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2)Nov 05, 2011 04:21 AM KST

한국에 서양 여러 교파 선교사들이 일시에 몰려든 것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맨 마지막으로 개국(開國)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선교단체들이 가능한 한 연합체를 만들어 협력하는 길이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최선의 길이어서 미국 북장로회와 남장로회,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와 캐나다 장로회의 선교부들이 1893년 1월에 연합하였다. 그리하여 독노회(獨老會)가 정식 탄생하여 이 선교연합회가 장로교회를 다스렸다. 감리교회도 남북미국감리교회 선교회 연합회에서 감리교회를 다스렸다. 이런 연합회는 신학과 교리의 차이를 넘어서는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1)Nov 05, 2011 04:20 AM KST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로서 최초로 조선을 방문한 귀츨라프(Gutzlaff)는 유대계 독일 출생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개혁파교회 선교회에 가입해서 동양선교의 꿈을 가지고 1826년에 출발하여 황해 해안의 상하이와 천진 등지를 항해하면서 선교지를 찾았다. 그가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속하여서 한국, 일본 및 오키나와 지방을 순방하는 무역선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호를 타고 통역관으로 출항하였다. 그 회사가 요청한 것은 영국과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6)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6)Nov 04, 2011 11:46 AM KST

로마가톨릭교회가 계몽주의운동과 종교개혁 운동에 대항하기 위하여 「트렌트 공회」 (1545~1563)를 소집하여 자체 교회의 부분적 개혁과 함께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전통을 더 강화하고 수호하였다. 이것은 제 16세기 이후의 유럽에서 무성했던 민주주의와 과학의 발달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투쟁이었다. 특별히 18세기 말의 프랑스혁명 이후 자유사상과 물질주의사상이 팽창하여 불신시대가 된 것이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앙과 교리의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5)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5)Nov 04, 2011 11:43 AM KST

8세기 이후 모하메드의 이슬람교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전파되어 중동지방 즉 옛 페르시아와 시리아 지방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사하라 사막 이북의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이 지역에 있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고, 특히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교 정권들을 타도하고 이슬람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0)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0)Nov 04, 2011 11:21 AM KST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의 선교가 먼저 된 중국과 일본을 이웃으로 한 조선에 천주교 선교의 길이 트일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때 천주교 신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장군의 군목, 포르투갈 신부 세스페데스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있던 천주교회에서 전쟁포로로 잡혀갔던 조선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 와 있던 천주교 선교회는 조선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9)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9)Nov 04, 2011 11:13 AM KST

중국에 온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는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에서 파송받고 1807년 중국 마카오에 도착한 로버트 모리손(Robert Morrison, 1782~1834) 목사였다. 모리손은 광동(廣東) 지방에 당분간 숨어 생활했다. 이 당시 서양인으로서 동남아 지역에 거주할 수 있는 곳은 광동 지방뿐이었는데 광동이 동서 무역의 항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역상에 종사하는 서양인들만 거주할 수 있었고 선교사는 거주할 수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8)Nov 04, 2011 10:58 AM KST

헨리 마틴(Henry Martyn, 1781~1812)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일반 선교사들이 인도 식민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고 있었을 때 이 회사의 목사로서 인도에 와서 선교에 힘썼다. 그는 가난한 한 광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허약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우수하였고 15세 때 옥스퍼드대학의 코푸스 크리스티 칼레지(Corpus Christi College)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입학시험 성적으로는 통과했는데 떨어진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5)Nov 02, 2011 07:36 AM KST

소래 마을의 김좌수 김성섬은 일찍이 깨어난 사람인데도 여전히 옛 습관을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었나보다. 그의 후처 안씨가 그 집 자녀로써는 열 번째로 아이를 낳게 되었다. 김성섬은 아들 낳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딸을 낳은 것이다. 크게 실망한 김성섬은 홧김에 막말을 하였다.

[이충범의 길에서][9][영암 사람들]

[이충범의 길에서][9][영암 사람들]Oct 31, 2011 08:20 AM KST

4세기에 일본의 정신사를 세팅해준 왕인박사, 그가 영암출신이었다. 화랑도가 단순히 육군사관학교가 아니듯이 박사 역시 단순히 관직명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일본서기』는 그를 단순히 박사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다른 책에는 그를 왕(王)이라 묘사하면서 우이고수라고 부른다. 우이(宇爾)는 우주, 즉 하늘이라는 뜻이기에 그는 하늘의 고수이므로 매우 종교적인 직책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도선 역시 이 곳 출신이었다

[이충범의 길에서][8][아, 아, 월출산]

[이충범의 길에서][8][아, 아, 월출산]Oct 24, 2011 06:49 AM KST

정말 맛있게 늦은 점심을 실컷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왠지 불안, 불안했는데 식당을 나서자마자 정말 반갑지 않은 님을 만났다. 이제까지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막바지 장마철이라 나대지 않던 해님 때문이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자 그간 태양을 솔찬히 가려주던 구름들이 거의 실종되어 있었다. 비켜버린 구름들 사이로 태양이 시커먼 아스팔트 위에 맹렬히 내리쬐고 있었다. 2번과 함께 가다가 분리된 13번 국도는 2번처럼 자동차 전용도로인데다 오르막길이었다. 구름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지체할 수 없기에 국도로 올라타서 걸어보지만 고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길은 훤하게 뚫려 있지만 예상치 못한 난코스였다. 태양은 모자 속에 숨긴 내 정수리를 사정없이 때려대고 상의는 땀으로 젖고 또 젖었다. 내가 살던 미국 같았으면 등이 다 타든 말든 웃옷을 다 벗어 던졌겠지만 차마 그럴

[이충범의 길에서][7][혼자놀기의 고수와 만나다]

[이충범의 길에서][7][혼자놀기의 고수와 만나다]Oct 04, 2011 04:07 AM KST

나는 이런 도보여행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다. 해남에서 강진으로 오는 길은 위험한 도로였지만 그래도 길과 농토가 맞닿은 꼬불꼬불 국도였다. 그런데 새로 확장 개통된 2번 국도는 차만 쌩쌩 달리는 불쑥 솟은 자동차 전용도로였다. 조선시대 어르신들이 살아 돌아오셔서 삼남대로가 이렇게 변한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고 상상해본다. 한참을

[이충범의 길에서][6][뿌연 물빛의 정체]

[이충범의 길에서][6][뿌연 물빛의 정체]Sep 26, 2011 01:20 PM KST

어릴 때 시골택시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비포장도로를 무서우리만치 달리는 그 속도 그리고 기사님이 브레이크라도 밟으면 무릎에 앉힌 내가 택시미터기를 들이 받을까봐 한손엔 미터기, 다른 손엔 내 머리를 감싸시던 아버님이 생각났다. 그렇게 달리면서도 기사님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으셨다. 질문에 대답하던 나는 용기를 내어 우윳빛 물의 정체에 대하여 물었다. 답은 매우 명료했다. 태고 적부터 쌓이고 쌓인 산호와 어패류의 퇴적층들, 유황, 타닌과 같은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4)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4)Sep 21, 2011 01:42 PM KST

김규식은 호가 우사(尤史)로서 강원도 홍천의 유서 깊은 청풍 김씨(淸風金氏) 양반의 후예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김지성이 동래부사 종사관으로 재직중에 민씨 정권에 대하여 일본 정권에 대한 사대주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미움을 사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3년 만에 객사하고, 김규식이 6세 때에 그의 어머니마저 죽으니 졸지에 천애고아가 되어버렸다.

[이충범의 길에서][5][시골다방의 추억]

[이충범의 길에서][5][시골다방의 추억]Sep 03, 2011 11:20 AM KST

계획을 변경하든 뭘 하든 주변에 사람이 있고 인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갑자기 조상님들의 길을 바꾸어 버린 인간들이 미워졌다. 지금 걷고 있는 55번 국도는 조선시대에 살던 조상님들이 걷던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도로 바뀌었고 차만 쌩쌩 다닐 뿐 그 어느 누구도 걸어서 여행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나처럼 이 길을 걷는 이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물론 119로 전화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오래 전 조상들은 이 길을 걸어서 여행했어야만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3)Aug 31, 2011 06:50 AM KST

우리나라 최초 7목사의 한분인 서경조는 형 서상륜과 함께 소래 마을에 소래교회를 세웠다. 이 일에는 그 지역의 유력자 인 김성섬과 그의 장남 김윤방의 전적인 후원이 있었던 사실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언더우드 목사는 이 지역 인사들과 친숙해 져서 소래교회를 자주 방문하여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신앙과 교육의 모든 분야를 지도하였다. 이 시기에 서경조 목사에게 두 번째 아들 서병호(徐丙浩)가 태어났다. 병호는 언더우드 목사에게 [젖 세례]를 받았으니 이는 우리나라 유아세례 제 1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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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빛이란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큰 발전에 힘입어 빛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빛은 일종의 물리적 극소단위 실체로서 전자기적(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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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목회세습으로 교회 사유화 의혹을 받고 있는 명성교회 수련회를 찾아 설교를 전한 낮은담교회 김관성 목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