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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영성순례기] 바욘역에서 기쁨과 흥분이 솟구치다

이대희 목사·강릉선교감리교회 담임

까미노 데 산티아고(11)

▲언뜻 오래된 교회처럼 보이는 프랑스 서남부 대서양의 관문인 바욘역. 
▲바욘역 광장, 바스크건축양식의 낡고 오래된 교회가 나그네들의 그늘이 되어준다. 

열차는 프랑스와 스페인을 나누어주는 피레네 산맥을 왼 편에 두고 바욘Bayonne으로 들어간다. 가톨릭 성모발현의 성지 루르드를 지나고, 포와 오르테를 거쳐 프랑스 남서부 대서양의 관문인 바욘에 도착한 것이다. 정차한 역에는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눈에 띈다.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툴루즈역에서도 이미 순례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청년을 만났던 터였다. 그는 리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배낭에는 순례자 표시인 조가비가 있다. 가슴이 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쿵쾅거림이 일어난다.
 
바욘역에서 한 시간여쯤 기다린 후에 생장피드포르행 열차를 다시 타야 한다. 여름 한 낮의 후끈한 열기가 바욘역 대합실에 가득하다. 역 바깥 광장에 시원한 나무 그늘이 치렁치렁 늘어져 손짓하는 듯하다. 역 대합실 출입구의 통유리를 통해 보이는 하늘엔, 높지 않은 구름이 가득하다. 비가 오려는 것인지, 맑아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회색빛 구름을 올려다보며 역 대합실을 나선다. 신선한 바람이 몸에 다가온다. 역 앞의 도로는 원형의 로터리로 되어 있고, 그 중앙에는 커다란 관목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바욘역 앞, 로터리를 중심으로 신선하고 짙고 푸르른 나무들이 무더운 여름 열기를 식혀주고 있다. 
▲바욘역 광장 주변으로 식당과 상점들이 곳곳에 보인다. 바욘은 돼지 뒷다리 햄과 쵸콜렛이 유명한 도시다. 

로터리 주변으로 호텔과 식당, 상점들이 군데군데 눈에 뜨인다. 건물들은 낡아 보이지만 세월의 무게를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는 듯, 오히려 나를 빙 둘러 쳐다본다. 좁은 골목길Rue des GRAOUILLATS을 접어들었다. 얼굴을 타고 도는 바람에 이끌려 골목길을 빠져 나가자, 거센 물줄기를 품고 흐르는 강을 배경으로, 탁 트인 도시 전경이 드러난다. 아, 바람은 강에서부터 불어온 것이다. 이 강은 그랑바욘과 쁘띠바욘으로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피레네산맥 저 높은 곳에서 눈과 얼음이 녹아 내려, 기차를 타고 지나왔던 들판의 도시들을 따라 흐르던 강은 이 곳 바욘에서 하나가 되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바욘은 전통적으로 ‘바스크’라는 문화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바스크의 중심 도시는 여기 바욘과, 여기서 멀지 않은 곳 스페인 북부의 도시인 빌바오이다. 바스크 문화하면 떠오르는 것이 베레모자이다. 그것은 바스크의 농부들이 주로 사용하던 챙이 없는 모직뜨개로 만든 것인데, 그 실용성 때문에 많은 나라의 군사용 모자로 둔갑했다.
 
▲빛바랜 도시의 한구석 같지만, 한껏 멋을 부린 상점들과 화초들이 싱그러운 바욘역 앞 거리.
▲바스크문화의 향취가 가득한 바욘의 좁은 골목길Rue des GRAOUILLATS.

9세기경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 접경에는 피레네를 품은 나바라왕국이 있었는데, 13세기경부터 왕국은 외세에 의해 통치되고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피레네를 사이에 두고 동북쪽 일부는 프랑스에, 서남쪽 일부는 스페인에 속하게 되었다. 우리는 까미노 여정에서, 팜플로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구호를 보았다. ‘여러분은 지금 바스크 땅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는 스페인이 아닙니다.’ 또한 표지판에 있는 스페인어 문자표기를 바스크어로 거칠게 수정해 놓은 곳이 많았다. 바스크는 지금도 언어와, 문화, 전통을 유지하고 있지만 나라가 없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무장독립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바스크의 역사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고자 최근까지도 피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투쟁의 역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 지 아무도 모른다. 나라를 잃은 설움, 제 민족은 있는데 남의 민족-국가에 합병되어져 살아야 하는 그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마6:33)를 구하여야 하리라. 제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힘써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롬14:17) 바울 사도가 단단히 일러둔 말씀을 따라, 그 나라 백성답게 ‘의와 평화와 기쁨’을 풍성히 누려야 한다.
 
▲피레네산맥에서 흘러 프랑스 남부를 관통하여 흐르다가 대서양과 만나는 니브강 최하류, 그 위로 배가 지나간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생마리교회가 니브강 너머로 뾰족한 탑을 내밀고 있다.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바욘역 플랫폼.

유람선을 안고 힘차게 흐르는 니브Nive강 물줄기 저 너머를 살펴보니 하늘 위에 우뚝 솟은 첨탑 두 개가 보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생 마리 교회Cathedrale Sainte-Marie de Bayonne이다. 손에 잡힐 듯한 거리인데, 역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 마리 교회와 니브강, 그리고 한없이 펼쳐진 하늘의 구름이 겹쳐지는데, 나라 잃은 ‘바스크’ 사람들을 생각하니 묘한 마음이 든다. 역에 돌아와 대합실 전광판을 살핀다. 곧 생장피드포르로 향하는 열차가 들어올 예정이다. 여기저기 배낭을 챙기고 있는 이들을 보니 순례자들이 틀림없다. 기분 좋은 동질감과 호기심과 야릇한 흥분과 기쁨이 솟구치는 가슴을 달래며, 바욘역 플랫폼으로 발걸음을 뗀다.(사진제공= 이대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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