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1)Aug 11, 2011 08:21 AM KST

서경조는 서상륜보다 여섯 살 아래의 동생으로서 본명은 상우(相祐)이며 [경조]는 그의 자(字였)이다. 의주에서 1852년에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 부모가 병사하니 두 형제가 의지하며 살았다. 서상륜은 서당에서 공부하였으나 성격이 적극적이고,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하여 장사를 하다 보니 자연히 대외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였고, 서경조는 내향적인 성격으로써 가정 사정으로 정상적인 교육은 받지 못하고, 형의 서당 학습 자료를 얻어서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상당한 수준의 한서를 탐독할 수 있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분야의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0)Aug 04, 2011 07:40 AM KST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라고 하면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그분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끼친 종교, 교육 문화의 영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귀중한 자취로 남아있다. 나 자신도 그분이 설립한 경신고등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그 학교에서 그분의 손자 언더우드(원일한) 선생님께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5)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5)Aug 03, 2011 09:14 AM KST

북아메리카에 있던 영국의 13개 식민주에서 유럽의 각종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이 교회를 세웠으나 그것은 유럽의 교파들의 이식(移植)이었고 따라서 곳에 따라서는 교파들 사이의 박해도 있었는데, 자유의 신대륙에 와서 같은 프로테스탄트 종파들이 서로 박해한 것은 금후의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격심한 교파주의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충범의 길에서][1] 겁 없이 떠난 여행

[이충범의 길에서][1] 겁 없이 떠난 여행Aug 02, 2011 12:06 AM KST

귀국하자마자 정신없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공부만 할 때는 흡족하진 못해도 기도도 공부도 질서가 있었다. 목회를 할 때도 아침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볼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취직이란 것을 하고 나니 내 계획대로 하루를 살기란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잠시 pause버튼을 누를 짬도 없었다. 그리고 그간 내게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되는 일도 생겼다. 게다가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내게 오랜 동안 겹겹이 쌓여버린 세상의 묵은 때들도 너무 많았다. 치유법과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9)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9)Jul 27, 2011 10:29 AM KST

의주에서의 체포령을 피하여 고향을 떠나게 된 서상륜, 서경조 형제는 그들의 당숙이 살고 있는 남쪽 지방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로 남하하게 되었다. 그들의 당숙은 아마 옛날 해적의 침입로에 세운 봉화대가 있었는데 그 근처에 살았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서씨의 후손들은 그를 봉대(烽臺)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우선 그곳에서 초가삼간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차츰 상황을 살펴보니 그 곳은 야소교에 대한 관의 감시가 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차츰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성경을 나누며 기독교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영향력은 봉대 마을과 송천리로 확장되었다. 송천리는 솔샘(松泉), 또는 솔내(松川) 등으로 혼용되었는데, 지역민들은 [소래]라고 쉽게 발음하였다.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8)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8)Jul 20, 2011 06:19 AM KST

로쓰 목사에게는 조선의 복음화가 지상명령이었다.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그 나라 말로 되어있는 성서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가 갖고 있는 성서는 영어와 그것을 번역한 한문 성경뿐이었다. 그는 조선의 북쪽 국경선 너머 청나라의 우장과 고려문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던 중 뜻있는 조선 청년들을 만나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성서 번역도 시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상륜]이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서상륜 자신은 자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 나타난 그의 진술은 그 당시의 기록이기 때문에 알기 어렵지만 남의 나라 말이 아님으로 차근차근 풀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괄호 안은 저자가 주를 단 것이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4)Jul 15, 2011 08:59 PM KST

18세기 중엽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영국 교회의 각성과 부흥을 위해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가 속한 영국성공회는 영적으로 퇴락해 있었고 목사들도 무기력하게 목회하여 신도들의 신망을 잃고 잃었다. 목사를 신사(gentleman)로 통칭하였고 신도들이 목사를 만나 인사 삼아 “신사님, 우리 같이 지옥에 갑시다”라고 하면 목사의 농담 섞인 대답은 “먼저 가시오, 뒤따르겠소”(After you)였다. 지난 세기에 청교도들의 거센 도전으로 영국성공회가 반세기 동안 넘어지기도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7)Jul 13, 2011 04:38 PM KST

민들레의 씨앗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라 가서 전혀 연고 없는 새로운 땅에 뿌리를 뻗는다. 서상륜(徐相崙, 서경조(景祚) 형제는 로쓰 목사의 우리말 성서 번역과 소래마을 복음화의 결정적 인물들이다. 서경조의 본래 이름은 상우(相佑)이거 [경조]는 그의 자(字)인데 그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으므로 앞으로 그 이름으로. 서술하려 한다. 이들은 어린 시절에 의주에서 성장하였으나 훗날 머나먼 남쪽 땅 소래 마을에 이르러 뿌리를 뻗고 교회를 세운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3)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3)Jul 11, 2011 01:09 AM KST

30년전쟁 기간에 영적 각성과 부흥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보헤미아와 영국과 독일과 네덜란드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나타나서 영성 회복을 위한 책을 저술하거나 찬송가를 작사해서 부르게 하거나 심지어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부흥시키고 도덕적으로 쇄신시켜 경건을 사모하게 한 사람은 독일 스트라스부르크의 목사 필립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였다. 그는 전쟁의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6)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6)Jul 06, 2011 07:31 AM KST

로쓰 목사에게 있어서, 토마스 목사가 순교한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선교의 사명감은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조선 왕실의 국금(國禁)에 의하여 길이 막혔지만,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건 처음부터 기독교를 받아드린 곳은 없었다. 그러나 주의 뜻을 따라 길을 찾고,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닫힌 문이 열릴 것이다. 그 날을 위하여 조선말을 배우고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하려면 먼저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그는 선교부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2)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2)Jul 02, 2011 08:22 AM KST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운동으로 로마가톨릭교회 교세가 많이 약화되었지만, 가톨릭 국가들과 교황청 사이에서도 교황의 권위와 힘을 약화시키는 요인들이 계속적으로 생겨났다. 첫째, 가톨릭 국가들이 자국 내의 교회와 수도원에 대한 인사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국가들의 교회와 수도원들이 교황청에 송금하던 것을 저지하는 국가 재정정책의 하나였다. 이것은 가톨릭 국가들의 새로운 민족주의 의식이기도 하였다. 둘째, 유럽의 가톨릭 국가들(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사이의 복잡한 정치 문제에 교황이 시달려서 조정할 힘이 없어져 갔다. 교황청의 추기경들(각료들) 사이의 정치로 국가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국왕들이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들이 많아졌는데 1527년에 신실한 가톨릭 신자인 황제 칼 5세가 로마교황청을 군대의 힘으로 점령하였고 교황은 어느 산성에 있게 되었다. 교황이 프랑스를 편들었다는 이유였다. 문예부흥운동가들은 이 사건을 로마교황청이 하나님의 벌을 받은 것이라고 혹평하였다. 그를 이은 교황들 중에는 취임한 지 불과 몇 개월 후에 물러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교황청과 교황의 권위와 힘은 날로 약해져 갔다.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5)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5)Jun 30, 2011 09:00 AM KST

우리나라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러 온 열혈 청년 목사 토마스(Thomas)는 1866년에 대동강에서 순교 당했다. 토마스 목사와 관련된 영국 스코틀랜드 선교부의 중국 산동성 지푸(芝罘-오늘날의 燕苔)에 있던 선교부 총무 월리엄슨(A. Williamson)목사는 이 일을 영국 선교회에 보고하였다. 스코트랜드 선교부는 그의 순교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후속 선교사를 모집하였다. 여기에 응하여 선교를 지원한 사람이 [로쓰]였다.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4)Jun 14, 2011 12:58 AM KST

금맥을 찾아다니는 어느 탐험가가 어느 날 한 원주민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그 원주민들은 아주 친절하여 지나는 나그네를 친절하게 접대하고 식사와 숙소를 제공해 주었다. 그날 밤 그 여행자는 한 천막에서 자고 있는데 새벽녘이 되니까 온 동네가 시끌벅적 해졌다.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일어나서 나가보니 마을 청년들이 추장의 지휘에 따라서 동산으로 다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마치 무엇을 잡아 다니는 것처럼 영차, 영차 하며 당기는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3)Jun 07, 2011 07:57 AM KST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1889-1975)는 말하였다.“한 나라의 멸망의 요인은 외부 있는 것이 아니고, 내부에 있다.” 1800년대 우리나라 형편은 국가적 말기현상의 표본이었다. 극심한 당파싸움과 적대의식, 부정부패의 편만, 탐욕스러운 외세의 침탈 등 그 혼란과 불안을 이루 다 말 할 수 없었다.

기획연재- 소래마을에 심겨진 씨앗(2)Jun 01, 2011 11:58 AM KST

이 송천리를 순수한 우리말로 부르던 옛 이름. [소래마을]은 구월산 끝자락의 불타산맥이 이어지고 그 끝에 허룡산이 병풍처럼 마을 뒤로 둘러서 있고, 그 앞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바다에 이르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마을에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한 우리의 힘으로 [솔내교회]가 세워진다. 그리고 이 교회를 통하여 심겨진 복음의 씨앗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놀라운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오피니언

연재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6):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식전이나 식후 혹은 이기주의의 기도가 아니더라도 고통으로 가득찬 기도, 위안을 찾는 기도조차 응답해 줄 의무가 신에게 있는 것이고 그런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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