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단추를 채우면서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천양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시인(1942- )은 단추를 채우는 일에서 인생의 교훈을 깨쳤다. 그녀는 어느 해 겨울날 집을 나서다 잘못 채워진 단추 때문에 망가진 옷매무새를 보고서 인생 전체의 구도를 떠올렸다. 그때 주마등처럼 이어지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에 대한 회오가 밀려왔을 듯하다. 그 회오는 인생에서 시작의 중요성과 인생살이가 쉽지 않음에 대한 것이다. 실패 혹은 상처의 체험은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에 절망하기보다 성취감 혹은 자기만족의 한계에 대해서 들여다보았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옷의 매무새가 망가지듯이 어느 한 국면을 완성했다고 해서 전반적 성취를 자신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녀는 "잘못"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사실에 대해 경계했다.

단추를 '잠그는' 것이 아니라 '채우니까' 그것은 세상살이에서 완성 혹은 성취를 연상시킨다. 세상이 채워진다는 것은 단추가 구멍에 결속되듯이 세상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태, 즉 뜻한 바대로 성취되는 것을 가리킬 터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일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고 앞뒤로 반복하여 읊음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실패와 그 의미를 깨달아 알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인생에서 성취란 어떤 일의 주체가 자기의 뜻을 수행한 사실로써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다.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단추를 구멍에 끼워넣었다 하더라도 그 위치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성취란 그 일의 전체 상황적 구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세상사(世上事)는 섣부른 성취감이나 설익은 자기만족의 관점으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어긋났던 일은 그 여파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녀도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를 떠올렸다. 그러나 잘못은 시작만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 채운 첫 단추는 사소한 실수가 인생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는 암시일 뿐이다. "잘못 채운 첫 단추" 뒤에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가 잇따르듯이 우리는 첫 단추를 잘못 채우더라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단추를 채운다. 인생에서의 "잘못"도 그렇게 이어진다. 그녀가 개인사적 "잘못"을 일상적 차원으로 연장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의 기억이 일상적이지 않은가? 언제나 어디서든 가슴 아린 후회와 자책이 떠오른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런 후회와 자책이 인생사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잘못 채운 단추"라는 현상이 "잘못"이라는 본질을 깨우치게 한다. 그래서 각성은 본질적이다.

그 각성의 내용도 본질적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그래, 그래"라며 재차 인정하는 내용은 "산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이다. 그녀는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옷의 전체 매무새가 망가지듯이 인생도 단추를 제 위치에 채우는 일이 관건임을 알린다. 만일 단추를 구멍에 맞추어 넣은 것으로 만족한다면 "단추만의 일이 아[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옷 한 벌의 전체 매무새를 살피며 순서대로 단추를 채워야 하듯이 인생도 전체 구도의 차원을 고려해서 평가해야 한다. 인생에 대한 평가는 나무가 아니라 숲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후회가 닥쳐도 그녀가 성급하게 절망하지 않으며, 동시에 섣부른 성취감을 경계하고 있기도 한 것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처럼 계속 모색해야 하는 일이다.

이어 그녀는 이 사실을 부연하며 자신의 깨달음을 다시 확인한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이 어구를 세 번째 반복하므로 이는 선언에 가깝다. 그녀는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알리고 싶다. 단추를 잘못 채운다는 것은 헐겁게 끼우는 차원이 아니라 제 위치를 찾지 못한 상태인데 그럴 일은 일상에서 쉽게 벌어진다. 그래서 옷 한 벌을 제대로 입으려면 먼저 옷의 전체 매무새를 살펴야 한다. 이처럼 단추 하나를 채우거나 옷 한 벌을 입기도 힘든데 인생 전체를 평가하려면 성급한 절망이나 섣부른 성취감은 지양해야 한다. 이런 각성은 "잘못 채운 단추"를 보고서 그 "잘못을 깨[우칠 때]" 가능하다.

우리는 옷을 입는 경우뿐만 아니라 여타의 상황에서 현상으로 본질을 재단할 때가 많다. 시인이 형상화했듯이 단추를 구멍에 끼워 넣기만 하면 옷을 제대로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추의 위치를 살피지 않으면 옷매무새가 망가지는데, 그 결과를 보고서야 잘못을 깨닫게 된다. 요즘은 옷의 매무새를 고의적으로 흐트러지게 하는 것이 개성 있는 스타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잘못"은 본질적인 문제이므로 이를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그 "잘못"은 원천적으로는, 전체 구도를 살피지 않은 것이며, 그다음으로는, 성급하게 절망하거나 섣부르게 만족하는 것이다. 이 "잘못"의 동력은 무엇인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다. 자기 의로움이 세상과 인생을 보는 시야를 좁히게 된다.

신앙생활에서도 자기 의로움은 궁극적인 패착에 해당한다. 바울 사도가 이에 대해 충언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로마서 10:2-3). 그들의 열심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님의 의가 본질이라면 인간의 의는 현상에 해당할 터인데, 자기의 의로움으로 구원의 길을 예단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무슨 일에서건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그 "올바른 지식"이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을 안내하는 이정표이다.

※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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