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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범의 길에서][4][또 한 분의 작은 예수]

[이충범의 길에서][4][또 한 분의 작은 예수]Aug 27, 2011 07:29 AM KST

조수석 유리창을 내리고 내게 묻는 사내에게 나는 북일면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는 여기서 북일면이 어딘데 걸어가려고 하느냐며 나보고 차에 타라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여러 번 사양을 했지만 이 사내는 막무가내로 버티며 차에 타란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한 장면과 불안한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8)Aug 25, 2011 10:40 AM KST

헨리 마틴(Henry Martyn, 1781~1812)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일반 선교사들이 인도 식민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고 있었을 때 이 회사의 목사로서 인도에 와서 선교에 힘썼다. 그는 가난한 한 광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허약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우수하였고 15세 때 옥스퍼드대학의 코푸스 크리스티 칼레지(Corpus Christi College)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입학시험 성적으로는 통과했는데 떨어진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2)Aug 20, 2011 08:57 AM KST

광산김씨 제 2대인 김성섬 김좌수에게서 첫 부인이 아들 셋을 낳고 죽었다. 세 아들의 이름은 첫째가 김윤방, 둘째가 윤오, 셋째가 윤렬이다. 재취로 들어온 안(安)씨 가문 여인의 첫 아들이 김필순(金畢淳)이고, 그 다음 첫째 딸이 김구례(金求禮), 둘째 딸이 김노득(金路得), 둘째 아들이 김인순(金仁淳), 셋째 딸이 김순애(金順愛), 넷째 딸이 김필례(金畢禮)이다.

[이충범의 길에서][3] 화려한 어머니의 옛날이야기

[이충범의 길에서][3] 화려한 어머니의 옛날이야기Aug 19, 2011 12:04 AM KST

한눈에 봐도 이상야릇한 분위기다. 화려하지만 아주 촌스러운 리본이 달린 큰 챙모자로 가려진 얼굴은 새빨간 립스틱과 떡분칠로 변장을 했어도 족히 70 가까이 돼 보였다. 블라우스와 치마는 울긋불긋하다. 게다가 빨간 양말에 비닐 뾰족구두다. 큰 가방을 벤치에 턱 하고 던지시면서 내가 앉은 벤치 끝에 앉으신 할머니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우스꽝스럽고 농촌 마을 정류장 분위기와 전혀 조화롭지 못한 튀는 모습이었다. 물론 울긋불긋 등산복과 빨강배낭을 맨 내 모습도 그 분위기와 조화롭지 못한 것은 매 한가지였다. 정류장 벤치 양쪽 맨 끝에 앉아 있는 분위기 비슷한, 그러나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7)Aug 12, 2011 02:39 PM KST

인도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선구자는 영국의 침례교인 윌리엄 캐리였다. 그는 가난한 한 영국성공회 교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여 구두 만드는 제화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면서 독서의 기회를 만들어 남의 책을 빌려 독서하였다. 빌린 책 한 권은 영어로 쓰인 것이 아니어서 그것을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6)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6)Aug 12, 2011 02:36 PM KST

제1차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의 4개 주에서만도 인구 30만명 중 4만명 가까운 결신자가 생겨났고, 150여개 교회가 신설되었다. 중남부 지방에서도 수만 명의 결신자가 생겨났고 사람들의 개인생활과 가정생활의 변화와 함께 도덕적 기풍이 쇄신되었다. 그러나 부흥운동을 반대하는 학파의 비판이 많아 교파가

[이충범의 길에서][2] 피할 수 없는 세상

[이충범의 길에서][2] 피할 수 없는 세상Aug 12, 2011 12:20 AM KST

7월의 첫 주말이었고 주말은 평일과 뭔가 달라도 달랐다. 방학 중인 내가 요일감각이 무뎌져서 그만 경계심을 늦추고 말았던 것이다. 기도하던 중 잠들어 버린 나는 깊이 잠들기도 전에 큰 소음에 깼다. 야식 배달원의 쿵쾅거리는 발소리, 다른 투숙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 게다가 발암물질의 냄새까지 스며든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1)Aug 11, 2011 08:21 AM KST

서경조는 서상륜보다 여섯 살 아래의 동생으로서 본명은 상우(相祐)이며 [경조]는 그의 자(字였)이다. 의주에서 1852년에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 부모가 병사하니 두 형제가 의지하며 살았다. 서상륜은 서당에서 공부하였으나 성격이 적극적이고,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하여 장사를 하다 보니 자연히 대외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였고, 서경조는 내향적인 성격으로써 가정 사정으로 정상적인 교육은 받지 못하고, 형의 서당 학습 자료를 얻어서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상당한 수준의 한서를 탐독할 수 있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분야의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0)Aug 04, 2011 07:40 AM KST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라고 하면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그분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끼친 종교, 교육 문화의 영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귀중한 자취로 남아있다. 나 자신도 그분이 설립한 경신고등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그 학교에서 그분의 손자 언더우드(원일한) 선생님께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5)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5)Aug 03, 2011 09:14 AM KST

북아메리카에 있던 영국의 13개 식민주에서 유럽의 각종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이 교회를 세웠으나 그것은 유럽의 교파들의 이식(移植)이었고 따라서 곳에 따라서는 교파들 사이의 박해도 있었는데, 자유의 신대륙에 와서 같은 프로테스탄트 종파들이 서로 박해한 것은 금후의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격심한 교파주의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충범의 길에서][1] 겁 없이 떠난 여행

[이충범의 길에서][1] 겁 없이 떠난 여행Aug 02, 2011 12:06 AM KST

귀국하자마자 정신없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공부만 할 때는 흡족하진 못해도 기도도 공부도 질서가 있었다. 목회를 할 때도 아침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볼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취직이란 것을 하고 나니 내 계획대로 하루를 살기란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잠시 pause버튼을 누를 짬도 없었다. 그리고 그간 내게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되는 일도 생겼다. 게다가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내게 오랜 동안 겹겹이 쌓여버린 세상의 묵은 때들도 너무 많았다. 치유법과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9)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9)Jul 27, 2011 10:29 AM KST

의주에서의 체포령을 피하여 고향을 떠나게 된 서상륜, 서경조 형제는 그들의 당숙이 살고 있는 남쪽 지방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로 남하하게 되었다. 그들의 당숙은 아마 옛날 해적의 침입로에 세운 봉화대가 있었는데 그 근처에 살았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서씨의 후손들은 그를 봉대(烽臺)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우선 그곳에서 초가삼간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차츰 상황을 살펴보니 그 곳은 야소교에 대한 관의 감시가 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차츰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성경을 나누며 기독교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영향력은 봉대 마을과 송천리로 확장되었다. 송천리는 솔샘(松泉), 또는 솔내(松川) 등으로 혼용되었는데, 지역민들은 [소래]라고 쉽게 발음하였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8)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8)Jul 20, 2011 06:19 AM KST

로쓰 목사에게는 조선의 복음화가 지상명령이었다.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그 나라 말로 되어있는 성서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가 갖고 있는 성서는 영어와 그것을 번역한 한문 성경뿐이었다. 그는 조선의 북쪽 국경선 너머 청나라의 우장과 고려문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던 중 뜻있는 조선 청년들을 만나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성서 번역도 시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상륜]이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서상륜 자신은 자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 나타난 그의 진술은 그 당시의 기록이기 때문에 알기 어렵지만 남의 나라 말이 아님으로 차근차근 풀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괄호 안은 저자가 주를 단 것이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4)Jul 15, 2011 08:59 PM KST

18세기 중엽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영국 교회의 각성과 부흥을 위해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가 속한 영국성공회는 영적으로 퇴락해 있었고 목사들도 무기력하게 목회하여 신도들의 신망을 잃고 잃었다. 목사를 신사(gentleman)로 통칭하였고 신도들이 목사를 만나 인사 삼아 “신사님, 우리 같이 지옥에 갑시다”라고 하면 목사의 농담 섞인 대답은 “먼저 가시오, 뒤따르겠소”(After you)였다. 지난 세기에 청교도들의 거센 도전으로 영국성공회가 반세기 동안 넘어지기도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7)Jul 13, 2011 04:38 PM KST

민들레의 씨앗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라 가서 전혀 연고 없는 새로운 땅에 뿌리를 뻗는다. 서상륜(徐相崙, 서경조(景祚) 형제는 로쓰 목사의 우리말 성서 번역과 소래마을 복음화의 결정적 인물들이다. 서경조의 본래 이름은 상우(相佑)이거 [경조]는 그의 자(字)인데 그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으므로 앞으로 그 이름으로. 서술하려 한다. 이들은 어린 시절에 의주에서 성장하였으나 훗날 머나먼 남쪽 땅 소래 마을에 이르러 뿌리를 뻗고 교회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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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빛이란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큰 발전에 힘입어 빛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빛은 일종의 물리적 극소단위 실체로서 전자기적(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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