인 것에 대립 혹은 병행된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인간이 신에 대하여 주체가 되어 신을 '대상'으로 두게 될 소지가 있다.

다음으로 불트만은 성서에는 신화적인 세계관이 있는데, 오늘날 독자인 우리는 그러한 신화적 세계상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탈신화화(비신화화, demythologization)이다.

신화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에 빗대어 언어로 표현한 형식이다. 이에 신화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이 나타난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서 그것의 사실여부를 문제 삼지 않고, 당시 사람들의 세계 이해의 방식을 보려 한다. 성경 저자들도 각 시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기록에 그것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성경 속의 신화적 표현들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표현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보자는 것이 불트만의 탈신화화의 목적이다.

불트만이 언급한 성경 속의 신화적 세계상은 다음과 같다. 악한 세력이 죄와 질병의 원인이라고 보는 점, 세계가 하늘-땅-지옥의 삼층으로 되어 있다고 보는 점, 초자연적인 세력이 자연에 개입하여 이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점들이다. 로빈슨도 이와 관련하여, 천지창조와 타락의 이야기가 진리를 신화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고, 또 주가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라거나 '하늘에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라는 표현들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본회퍼는 "종교성"을 넘어서야 한다고 밝힌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틸리히와 불트만 주장을 더 큰 카테고리로 싸고 있다. 실제로 본회퍼는 불트만의 주장에 대하여 "오히려 덜 진보적"이라고 밝히면서 "모든 종교적 개념들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회퍼는 바울이 복음의 전제 조건에 할례를 제거한 것과 같이, 우리는 "종교적 전제를 대담하게 버려야 한다"고 강하게 밀고 나갔다.

존 로빈슨

종교적 전제 없이, 다시 말해 교회의 신학이나 여타 종교들이 제공하는 개념 없이 신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진 않을 것이다. 자연을 통한 범신론적 이해도 있고, 굳이 스콜라 철학을 거치지 않더라도 사물을 보고 원인을 따져보면 최초 원인이라는 개념에 스스로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일상적 케이스이긴 하지만 개인들의 신비 체험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본회퍼가 말하는 비종교화는 이런 식의 신 이해가 아니다. 본회퍼가 뚫고 나가고자 했던 것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갇혀 있는' 신 이해였다.

본회퍼는 교회가 하나님을 '저쪽'에 두고 필요할 때만 '불러오는' 식의 이해를 파고들었다. 이것을 그는 "응급조치자로서의 신"이나 "기계장치로서의 신"으로 표현했다. '응급조치자로서의 신'은 인간이 처리할 수 없어 틈이 생긴 문제를 신이 와서 메워준다는 식의 이해를 응급조치로 표현한 것이다. '기계장치로서의 신'은 고대 극장에서 나온 말인데, 극 중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기계 장치의 도움으로 갑자기 등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이 있었다. 두 예시 모두 하나님의 존재는 '저쪽'에 있고, 인간이 필요할 때 초자연적 방법으로 '해결'해주는 존재이다.

이상의 세 신학자의 주장이 로빈슨이 『신에게 솔직히』에서 전개한 논의의 근거 및 출발점이다. 왜 이 신학자들과 로빈슨은, 이와 같은 다소 혁명적인 주장을 펼쳤는가? 그것은 그 시대의 형편에 기인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전례 없는 규모의 대량살상을 동반한 세계대전을 겪었다. 성경 속에 묘사된 혼돈의 날은 먼 미래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황폐화된 삶의 현장에서 '저 위에' 계시기만 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급박한 전쟁통의 상황은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기적들을 기다릴 형편도 안되었다. 그들은 '삶 한가운데' 계실 하나님을 믿었고, 그 하나님을 만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길에 이르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사유의 힘과 신학적 방법론을 사용했다.

로빈슨은 이 길에서 "초월"의 개념을 상고한다. '초월'과 '초자연'을 예리하게 구별해야 한다. 그는 틸리히의 개념을 빌려 "초월의 하나님"을 무게 있게 묵상한다. <②편에서 계속>

글쓴이 소개:
종교철학을 공부하고 Ph.D를 받았다.

*책/논문에서 직접 인용한 어구, 문장은 큰따옴표(", ")로 표시하였음을 밝힙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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