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34)

    시리아의 에뎃사에서부터 그리스도교의 동양 선교가 시작된 이래로 시리아는 동양의 그리스도교 선교의 본거지가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33)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33)

    모하멛(Mohammed)은 570년에 아라비아의 한 족속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서 632년에 죽은 이슬람교(Islam)의 창시자이다. 이슬람이란 말은 절대복종이란 뜻이다.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32)

    샬망은 교육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하였다. 먼저 사제들의 교육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동안 수도원의 교육이 해이해져 학문의 발달이 저조하게 되었던 것을 개혁시켜 나갔다. 신부와 수도사가 도시에 학교를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31)

    영원불멸의 도시로 자랑해 온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시가 북방 고스족 알아릭의 침략으로 함락된 후 서방 로마제국은 계속되는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30)

    페르시아의 왕 샤푸르 2세의 혹독한 박해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의 하나가 아라비아였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비옥한 나라는 오만(Oman)과 예멘(Yemen)이고 그 두 나라의 가운데는 광대한 사막지대인데 고도 3000피트의 산악지대이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책에 따르면 사도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9)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9)

    지정학적으로나 수난의 역사로나 그리고 민족성으로나 제2의 유대인으로 일컬음을 받을만한 아르메니아(Armenia) 백성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자유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8)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네스토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을 지지한 사람들이 로마제국 국경 밖 시리아 지역으로 와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여서 그 교세가 일취월장해 갔다. 그리고 이미 서방의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한 시리아 동양교회와 연합하여 선교하다가 결국은 시리아의 교권을…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7)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7)

    파르티아 제국과 페르시아에 일찍부터 있었던 교회는 로마제국 안에 있었던 이단논쟁과 무관하였다. 파르티아(Parthia, 바대)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의 뒤를 이어 BC...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6)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6)

    2세기 이후로 북유럽 다뉴브강 이북에 살던 게르만족 중에서도 고스족이 로마제국에 가장 위험한 세력이었다. 이 민족이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 살기를 원해서 고스족 사람들이 로마군대에 징용되었고 어떤 사람은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5)

    로마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서방과 동방으로 그 나라를 나누어서 통치한 적이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 직전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그가 황제였을 때 있었고,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셋이 통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330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비잔티…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4)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를 우리는 어거스틴이라고 부르기가 익숙해져 있다. 그는 이교도 부친과 신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인 어머니 모니카(Monica) 사이에서 354년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3)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3)

    수도원 운동의 발전이 로마제국의 재래종교들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이미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의 종교자유정책 이후로 황제의 영향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급격한 교세 확장으로 인하여 재래종교들의 힘이 기울어지게 되었지만 쉽게 그 뿌리가 뽑히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원로원에 있…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2)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2)

    수도원의 희랍어 ‘nomos’는 혼자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이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지방의 그리스도인들이 남쪽의 사막지대 황량한 곳으로 피신해 가서 혼자 산 때부터였다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1)

    율리아누스를 이은 황제들의 통치기간에도 아리우스주의 문제로 교회가 어지러웠으나 375년에 즉위한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아리우스파의 극단론자들을 제외시키고 교회의 평화를 촉구하였다. 그는 황제가 로마제국의 종교의 대제사장이라는 전통적인 명칭을 폐기하였고 원로원에 안치되어 있던 승리…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20)

    니케아회의에서 아리우스주의가 정죄되었으나 동정자들이 무려 17가지나 되는 신조를 때를 달리하면서 유포하였다. 336년에 아리우스가 죽고 그 이듬해 콘스탄티누스 1세도 죽었다. 아리우스파 중에는 아리우스의 사상을 수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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