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이장식 칼럼] 하나님 나라의 정치학

    [이장식 칼럼] 하나님 나라의 정치학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나라와 역사적으로 병존하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간다. 예수님이 가까워졌다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사역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사건으로 현실역사 안에서 성장하고 확장되어 왔고, 사도들과 신도들의 선교운동으로 그의 나라가 세계화되어 온 것…
  • 수양동우회 사건

    수양동우회 사건

    1937년 10월 28일 송창근 목사는 돌연 부산에서 체포되었다. 그가 부산에 내려가서 도시빈민선교사업을 시작한 지 2년째인 때였다. 그의 피체와 관련해서 당시 에는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다. 지난 십일 오전 열시 경에 북부산경찰서 고등 형사대가 부내 초장정에 있는 성빈학사 장 신학박사 송창근 씨를 검…
  • [김흡영 칼럼] 배아는 생명인가, 세포덩어리인가?

    황우석 박사가 주도한 인간배아줄기세포연구는 세계를 놀라게 한 과학사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것으로 종결되어 버렸다. 그러나 결코 그 실패의 책임이 온통 황 박사 연구팀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 언론, 학계 등 한국 사회 모두가 총체적으로 책…
  • 부산에 세운 성빈학사

    부산에 세운 성빈학사

    부산은 송창근에게 새로운 선교사업을 시작할 새로운 땅이었다. 새로운 각오를 지니고 그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1936년 4월 바닷바람이 싱그러운 부산에 도착한 송창근은 이내 평양에서 생각하고 계획했던 선교의 방향을 바꾸었다. 부산 나병원의 울타리 안에서 그 곳에 수용되어 있는 나환자들을 위해…
  • [홍정수 칼럼] 목회 이야기①

    [홍정수 칼럼] 목회 이야기①

    1980년대를 서울에서, 그것도 대학 캠퍼스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었다. 경제적으로 상위 계급에 속해 있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뉴스의 중심, 현장에 근접해 있었다는 것 때문이다.
  • 산정현교회를 떠나 부산 나병원으로

    산정현교회를 떠나 부산 나병원으로

    송창근 목사의 지도 아래 산정현교회는 날이 갈수록 부흥했다. 교인 수가 많이 늘어서 교회 건물이 비좁아졌다. 교회 건물은 한식으로 건물 내부에 여기저기 기둥이 박혀 있어서 1935년 여름 교회 신축 문제가 대두됐다. 이는 전 교인이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 [김진호] 필립비의 ‘악령’들린 노예소녀

    영화 (The Sixth Sense, 1999)에는 한 소년이 혼령과 대화를 한다. 소년이 공포에 휩싸인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러나 결국 두려움 없이 혼령과 소통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공포영화다운 어법에서 벗어나 ‘성장담’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나아가 그 소통을 통해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혼령의 언어…
  • 평양 산정현교회로 부임하다

    평양 산정현교회로 부임하다

    송창근 목사가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것은 1932년 4월 상순이었다. 산정현교회는 일명 산정재교회라고도 불렸다. 현(峴)은 고개를 말하는 것이라서, 고개 ‘재’ 자를 넣어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산정현교회는 장대현교회에서 분립한 교회다. 장대현교회의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1903년 남문외교회가 분립…
  • 만우 송창근 6년만의 귀국

    만우 송창근 6년만의 귀국

    송창근이 뉴저지 주의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웨스턴 신학교로 전학해 간 것은 1928년 9월 초였다. 1928년 가을 학기부터 피츠버그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피츠버그 시는 역사가 오랜 도시였다. 시의 이름은 식민지 시대에 영국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의 이름을 따서 지어…
  • [이장식 칼럼] 교회법과 세상법

    작금 한국교회 안에서 개교회, 또는 교단들이 대내적인 분규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여 세상 곧 나라의 법정에 고소하여 판결을 요청한 일이 많았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권위와 위신을 추락시키는 일이지만 나라의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편에서 교회법이 세상법보다 우얼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교회법과…
  • 프린스톤 신학교로 전입

    프린스톤 신학교로 전입

    1927년 9월, 송창근은 11개월 간의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마감했다. 그가 “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활”을 한 그 곳을 떠나서 뉴저지 주의 프린스톤으로 간 것은 ‘1927년 9월 하순’이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미주 대륙을 횡단하여 프린스톤으로 향했다. 프린스톤 신학교와 정…
  • [김흡영 칼럼] 창조냐, 진화냐?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하는 것은 한국교회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심각한 문제이다. 작년 가을 EBS 금요토론 시간에 출연하여 이 주제를 다루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이미 다윈의 진화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처럼 과학적 기정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
  • [김진호 칼럼] 불타는 몸

    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왕자를 바치라고 명합니다. 신속하게 의식이 준비됩니다. 지체할 틈이 없습니다. 온 국토를 불구덩이로 만들며 사방에서 시시각각 조여 오는 적군을 몰아내려면 더 지체할 수 없습니다. 도성 남쪽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에, 그 성소에 불이 지펴집니다. 순식간에 불꽃이…
  • 아! 샌프란시스코

    아! 샌프란시스코

    1922년 여름방학의 전국 순회 대강연 여행을 마친 뒤, 송창근은 동경으로 귀환하여 동양대학 문화학과에 계속 다녔다. 그러다가 1924년 봄 학기에 신호(神戶:고베) 신학교에 편입하여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1924년 가을 학기에 청산학원 신학부 전문부(3년제)의 2학년으로 편입했다. 청…
  • [손규태 칼럼]월가의 황금송아지와 금융위기

    미국 뉴욕에 있는 월가(Wall Street)는 1624년 유럽에서 건너온 네덜란드인들이 살던 지역이다. 이 길의 이름은 인디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통나무로 된 방어벽을 쌓은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영국 식민지 세력이 여기에 정착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이 월가라는 거리는 성공회 대성당인 삼위일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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